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노동부장관과 가사도움이

오주관 2008. 12. 9. 22:17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도서관으로 가는 시간과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아침 그 시간, 우리 두 사람은 그곳에서 헤어진다. 한 사람은 전철역으로 다른 한 사람은 도노강 둔치로. 집에서 도서관까지는 30여 분 걸린다.

 

옆지기와 헤어진 나는 도노강 둑 위로 걷는다. 겨울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도노강에는 성질 급한 강태공들이 벌써부터 낚싯대를 드리운 채 팔뚝만한 잉어를 낚기 위해 진을 치고 있다. 쿵, 하고 가슴에 동계가 온다. 도대체 왜 잡을까? 그냥 구경하면 안 되나? 중금속에 오염이 된 잉어를 잡아 시장에 파나? 아니면 매운탕을 끓이나? 오나가나 그림하고는 사돈에 팔촌보다 더 먼 인간들.

 

도노강의 강물이 흘러가듯이 시간도 흘러간다. 돌아갈 시간이다. 나는 배낭을 들러 메고 도서관을 나와 집으로 향한다. 터덜터덜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도노강이다. 아침의 그 개불알들이 아직 귀가를 하지 않은 채 팔뚝만한 잉어를 잡기 위해 흰 연기를 내뿜고 있다. 혈압이 약간 오른다. 따발총이 없나? 저 초파리보다 못한 인간들.

 

 

  

12월 9일

집에 도착한 나는 옷을 벗는다. 옷을 갈아입은 나는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한다. 국세청과 특허청에서 두 통의 이메일이 도착해 있다. 삭제. 블로그를 본다. 댓글을 닫아놓은 내 블로그는 적막하다. 앞으로도 댓글을 닫아 놓을 생각이다. 자유가 내 삶의 주제가 아닌가. 다시 한 번 글을 본다. 나를 향해 미소를 보낸다. 끈다. 이제부터 저녁준비. 아니다. 방 청소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작은방에서 진공청소기를 가져와 전원에 연결을 한다. 윙! 줄을 뽑은 나는 방안의 먼지를 빨아들인다. 구석구석을 빨아들인다. 천식이 있는 옆지기를 위해 바닥을 두 번 세 번 빨아들인다. 다음은 물걸레로 방 닦기. 물걸레를 빤다. 엎드려 베란다와 방, 그리고 현관 입구까지 닦는다. 그 다음은 문과 창문을 닦는다. 마지막으로 이불 털기. 밖에 요와 이불을 들고 나가 힘껏 턴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이제부터 저녁하기. 오늘은 속초 앞바다에서 잡은 양미리 조림. 양미리를 잘못 조리면 비린내가 난다. 잘 조려야 한다. 조리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오모차베 요리를 보면 된다. 참, 요리를 하기 전에 내 직업부터 말해야겠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내 직업은 두 가지다.

 

집밖의 직업

CFT PROJECT 대표

한반도 통일운동가

 

집안의 직업

가사도움이

 

옆지기의 직업은 노동부장관이다.

 

생략하고. 양미리 조리를 시작한다. 나도 좋아하고 옆지기도 좋아한다. 1년 전, 은퇴를 한 어느 노 성직자가 살고 있는 집 옆에 살 때, 그때도 양미를 많이 조려 먹었다. 경동시장에서 양미리를 사 가지고 와 조리면 그 맛이 일미였다. 물론 요리는 가사도움이인 내가 한다. 나는 붕어빵 장수, 옆지기는 영어학원 원장. 양미리를 떠올리면 따라오는 기억 하나가 있다. 그때 밤이면 밤마다 들려오곤 한 새 소리. 밤에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쓸쓸했다. 단조였다. 도대체 저 새는 무슨 새일까? 궁금했다. 밤에 낙산사에 산책을 나가면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도 그 새 소리였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무슨 새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내 머릿속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새가 무슨 새인지를 안 것은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어느 날의 삼각산 입구에서였다. 내려오다 어느 계곡으로 들어갔는데 아, 그 새 소리가 들려왔다. 저 새 소리? 하고 내가 말하자 옆지기가 맞아요! 하고 말했다. 비둘기일까? 아니에요. 다시 머릿속이 폭풍을 만난 것 모양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그러다 만난 관리인. 미국 보안관 제복 같은 옷을 입은 그에게 물었다. 아, 예. 두견새입니다. 두견새라고요? 예. 순간 8개월 동안 앓아온 두통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두견새! 아, 망할, 두견새였구나! 종이 한 장 차이로 8개월 동안 바보로 살아온 그 세월이 너무 쓸쓸해 나는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난 참 으으으~

 

본격적으로 양미리 조리에 들어간다. 먼저 양미리를 깨끗이 씻는다. 내장을 드러낸다. 먹기 좋게 3센치미터로 자른다. 무를 얇게 쓴다. 양파를 까서 쓴다. 파도 다듬는다. 마늘도 으깨어 준비한다. 간장과 고추장과 고춧가루도 준비한다.

 

1. 무를 바닥에 깐다.

2. 양파를 얹는다.

3. 양미리를 그 위에 얹는다.

4. 간장에 고추장을 버무린 것을 얹는다.

5. 으깬 마늘을 얹는다.

6. 파를 얹는다.

7. 중간 불에 20여 분 끓인다.

 

끝. 목이 칼칼해 물을 한잔 마신다. 이 물도 가사도움이인 내가 끓인 물이다. 옥수수와 보리를 넣고 끓인다. 구수하다. 한잔 마시고는 책상 앞에 앉는다. 창문 밖은 캄캄하다. 이제 밥을 먹고 운동을 나가 자.

 

쌀과 보리를 2대 2로 섞은 보쌀밥을 한 그릇 떠 상에 올린다. 양미리 조린 것도 올린다. 아침에 먹은 청국장을 얹는다. 김도 얹는다. 기도 대신 천장을 한번 쳐다보고는 먹기 시작한다. 꿀맛이다. 물 한잔으로 저녁식사는 끝난다. 후식으로 커피 한잔.

 

커피 한잔을 타 책상 앞에 앉는다. 운동 나가기 전 소화도 시키고 머릿속도 청소할 겸 컴퓨터를 켠다. 오늘은 어떤 주제로 글을 쓰나? 하다 그래, 하고 자판기를 두드린다.

 

 

  

노동부장관과 가사도움이

며칠 전, 새벽에 눈을 뜬 나는 웅얼웅얼거렸다. ‘나는 개털이다.’ 잠귀가 밝은 옆지기가 흐흐흐 웃었다. ‘당신은 범털’ 하고 내가 말하자 옆지기가 흐흐흐 하고 웃었다. 나는 개털이다. 아, 이 망할 개털! 잠시 후 중얼거렸다. 나에게 있어 당신은 뜀틀이다. 흐흐흐. 당신을 통해 나는 비상을 할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아프거나 주저앉으면 안 돼! 한 번씩 그렇게 내 존재가 구토를 하곤 한다.

 

개털은 그러나 바쁘다. 할 일이 태산이다. 그 무거운 주제를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몸이 건강해야 한다.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 거짓이 아니다. 밤이면 밤마다 내가 둔치에 나가는 이유도, 내가 건강해야 내일과 미래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우주다. 나는 우주의 중심이다. 내가 살아 있어야 이 우주도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자, 오늘도 나가자. 나가서 정신없이 걷자. 내가 가는 곳은 무수골이다. 그곳 무수골 입구에 있는 다리가 종점이다. 집에서 3킬로미터. 그곳에 가면 잠시 쉴 수 있는 쉼터가 하나 있다. 그곳 평상에 점퍼를 벗어놓고 맨손체조를 한다. 달빛 아래 체조를 끝내면 평상에 벌렁 눕는다. 밤하늘이 보인다. 나는 천천히 밤공기를 들이마신다. 시원하다. 다시 마신다. 한 번, 두 번, 세 번. 스르르 눈이 감긴다. 순간 내 몸의 무게중심이 밑으로 가라앉는다. 밑으로……. 

 

 

뒷이야기- 오늘 아침 일어나 창문을 열자 도노강에 갈매기들이 앉아 있었다. 네 마리였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흰 갈매기들을 바라보았다. 저 갈매기들은 뭘 먹을까? 먹이가 있나? 청둥오리들이야 잡식성이기 때문에 배를 채울 수 있지만, 저 갈매기들은 뭘 먹을까? 의문이다. 우리 동네 빵집가게만큼이나 불가사의하다. 빵은 수북하게 쌓여 있는데, 눈을 씻고 보아도 들어가는 사람들이 없다. 그런데 빵집은 오늘도 빵을 새로 구어 낸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08129도노강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