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꿀과 독

오주관 2008. 11. 24. 20:45

   

  

며칠 전 박홍 전 서강대학교 총장이 SBS 아침 방송의 즉석 인터뷰에 나와 지금의 한국정치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예나 지금이나 박홍 신부의 말은 속사포다. 막힘이 없는 그의 말은 직설적이다. 마치 진행자가 이런저런 질문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술술 술 마시듯이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아침부터 나를 웃게 만들어준 그는 또 다른 신바람박사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황수관 박사였다. 여러분요, 어예든지 앉으나 서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웃으십시오. 내 몸 속에 암 세포가 하나 자라나고 있다고 해도 큰 소리로 웃으십시오. 하하하하! 이렇게 웃어야 우리 몸의 세포가 힘을 얻어 암세포를 물리칩니다. 대한민국에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떨어지고 웃는 사람은 딱 한 사람, 이 황수관이 뿐일 겁니다. 하하하!

 

사람들은 그런 저를 보고, 저게 미쳤네! 돌았네!

하고 쑥덕거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닙니다.

여러분요! 선거에 떨어졌다고 그럼 계속 울어야 합니까?

그리고 노상 울면 제 건강을 누가 대신 책임져 줍니까?

여러분요! 나에게 절망이 곱으로 닥쳐와도 웃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그날 아침 박홍 신부는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에 대해 나름대로 진단을 했다. 그리고 질문자가 세기말에 사라진 사회주의를 언급하자 그는 즉각 이렇게 말했다.

 

사회주의는 한마디로 독에 꿀을 바른 겁니다.

 

나는 텔레비전 속의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이 무슨 쇠망치로 보였다. 태산 같은 그의 확고부동한 신념이 얼굴에 묻어 있었다. 저 사람은 과연 배를 굶어본 일이 있을까? 저 사람은 과연 병원비가 없어 아픈 몸을 부둥켜 안고 온밤을 지새운 일이 있을까? 저 사람은 과연 달동네의 그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알기나 할까? 저 사람은 과연 오늘도 철탑 위에 올라가 추위에 언 몸을 바들바들 떨며 자신들의 존재를 이 세상에 알리기 위해 시위를 하고 있는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는 그들의 피눈물을 알까? 어쨌든 그의 따발총 같은 말을 들으며 나는 세 가지를 떠올렸다. 시간과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시간은 도대체 무엇일까? 시간의 정의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시간은 변화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시간과 싸운다. 시간이 날줄이라면 씨줄은 학습일 것이다. 지식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다. 고로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내가 경험하고 학습한 그 결과물이 변한다는 것이다. 물론 용가리 통뼈들은 안 변한다. 천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변하는 무리들도 있다. 당신은 어느 쪽에 해당이 됩니까?

 

만약 10대 때의 사고가 50대에 와서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천재이거나 아니면 바보일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은 변화다. 모든 삼라만상은 다 변한다.

 

 

Protestors against the Wall Street Bail Out, rally at an event ...

 

 

사회주의는 한마디로 독에 꿀을 바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사회주의 반대편에 있는 자본주의는 그럼 보약일까? 먹으면 먹을수록 힘이 강해지고 체력이 태권브이 같이 튼튼해질까? 나는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독에 마약을 발랐다.

 

지금 세계를 보자. 온 세계가 경제 한파에 시달리고 있다. 자본주의의 몰락이다. 그 출발점은 물론 미국이다. 세계의 중심인 미국이 지금 경제 한파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미국 경제의 중심부인 월가에 엄청난 쓰나미가 닥쳤다.

 

콧대 높은 미국도 결국 자세를 낮추었다. 거한 자존심을 접은 채 지금 세계와 손을 잡고 있다. 미국은 홀로 아리랑에서 G7으로, G7에서 G12로, G12에서 다시 G21로 바뀌고 있다. 미국 혼자 힘으로는 이제 감당이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위기라는 지상최대의 쇼를 구경하고 있다. 이 쇼는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몰락인 것이다. 왜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을까? 천 년 만 년 갈 것 같았던 거대한 자본주의가 왜 무릎을 꿇을까? 한마디로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그 구조가 가짜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3대 기둥은 노동자와 자본가 그리고 금융이다. 이 세 가지가 원활하게 힘을 합해야 자본주의는 칙칙폭폭 궤도 위를 오래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사달이 난 것은 자본가와 금융가들의 끝이 없는 탐욕과 탐심이다. 탐욕과 탐심은 브레이크가 없다. 탐욕과 탐심을 채우려면 어느 한쪽을 걸레 짜듯이 쥐어짜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짤까? 자본가와 금융가들의 타깃은 늘 노동자들이다. 자본가와 금융가들이 짝짜꿍이 되어 더 큰 이익을 내려고 노동자들을 마구잡이로 쥐어 짠 것이다. 그러다 그들이 친 미로 같은 그물에 덥석 자신들이 빠진 것이다.

 

그들은 허공에 마천루를 세우려고 한 광인들이었다.

바보들!

 

자본주의는

자본가들에게는 극락이다.

금융가들에게도 천국이다.

노동자들에게는 생, 지, 옥, 이, 다.

 


칼 마르크스

  

무너져 내리는 자본주의의 그 끝을 바라보면서 마르크스가 생각난 것은 그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아직 유효하다. 아니 세세생생 살아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의 핵심은 뭘까? 20대 초반에 자본을 읽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자본은 어렵다. 아무나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생략하고. 마르크스의 자본을 조합해보면

첫째, 자본론의 그 끝은 민주주의다.

둘째, 개인이 아닌 전체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셋째, 내 배를 채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넷째, 모두의 배를 채워야 한다.

그러니까 2, 3, 4가 균형을 맞추어야 자본주의는 계속 행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를 보자. 이북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당장 배를 굶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몸이 아파 병원에 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당장 배우고 싶어도 돈이 없어 공부를 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또한 많다.

 

세계도 이하동문이다. 이 기막힌 현실이 21세기의 일이다. 막막하다. 아득하다. 이 21세기가 우리 인간들의 자화상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들의 자화상이다. 지구 위의 어느 한쪽은 배가 너무 불러 터질 지경이고, 지구 위의 어느 한쪽은 배가 너무 고파 죽을 지경이다. 극과 극이 대립하고 있는 이 21세기.

 

누가 이 21세기를 구원할 수 있을까?

답은 인간이다. 우리 인간이 나서야 한다. 우리 인간이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야 한다. 그래서 배를 굶고 있는 자들과 병을 앓고 있는 자들을 보담아 안아야 한다. 진실로 뉘우침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그들을 힘껏 끌어안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우리이기 때문인 것이다.

 

어떤 이념이든 중심을 잃으면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만다. 지금 21세기의 그 끝이 천 리 만 리 낭떠러지인 것이다. 이 속도로 그대로 달리면 그 끝은 되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낭떠러지로 추락을 하고 말 것이다.

 

 

 

  

백척간두 그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여러분요! 이제 정신이 돌아왔지요. 뉴타운이 건설이 되면 우리 집 살림이 엄청 필 줄 알고 얼때기들에게 표를 준 그 사실을 지금 뼈아프게 반성하고 있지요.

 

여러분요! 여러분들을 돕기 위해 땀을 흘린 그들을 낙마시킨 그 무지가 정말 부끄럽지요?

 

여러분요! 저 현대자동차 노조를 보십시오. 소탐하면 반드시 대실을 합니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끌어안아야 전체가 더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십시일반 힘을 합해야 합니다. 노동자 신분에 귀족이 어디 있고 비정규직이 어디 있습니까? 다 같은 라인인데요. 우리는 하루 빨리 무지에서 눈을 떠야 합니다. 당달봉사로 지내면 결국 꾀 많은 그들에게 늘 당하고 맙니다.

 

여러분요! 다시는 부자인 그들을 지지해서는 안 됩니다. 없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을 지지해야 합니다. 그게 답입니다. 그래서 똘똘 뭉쳐야 합니다. 부자인 그들은 절대 가난한 여러분들을 끌어안지 않습니다. 절대로! 

 

 

뒷이야기-이명박 정부는 마이동풍이다. 국민들은 바싹 얼어 있는데 그들은 지금 너무 더워 옷을 벗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고삐 풀린 경제를 드라이브로 다시 조이고 있는데, 우리의 그들은 반대로 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라 밖에 나가 있는 그들은 샴페인을 높이 쳐들며 헛소리를 계속 지껄이고 있다. 앞으로 몇 년 후면 우리나라는 7대 경제대국에 들 것이라고. 옆의 어느 얼간이는 내년 경제성장률이 4프로는 될 것이라고 부추기고 있다. 생각해보자. 여기 다섯 남매가 있는 한 가정이 있다. 네 남매가 빚더미에 앉아 배를 굶고 있다. 자, 어떻게 해야 그 위기에서 헤쳐 나올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형제자매들 가운데 부자인 한 형제가 나서야 한다. 해서 자신의 금고에서 돈을 꺼내 형제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너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이 고삐 풀린 망아지들은 그 반대다. 오히려 1프로도 안 되는 고소영 강부자들의 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난한 자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해 가자미눈이 되어 있다. 이 엄동설한에 가스비와 전기세를 올리고 있다. 제정신들이 아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얼빵이들의 쇼를 구경해야 할까? 20081124도노강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