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두껍아, 새 집 줄게 헌 집 다오
지금 한국이 바로 그 꼴이다. 전 국토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헤쳐지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는 들어가고 그 대신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삽질이 시작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과 서울은 재개발과 뉴타운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다.
헌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짓는다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헌 빌딩을 허물고 새 빌딩을 올리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헌 동네를 허물고 새 동네를 건설하는 일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다.
지난 총선 때, 서울 변두리 동네들은 뉴타운으로 몸살을 앓았었다.
변두리 백성들은 뉴타운이 건설이 되면 집값이 올라 우리도 강남의 떼부자들처럼 한몫 잡는 줄 알았다.
집 주인도 흥분을 했고, 세를 사는 세입자들도 흥분을 했다.
그래서 뉴타운의 깃발을 내세운 뉴라이트계열의 한나라당이 몰표를 얻어 삐까뻔쩍한 국회의원 배지를 달 수 있었다.
그 바람에 민주 투사들은 추풍낙엽이 되어 줄줄이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그리고 일 년 후!
뉴타운 건설에 흥분을 했던 변두리 백성들은 지금 백척간두 그 끝에 매달려 있다.
강남은커녕 지금 당장 집을 내주고 쫓겨나고 있다.
세입자들만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집주인들도 쫓겨나고 있다.
결론은, 속은 것이었다.
SBS방송의 원탁회의
변했겠지?
사과를 하겠지?
진실로 머리를 숙이겠지?
아니었다. 1년 전, 대통령 선거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토씨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그날 밤 패널로 참석을 한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과 교수가 없었으면 내 머리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을 것이다. 나는 절망했다. 앞이 깜깜했다. 하! 똥배짱밖에 없는 아마추어를 보는 듯했다. 안하무인이었다. 대통령이 보여준 그날 밤의 메시지는 차라리 협박과 공갈에 가까웠다.
4대강 살리기
영산강을 가보십시오. 지금 아우성입니다. 빨리 영산강을 살려주십시오, 하고 전라도 도민들이 아우성입니다. 부산은 어떻고요? 부산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산강과 낙동강 하구는 지금 공업용수로도 못 씁니다. 그 정도로 수질이 악화되어 있습니다.
맞다. 살려야 한다. 공업용수로도 사용하지 못하는 낙동강과 영산강을 빨리 살려야 한다. 그래서 식수원과 공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도대체 4대강이 왜 저 지경으로 오염이 되었나?
대구 시민들이 지금 낙동강에 흘러들어온 다이옥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물과 공기가 없으면 우리 인간은 하루도 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정부는 그 문제의 근원을 빨리 찾아 대책을 세워야 한다.
과연 4대강 살리기를 하면 이런 문제점들이 사라질까? 그리고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을까? 강둑을 쌓고 그리고 바닥을 파내고 둑 옆에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더 나아가 체육테마공원으로 탈바꿈을 시키면 4대강이 전부 깨끗한 강으로 탈바꿈을 할까?
그렇다면 묻는다?
크고 작은 공단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폐수는 어느 강으로 흘러 보내야 하나?
소와 돼지 축사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그 분뇨들은 또 어느 강으로 흘러 보내야 하나?
사교육을 잡고 공교육을 바로세우기 위해
지금 영어 하나 때문에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아이들이 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필리핀에도 나가고 심지어 몽골에도 우리 어린 아이들이 나가고 있다. 이런 참담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서 정부는 자립형 사립고를 지방 곳곳에 만들고 있다. 기숙사형으로 지어서 가난한 아이들을 30프로씩 뽑을 것이다. 그리고 외화를 절약하기 위해서 특목고와 국제중학교를 세우는 것이다.
생략하고. 차라리 옛날식으로 돌아가자.
일류고등학교가 존재했던 그 시절로!
특목고는 왜 만들고 국제중학교는 또 왜 만드는가?
그리고 진실로 영어를 잡기 위해서라면 딱 하나, 대학교 영어시험만 바꾸면 된다.

용산참사를 바라보는 두 시각
그날 밤 대통령은 용산문제를 언급하면서 시종일관 법치를 강조했다. 좋은 말씀이다. 법이 살아 있어야 한다. 특히 법은 약자를 위해서 살아 있어야 한다. 법은 진실로 강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존재 목적은 국민을 위해서다.
특히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정부의 존재목적이다.
부자들을 돌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용산참사를 놓고 대통령은 시종일관 법치를 강조했다. 원인은 아예 없었다. 저렇게 시치미를 뚝 떼면 속이 편할까? 순간 튼튼한 위장이 부러웠다. 아니다. 튼튼한 머릿속이 부러웠다. 사람이 여섯 명이나 죽었는데, 원인과 대책은 휘발되고 없고 법치의 깃발만 만장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소통은 정말이지 강 건너 등불인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 달을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달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계속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다. 1년 전에도 지금도 계속해서 약속이라도 하듯 국민들이 가리키고 있는 달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가장 미운 손가락 하나를 결국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에는 충신이 없다.
있다면 간신들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를 치고 있다. 그러니 어느 장관이 대통령 앞에 나서서 아닙니다, 하고 직언을 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곧 법인데 어느 국회의원이 그 앞에 나서서 아닙니다, 하고 직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이 설계를 하고 그리고 시공까지 하는데 어느 참모들이 감히 그 앞에 나서서 아이시더! 하고 직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직언을 했다가는 당장 목이 날아갈 텐데.
간신의 목은 그래서 고래심줄보다 더 질긴 것이다.
하나만 묻고 싶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뉴타운 건설인가?
재개발을 하면 누가 큰 이익을 보게 되고, 누가 눈물을 흘리며 쫓겨나는가?
뉴타운을 건설하면 누가 큰 이익을 보고, 누가 눈물을 흘리며 변두리로 쫓겨나는가?
답은, 대형건설사들과 투기꾼들이다.
진실로 급한 것은 개발도 뉴타운 건설도 아니다.
갈기갈기 찢어진 국론분열이다.
그리고 국민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통합이다.
지금 한국은 법이 사라지고 없다.
무법천지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검찰, 경찰, 행정부, 여당은 누구를 위해 존재를 하나?
똥덩어리보다 못한 것들!
뒷이야기- 도대체 오늘 나의 삶은 누구를 위한 삶인가? 나를 위한 삶인가? 아니면 나의 군주를 위한 삶인가? 그것도 아니면 내 이웃과 국민을 위한 삶인가? 이 철학적 문제를 가지고 우리는 고뇌를 해야 한다. 그리고 답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가치 있는 삶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길게 산 삶과 짧게 산 삶 중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하나다. 어떻게 살았나? 전체를 위한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다. 1인칭 삶이 아닌 3인칭 삶이 우리 모두를 끌어안는 것이다. 200922도노강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