가을이야기
#가을 산행
가끔씩 이럴 때가 있다. 지독하게 말이 하기 싫을 때가. 어제 오늘이 그렇다. 이유가 없다. 그냥 입을 닫은 채 침묵이다. 내 고질병이 되살아 난 것이다. 심할 때는 두 달 세달 동안 말을 잊고 살기도 했다.
우울증.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앓고 있는 우울증의 막장에 들어가 보면 그 유전인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세상을 보라. 세상은 칼라펄하다. 사람들 역시 칼라펄하다. 카멜레온이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유전인자보다 환경인자가 더 중요하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환경인자에 발달된 사람일수록 성공할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색은 몇 가지일까. 두 가지, 아니면 세 가지 정도일 것이다. 이러니 세상과의 소통이 참으로 어렵다. 나 같은 유전인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인자가 되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삶이 비참하다.
천성은 쫓아내면 창문 타고 들어온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열두 시 시보를 알리면서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뉴스의 주인공은 여당의 세 사람이었다. 뉴스를 보면서 나는 ‘진정성’ 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뭐가 빠지게 이 나라의 민주화에 몸을 던진 한 사람은 초장에 아웃되었고, 다른 두 투사와 주변부의 한 인간이 피를 튀기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주변부에서 관망을 채 한 세월을 때깔나게 보낸 한 사람이 대선후보가 되지 싶다.
가자.
건너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왔다.
내 마음을 알까. 내 회색빛 어둠을 알까. 말이 하기 싫다. 이 어둠을 물아내기 위해 집을 나온 나는 둔치를 걸었다. 답답할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따라나선 옆지기. 가야 할 곳이 아닌 산으로 가기 위해 나는 둔치로 내려갔던 것이다.
일요일의 산. 오르고 내리고 있었다.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로 등산로는 뽀얀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올라가는 데는 선수인 나. 올라가는 데는 젬병인 옆지기. 숨을 헐떡이며 올라오고 있는 옆지기를 외면한 채 나는 뚜벅뚜벅 산을 올라갔다.
지상에서 1, 3킬로미터. 스톱했다. 그리고 그곳 관망대에서 산행을 중지했다. 더 이상 올라갔다가는 옆지기의 천식이 도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체 게바라도 천식 때문에 고생을 무지 많이 했었다. 문명의 병, 천식.
쉬자.
바위에 앉았다. 그리고 누웠다. 가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올라오면서 느낀 것이지만, 벌목이 된 소나무가 많았다. 제성충 때문에 이제 머지않아 우리나라 산에서 소나무가 사라질 것이다. 그 자리를 활엽수들이 메울 것이다. 비극이다.
지구의 온난화로 우리 인류는 멸망할지 모른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파괴되면 이 지구도 더는 견딜 수 없다.
#한국의 기독교
아프칸에 다시 우리나라 기독교 선교단이 갔다고 한다. 하긴 무엇이 두려울까. 그들의 뒤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하느님이 계시지 않은가. 순교는 아름다운 죽음이다. 순교는 그리고 값진 죽음이다. 그렇다면,
그 성스런 곳에 졸들만 보내지 말고 두목들이 가면 안 될까? 가령 여의도의 조 씨, 구리 넘어가면서 만나게 되는 장소에 있는 김 씨, 이태원의 온 씨, 구로동의 오빠, 그리고 20 이전의 젊은 피만 받아 마시는 인간말자 정 씨 등등이 가족들을 데리고 가면 안 될까?
나는 생각한다. 한국의 기독교가 바로 서려면 반드시 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어떻게? 목사들의 급료를 정해놓아야 한다. 큰 교회 목사들 한 달 월급을 일천만 원으로 묶어라. 그리고 절대 목사가 교회의 재산을 차지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수입금 중 70프로를 가난한 이웃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이렇게 만들면 목사는 그 권력과 명예와 부를 세습시키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지 그들이 가서 좀 죽는 꼴을 보았으면 한다. 제발 좀 가라. 가서 좀 죽어주어라. 피 터지게 졸들만 희생시키지 말고, 대장들이 과감하게 무슬림 국가에 가 아낌없이 몸을 던져라.
# 미안마의 사태를 보면서
자기 나라 국민들을 몽둥이로 패는 나라. 군인들이 무지막지 시민들에게 몽둥이로 전신을 타격한다. 몸만 아니라 머리를 향해 곤봉을 휘두른다. 저 더러운 나라, 하고 되뇌다 광주의 5, 18을 떠올린다. 그때 광주도 그랬다. 군인들이 무지막지 시민들을 향해 곤봉과 총검을 휘둘렀다. 누구를 위해?
29만 원짜리 전두환을 위해.
미안마의 군부들이여, 그대들은 인간이 아닌 짐승들이다.
#독재와 돈
브루나이라는 나라가 있다. 섬나라이고 인구가 몇 십만밖에 안 된다. 그 나라의 국왕이 말도 못하게 부자다. 2백억 달러 정도다. 나는 생각한다. 어떻게 그 천문학적 재산이 그의 것이란 말인가. 국민들의 것이다. 용병들을 모집해 그 나라를 접수해버릴까. 미안마도 마찬가지다. 미안마를 통치하고 있는 장군의 딸을 시집보내는데 5백억 원을 사용했다고 한다. 어느 나라든 군인들이 정권을 쥐면 반드시 썩는다. 돈맛에 헤어나 지를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돈을 다스려야 지,
돈이 사람을 다스리면 반드시 금수가 되고 만다.
#둔치
옆지기는 강남으로 가고 나는 둔치로 갔다. 무작정 걸었다. 그곳에도 바다에서 날아온 갈매기가 날고 있었다. 바다보다 강이 먹이가 더 풍부하나. 이해가 안 된다. 끼룩끼룩하고 날고 있는 저 갈매기들. 고향 바다가 다시 떠올랐다. 갈매기는 바다, 청둥오리는 강에.
유턴지점에서 오줌을 부조하고 되돌아섰다. 그리고 걸었다. 사고가 터진 곳은 바로 그 지점이다. 가면서 수락산을 디카에 담기 위해 노란색을 넘어 둔치의 경계인 불록 위에 올라가 디카를 열었다. 그때 보행기를 밀며 다가오고 있던 아주머니가 잠시 멈추었다. 바로 그때 제트기처럼 다가오고 있던 자전거가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고 끽 하고 소리를 내면서 도로에 넘어졌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사건. 나는 넘어진 사내에게 다가갔다. 다치지 않았습니까? 보행기도 미안해했다. 난감했다. 원인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나다. 내가 디카를 들자 보행기가 멈추었고 대책 없이 달리기에만 신경을 쓴 사내가 보행기를 받지 않기 위해 끽 하고 방향을 틀다 넘어졌다.
보행기가 사과했고, 나도 다가가 위로했다. 보행기는 일행이 있어 곧 떠나갔고, 남은 나는 사내가 걷어 올린 다리를 보았다. 까져 있었다. 아까징키를 바르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상처의 따까리가 아물 것 같았다. 다리뼈 안 부러진 것이 다행이다. 나는 다시 한번 예를 갖추었다.
다른 데 다친 곳은 없습니까?
라고 하자 사내가 까진 다리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어떻게 합니까?
예를 철수시켰다.
아니, 지나가다 자연풍경을 디카에 담는 게 죕니까?
……
그리고 사람이 우선입니까, 자전거가 우선입니까?
……
씨발놈, 보니 내 또래였다. 오줄없는 인간, 이 둔치 같은 데서 자전거를 탈 때는 항상 브레이크를 염두에 두면서 타야지, 오줄없이 페달을 밟으니 사고가 나지. 노 대통령이 평양에 가 폐달을 좀 세게 밟고 왔다고 흉내 내나. 들어보니 내 말이 논리이고 자기 말은 감정이라는 것을 인식을 했는지
가십시오.
#막걸리를 마시며
나는 성인이 아니다.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성보다 감정의 파도에 우리 인간들은 시달린다. 해서 시도 때도 없이 닥치는 파도에 멀미를 느낄 때가 많다. 그 멀미를 물리치기 위해 나는 막걸리를 마신다.
# 삶
우리네 삶은 한마디로 ‘苦’ 다.
생노병사가 우리 인간들의 삶이다. 절대 이 네 가지를 피해갈 수 없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보아도 비껴갈 수 없다. 그래서 종교는 필요하다. 그래서 신을 찾게 된다. 부자도 권력도 명예도 한낮 뜬구름에 불과하다. 꿈인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면 우리는 어느새 종점에 와 있다. 그 다음은 가는 것이다.
어어어~ 어어어~
어와능차~ 어어어~
뒷이야기- 오늘 둔치에서 돌아오면서 엽총을 떠올렸다. 엽총보다는 권총이 더 낫다. 간단하게 가는 그림을 그렸다. 탕! 하면 끝이다. 헤밍웨이는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했다. 목구멍에 엽총을 넣고 당겨버렸다. 얼마나 멋지나! 원더풀이다. 일년 열두 달 중 열 달을 운동화를 신는다는 무라카미 하루끼. 나와 닮은꼴이다. 운동화에 청바지, 머리는 늘 생긴 그대로. 해서 사람들은 나를 보고 마흔 다섯으로 본다. 그 한 가지가 유일한 즐거움이다. 내 젊음이 가기 전에, 저 넓은 들판을 피 터지게 한번 달릴 수 있을까. 20071015도노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