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을 보내면서
12월은 감기에 포위가 된 채 골골거리다 시간을 다 보낸 듯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낫지를 않았다. 또 일주일. 신종풀루인가 의심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날 잠자리에서 횡설수설했다. 거시기, 만약에 내가 거시가 하면 저기 앓지 말고 거시기 해라. 옆지기는 절대 신종풀루가 아니다 라고 했다. 그 이유로 열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건 열이 아이가. 그건 식은땀이에요. 식은땀과 열은 다른가.
채식주의자로 돌아선 내가 면목이 없다. 지나개나 막 먹는 사람들은 감기에 끄덕 없고 알짜배기만 찾아 먹는 나는 감기에 멱살이 잡혀 꼼짝을 못하고 있다. 몸살까지 닥쳐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었다. 기침, 콧물, 오한, 부은 목.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마지막으로 항생제를 넣어 드릴게요. 사람 좋은 닥터 김이 말했다. 침을 삼킬 수가 없었다. 한 이십 일 감기로 앓은 것 같다. 그 좋아하는 술도 못 먹고. 대신 간은 엄청 건강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몸이 아프니 만사가 시들해졌다. 의욕도 사라지고. 오늘에 와서야 조금 풀리는 기분이다. 그러나저러나 12월 후반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있다. 쓸쓸하다. 어젯밤 바라본 겨울밤 풍경. 사람에겐 사람만큼 좋은 약은 없다. 지난 유년시절, 내가 자란 오천읍에는 교회가 하나뿐이었다. 그 교회에서 주말만 되면 종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그 소리를 들을 따마다 내 가슴은 꽈리처럼 부플어 오르곤 했다. 막연한 그리움 같은 것이 밀려온 것이었다. 나는 미친 놈모양 집을 나와 어디론가 정신없이 걷는다. 문화주택을 지나고 밭을 지나고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동굴을 지나고 동네를 지나고 지나 내가 도착한 곳은 탱자나무로 울타리가 처져 있는 교회. 교회 안에서 들려오는 노래소리. 나는 귀를 기울이며 합창을 듣곤 했다. 저들은 무리이고 나만 혼자다. 그 사실이 쓸쓸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미친 듯 집을 나와 그곳으로 향한 것은 막막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사람의 냄새가 그리웠던 것이다. 사람. 우리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언덕은 사람이다.
며칠만에 의자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다. O holy Night. 먼 길을 떠나고 싶다. 시골 길을 걷고 싶다. 요컨대 이곳이 아닌 저곳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경상북도 영일군 오천읍 시장 안의 허름한 국밥집. 그 안에서 뜨거운 국밥을 안주로 쓴 소주를 마셔도 좋을 듯싶다. 용덕동 4반의 중심에 자리잡은 보리밭에서 겨울이면 언 손을 호호 불며 새끼로 만들어 공을 차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오후면 시린 발을 달래며 꼬리연을 날리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고드름이 꽁꽁 얼어 있는 추운 겨울밤, 아버님이 전기곤로에 끓여준 우유 한잔을 맛있게 먹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내 그리움의 근원은 자연이다. 그리고 사람이다.
뒷이야기- 2010년에는 좋은 일들로 가득했으면 한다. 신종풀루 같은 게 나타나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안 된다. 가난 때문에 우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한다. 병 때문에 희망의 끈을 놓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무지에서 해방되었으면 한다. 간단하다. 내가 당신이고 우리 모두다. 내 행복은 이웃의 고통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이건희의 부는 이건희 혼자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리고 천재 하나가 만 백성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 그 사고가 우리 전체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내 부는 네의 것이고, 세상의 부 역시 우리 모두의 것이다. 절대 당신 혼자의 부가 아니다. 이념을 가지고 편 가르기를 하면 우리는 절대 통일을 만날 수 없다. 이념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 이념은 진실로 버려야 할 쓰레기에 불과하다. 이 추운 겨울을 얼지 않으려면 껴안으면 된다. 하늘 아래 잘난 사람은 없다. 하늘 아래 못난 사람도 없다. 다 존귀하다. 저 창밖의 겨울 밤풍경을 보라. 얼마나 춥고 쓸쓸한가. 291226도노강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