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달빛 충만한 어느 날 밤의 단상

오주관 2011. 9. 28. 20:22

 

 

달빛이 충만한 어느 발 밤의 단상

 

#1 불안한 영혼은 잠을 자지 않는다

얼마나 불편할까. 얼마나 정신이 저리저리할까. 거짓은 들통이 나게 되어 있다. 덮는다고 덮어지지 않는다. 잡초를 아무리 밟아도 오는 봄은 막지 못한다. 아무리 성을 높이 쌓아도 오는 겨울은 막지 못한다. 그와 그들의 끝은 비참할 것이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군자는 중용을 실천하는 자이고, 소인은 중용을 실천하지 않는 자이다. 그럼 중용은 무엇인가. 희노애락이 발현되지 않은 상태-도올 김용옥 교수

 

#2 달빛이 충만한 밤의 소나타

자나? 아니요. 흠. 왜요, 허전하세요. 응. 채식주의자는 항상 배가 좀 고프다. 먹는 거라고는 오로지 현미밥과 채소 그리고 된장이다. 반찬으로 고기라도 좀 집어먹으면 포만감이라도 있는데 채식을 하고부터 포만감이 사라졌다. 늘 허전하다. 그래서 막걸리를 한잔씩 하곤 한다.

 

오늘 같이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면 술이 당긴다. 걸쭉한 막걸리가 친구하자고 코끝을 쓰다듬는다. 오늘 같은 밤에는 시원한 장수 막걸리를 잔 가득 부어 꿀떡꿀떡 들이키면 속도 차고 마음도 차오른다.

 

어둠 속에 핸드폰을 쥐고 누른다. 새벽 1시 6분이다. 어불싸, 이제 막걸리를 파는 가게는 없다. 슈퍼에는 장수 막걸리가 없다. 순간 입안이 쩍 갈라진다. 사막이다. 고비사막에 서 있는 기분이다.

 

 

 

 

#3 허공을 바라보며 하는 넋두리

그래도 다행이다. 현림이가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 합격이 되어서. 그러게요. 70명 모집에 4900명. 정말 다행이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꽹과리까지 치면서 고군분투한 꼬맹이가 자랑스럽다.

 

혼자 독일에 떨어진 꼬맹이. 그 때부터 무소의 뿔처럼 당당하게 개척해 나간 꼬맹이. 전혜린과 닮은 구석이 많다.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옮길 때마다 이삿짐을 혼자서 끌고 당기며 기진맥진했을 꼬맹이. 나중에 한 획을 그을 거야. 걔가 무서운 구석이 있어요. 정신이 허하면 언제든지 돌아오너라. 이곳은 네의 쉼터다. 유럽의 만만디는 중국의 만만디를 능가한다. 행정이 그렇고 모든 사회서비스가 늘보 모양 느려 터져 있다. 그런 면에서는 한국은 천국이다.

 

세탁! 하고 세탁물을 가져가서 세탁을 한 후 다시 세탁물을 가져다주는 나라. 병원에 가면 금방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 관공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원하는 서류를 그 자리에서 받아볼 수 있는 나라. 유럽은 서류 한 장 떼는데 일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이제 파리에 있는 미란이에게 가도 되겠다. 그러게요. 그 조카가 정이 많은 아이라 좋아할 거다. 그러게요. 이제 파리에 아파트도 있겠다, 가끔씩 그 곳에 가 언니와 어울리면 외로움도 들고 얼마나 좋을까. 그래요. 파리와 하이델베르크는 크게 멀지 않잖아. 앞으로 왕래 안 하겠어요.

 

 

 

 

#4 달밤에 취하다

왼손으로 가만히 돌린다. 열린다. 당달봉사지만 뚜껑을 열고 오른손으로 국자를 넣어 뜬다. 잔에 따른다. 감각으로. 한 번, 두 번, 세 번. 느낌으로 한 잔 정도 될 것 같다. 뚜껑을 돌려 닫는다.

 

꽉 찬 달빛이 나를 바라본다. 한잔 할텨? 달이 미소를 짓는다. 안주가 없을 텐데. 두부 부친 것 있네. 아몬드도 있고. 카! 독하다. 35도 독주가 매실과 일주일 동안 몸을 섞었지만 독기는 여전하다. 느낌이 34도 정도 되는 것 같다. 다시 마신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두부 하나를 집어넣어 씹는다.

 

누구는 과로사로 죽고 싶다고 한다. 멋지다. 머릿속에 빨간 불이 켜진다. 톨스토이는 어떻게 죽었나. 가진 것 다 버린 채 집을 나와 떠돌다 추운 겨울 밤 역사 앞에서 얼어 죽는다. 멋지다. 헤밍웨이는 어떻게 죽었나. 권총을 입안에 넣고 탕! 당겨버렸다. 멋지다. 나는 어떻게 죽을까. 과로사로 죽을까, 얼어 죽을까, 당겨죽을까. 아니면 굶어죽을까. 어쨌든 멋지게 죽고 싶다. 머리에 권총을 대고 탕! 당겨버릴까. 그것도 멋진 죽음이다.

 

그 전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주고 가고 싶다.

빈 몸으로.

 

뒷이야기-1인칭이 없으면 3인칭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1인칭이다. 3인칭 그 바다로 가기 위해 람보가 되어야 한다. 쉼표를 찍을 수는 없다. 흔들리는 1인칭을 위해 다시 존재를 눕힌다. 머릿속에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온다. 뿌우웅~2011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