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승현이, 오늘 졸업하다

오주관 2009. 2. 11. 17:36

  

 

지난 1월에 올라온 승현이. 내가 3분의 1 키운 조카다. 돌 전, 내려가 대문을 열고 승현아! 라고 부르면 무릎걸음으로 허겁지겁 기어나오곤 했던 아이.

 

나에게는 알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짐승도 내 앞에만 서면 온순해진다.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릉! 하는 사나운 개도 내가 워리 워리! 하고 다가가면 금방 마약을 먹은 놈처럼 꼬리를 내리면서 오줌을 질질 내갈긴다. 이 싱기비 같은 놈! 하며 머리통을 한번 쓰다듬어 주면 자존심을 버리고 뒤로 벌러덩 눕는다.

 

비법이 뭔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가 아니라

대상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면 된다고 말하겠어요~

어느 날 다앙신이 나아를~

버어리이~ 지 않겠지요~

 

 

  

승현이 형. 귀신을 두드려 잡는다는 해병대 출신의 사나이. 이 세상에서 자기 형을 제일 좋아한단다. 언어연수 때문에 작년에 미국에 간 조카. 1년 동안 뉴욕에 있다 지난 2월 2일날 귀국했다. 그곳에서 알바를 해 용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빨리 언어를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인간성이 풍부해 친구들이 많다. 그리고 사람들을 잘 사귄다. 분명 삶에 플러스다. 사람만큼 더 큰 재산이 있을까.

 

 

  

지난 해, 미국 대사관에 온 날. 무교동의 낙지비빔밥은 별로인지 잘 먹지 못했다. 동해 사람은 낙지와 홍어를 잘 먹지 못한다. 대신 문어는 좋아한다. 낙지비빔밥을 먹고 종로의 삼성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갔다. 나는 눈이 아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접근을 하지 못했다. 뒤에서 성일아 성일아! 뒤로 물러서라.후퇴! 했지만 요지부동. 고소공포증이 있나?

 

사실 저 나이 때는 나도 높은 곳에 잘 올라갔다. 내 친구 원학이가 지금의 나처럼 몸을 덜덜 떨며 내려오라고 살살 달래곤 했다. 아무꺼시야, 빠, 빠알리 내, 내려오너라, 내 몸이 떨려 죽겠다. 안 들은 척 하면 씨, 씨발놈아, 빨, 빨리 내려오너라. 하드! 아, 알았다.

 

여름이면 우리는 백상아리들이 진을 치고 있는 다리로 피서를 간다. 다리 밑에는 재수없이 떨어지는 인간이 있으면 한 입 먹으려고 입을 쫙 벌린 채 보초를 서고 있는 백상아리들이 있다. 아무도 다리 난간 위에서 쇼를 하지 않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안으며 더위를 쫒고 있을라치면 어느 허수아비 하나가 다리 난간 위에 머리를 박고 물구나무를 선다. 또 시작이다. 하고 일천이가 씨부린다. 그러면 학이가 뒷걸음을 치며 저, 떠, 떠갈놈 또, 시, 시작이다, 하고 심장이 오그라 붙는 소리를 낸다. 하드! 하고 말하면 더듬이 학이는 아, 아, 알, 았, 다! 를 외치며 사라진다. 그리고는 뭐가 빠지게 점빵에 달려가 하드 하나를 사온다. 물구나무 해제. 입을 쫙 벌린 채 한 입 먹어볼까 하고 기다리고 있던 백상아리들이 뭐라고 뭐라고 물을 튀기며 사라진다.

 

겁이 너무 많아 주전부리와 술담배 부주를 많이 한 내 단짝 학이. 중학교 때, 동네에 잔치만 하면 우리는 쳐들어간다. 부주도 없이 상 하나씩을 받아 푸지게 먹는다. 국수 두 그릇이 기본이다. 그리고는 감주와 잡채를 닦아넣는다. 그 다음은 돼지고기. 몰래 술 한잔을 털어넣고는 돼지고기를 먹는다. 여기서 갈라진다, 식성이. 학이는 한사코 돼지비계만 먹는다. 나는 살코기. 맛 있나? 꼬시하다.

 

부산에 살고 있는 그를 못 만난 지 얼마인지 모른다. 어느 해, 한밤중에 학이는 맨발로 백 몇 십 리 길을 달려간다. 어머니가 계시는 부산으로.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그 슬픈 이야기를.

 

 

  

그 어디인가를 내려다 보고 있는 성일이. 그래, 쳐다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씩 세상을 내려다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어깨동무를 해야 한다. 그런 세상을 21세기에는 구해야 한다.

 

삶은, 경쟁이 아닌 전체가 하나가 되어 사는 것이다.

경쟁을 쫓으면 우리 인간은 결국 미쳐버리고 만다.

경쟁을 온몸으로 밀어내어야 한다. 

 

성일아, 가장 가치 있는 삶은, 1인칭 삶이 아닌 3인칭 삶이다. 더불어 다같이 웃으며 살 수 있는 삶 말이다. 오케이!

 

그리고 요즘 삼촌은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삶을 그리고 있는 파울로 코옐로라는 소설가와 소통을 하고 있다. 그가 한 말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죽는다.

문제는, 어떻게 살았느냐! 만 남는다.

 

 

  

수빈이가 조카 승현에게 안긴 날. 사람을 가리는 수빈이의 표정이 대략 난감하다. 할아버지가 왜 이 아제에게 가라고 했을까? 하고 생각에 빠져 있다. 승현이의 표정은 내 품에서 빠져 나가면 안 돼! 수빈아, 아제 체면 좀 살려줘.

 

승현이가 오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도서관에서 거시기 포로젝트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조카 승현이었다. 삼촌, 저 오늘 졸업했습니다. 그래? 예. 졸업식을 마치고 나와  밥을 먹고 있다고 했다. 하! 축하한다. 개아니더. 임마, 그래도 축하한다. 옆의 형에게 전화를 건넸다. 삼촌, 접니다. 성일아! 예. 승현이 축하해줘라. 예.밤에 호프도 한잔 사주고. 예.

 

이놈이 그 말썽 많은 K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합격을 했다. 특목고 학생들을 무진장 좋아한다는 K대학교. 지방의 일반고 출신인 조카.

 

승현아, 제발이지 거시기 대통령을 닮으면 안 된다. 공부도 공부지만, 책을 무지막지 읽어 머릿속에 세상의 많은 정보를 저장해라. 밑천이 많아야 된다. 밑천이 짧은 거시기 대통령을 보아라. 지금 나까무라상이다. 나라말도 잘 모르는 거시기 대통령. 그런 인물이 되면 안 돼!

 

그리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대학교를 나왔느냐? 가 아니다. 서울대학교를 나와도 인간 구실을 못하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삼촌이 고등학교 다닐 때 같은 반의 꼴지가 서울대학교에 갔다. 그놈은 토요일만 되면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그 대학교의 교수에게 비싼 돈을 지불하고 사사를 받았다.

 

沙上樓閣. 결국 그놈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미쳐버리고 말았다. 모래밭에 집을 짓다 망한 것이었다.

전문대를 나와도 인간 구실을 하는 자들이 있다. 문제는 하나다. 어떻게 공부를 했느냐! 이다.

 

승현아, 입학을 하면 부지런히 닦아라. 세상의 모든 지를. 知의 피라미드는 이렇다. 知가 가장 하빠리다. 그 위가 好다. 좋을 호. 그 위가 樂이다. 즐길 락. 마지막이 狂이다. (이건 삼촌이 넣은 거다) 미칠 광. 미치면 네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잡을 수 있다. 알았지?

 

그리고 알아라. 지금부터 너는 거지다. 知를 구하는 알거지. 네 깡똥에는 세상의 모든 知를 다 담아야 한다. 천천히, 황소의 걸음으로 가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