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진보로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은 내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것이다.
자연은 과학이다. 계절 또한 과학이다. 한국은 이제 가을이다. 전국의 유명한 산들은 붉은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아름답다. 자연은 이렇게 우리 인간에게 무상으로 기쁨을 주고 있다. 따지고 보면 자연은 시작과 과정과 결과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팔색조다. 권력에 따라 어제의 원칙이 오늘 또 다른 원칙으로 변하고 있다. 시작은 있어도 과정과 결과는 다르다.
한국에서 진보로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하다. 지금 나라의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자.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한평생 몸을 바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비 제막식이 있던 날 보수단체의 사람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북으로 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놓고도 이념의 극렬한 싸움이 벌어졌다. 우리 국민이 선택한 전직 대통령에게 향한 분노의 돌팔매. 두 대통령에게 향한 구호는 ‘빨갱이’ 아니면 ‘좌파’ 였다. 그리고 얼마 전 국정원이 국가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며 거액의 배상을 요구하며 제소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사건도 그 연장이다. 그 사건들을 바라볼라치면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들의 화살이 왜 진보를 향하고 있을까?
그들이 노리고 있는 그 끝은 무엇인가?
그런 사건들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이 되고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 정권. 그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죄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친일파들을 제거하지 못한 그 죄인 것이다. 외국을 보자. 이차 대전이 끝나고 독일과 프랑스는 나치에 부역한 그 죄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그 죄를 묻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죄를 묻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그 때 그들의 죄를 엄중하게 물었으면 오늘날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돌아보자. 그 때 일본에 붙어 나라의 독립을 방해하며 친일을 한 친일파의 후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그 때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군 후손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친일파 후손들은 지금 나라의 한복판에서 권력과 부와 명예를 한 손에 쥔 채 나라의 안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조, 중, 동도 그 가운데 하나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군 후손들은 중국과 구소련 그리고 나라의 변방에서 이름 없는 존재로 가난과 싸우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 간격은 하늘과 땅이다. 지금 무슨 수로 그 간격을 메운다 말인가. 역사는 발전을 해도 그 때의 그 잘못은 발전된 역사에서 제외된 채 굴러가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는 바른 나라인가?
얼마 전 국회에서 있은 청문회. 총리후보자에서 장관까지 약속이나 하듯 범법사실이 줄줄이 들통이 났다. 위장전입은 물론이고 논문표절과 위증, 그리고 다운계약과 탈세 등등이 뒤를 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과연 우리나라가 법치국가이냐? 나라의 법을 솔선수범 지켜야 할 자들이 법을 어겼는데, 그런 그들이 과연 국민들에게 법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라의 대통령에서 장관들까지 줄줄이 법을 어긴 자들이 국민을 향해 법치를 이야기할 수 있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야 한다. 법은 평등해야 한다. 법은 지켜져야 한다. 지켜지지 않는 법은 법이 아니다. 그리고 정부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어긴 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이 정부.
과연 이 정부는 바른 정부인가?
그리고 안타까운 사실은 뜨거운 이념의 깃발을 내세운 채 현장에 나타나는 그들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밖은 보수이지만 실상 안은 진보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정치적 기술, 그리고 무지와 탐욕이 만나 오늘도 우리 인간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있다. 보고 듣는 것에서 머물면 우리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왜?
어떻게?
라고 항상 묻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분석과 해석 그리고 실천적 각론이 필요하다. 오늘 당장의 작은 이익이 아닌 내일 더불어 삶을 바라보는 건강한 눈과 의식을 가져야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뒷이야기- 지난 화요일 밤에 본 피디수첩. 반지하가 전세 5천만 원이라고 한다. 서울시에서 지은 시프트라고 하는 20년 전셋집은 구호에 불과하다. 서민들을 위해 짓고 있는 임대아파트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도대체 국가의 존재목적이 무엇인가?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시장경제주의는 한마디로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미국식 경제주의다. 성장위주의 경제지상주의다. 문제는 서민들이다. 서민들이 이 깜깜한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있다. 정치다. 우리 삶을 바꿀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정치뿐이다. 정치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 서민들의 삶은 희망이 없다. 없는 자들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선거다. 없는 자들은 없는 자들을 지지해야 한다. 없는 자들이 있는 자들을 지지하면 결국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다. 무지를 깨어야 한다. 탐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깨어 있는 의식이 하나로 모일 때 서민들의 힘은 커지고 가진 자들은 몸을 도사린다. 뭉치고 힘을 합해야 한다. 20091012도노강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