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
만약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을까, 나쁠까?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제 오늘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어제 영화를 보면서 내 심장은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오늘 둘레길을 걸으면서도 내 마음은 사막을 걷는 심정이었다. 무거웠다.
그를 보기 전, 그리고 그의 영화를 보기 전만 해도 그는 이 땅의 비주류이고, 아웃사이더이고, 반역의 깃발을 높이 든 뜨거운 피를 가진 혁명가.
어제 오후 대학로에서 우리 두 사람은 피에타를 보았다. 2시 30분에 시작되는 영화였는데 무대인사가 있다는 극장 측의 멘트가 있었다. 조민수와 이정진이 무대에 나와 인사를 한다고 했는데, 정작 무대에 나온 사람은 세 사람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김기덕 감독이 나온 것이었다.
그를 본 첫인상은 차돌이었다. 북극에 가도, 사막에 가도 살아남을 강건한 육체의 소유자였고, 그의 눈빛은 차돌이었고 돌직구였다. 뒤축을 꾸겨 신고 나온 그는 그러나 표정이 맑고 밝았다. 마이크를 쥔 그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20분 정도만 참으시면 그 다음부터는 괜찮을 겁니다.’
무대 인사가 끝나고 시작된 영화. 청계천이 피에타의 무대였다. 사채업자의 똘마니인 이정진,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타난 이정진의 어머니 조민수. 이강도의 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할렐루야 교회와 십자가.
영화를 보면서 나는 사실 편하지 않았다. 각본까지 쓴 김기덕 감독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내 살갗은 더욱 오그라들었다. 마치 나를 보는 듯했다. 영화 속의 대사와 그가 보여주고자 한 주제가 그랬다. 살아 펄떡거리는 날것의 그 언어들이 내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당신과 너무 닮아 있어요.
20도짜리 소주를 들이키는 내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내가 눈물을 보인 것은 김기덕 감독의 본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애와 인류애 그리고 휴머니즘이 강한 가슴이 따뜻한 사나이다.
그는 피에타를 통해 우리 인간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의 끝을
권력의 끝을
종교의 끝을
자본과 종교 그리고 권력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계는 왜 김기덕 감독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나? 한국은 왜 김기덕 감독을 애써 외면을 하고 있나? 김기덕 감독이 지난해 열린 제6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아리랑으로 '주목할만한 시선 상'을 수상했다. 그 때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이창동 영화 감독이 그 영화를 보고 눈물을 훌렸다고 한다. 김기덕 감독이 '왜 우셨어요? 라고 묻자 이창동 감독이 '내가 못 만든 영화를 니가 만들었잖아.' 그 말은 우리가 못 만드는 영화를 당신이 만들잖아.'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주류이자 인사이더 감독들은 틀 안에 갇혀 있고 비주류이자 아웃사이더인 김기덕 감독은 틀 밖에 있는 자다. 그들은 영혼이 자유롭지 못하고, 그는 영혼이 자유로운 자다. 차이라면 그것뿐이다.
김기덕 감독이 그의 영화에서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는 가학성과 폭력성을 관객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을 할까? 어제 피에타를 보기 위해 온 관객들 중에 내 시선을 끄는 사람들이 둘 있었다. 칠십 중반의 노부부와 사십 중반의 어머니와 함께 온 이십대 초반의 젊은 아들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노부부는 피에타를 어떻게 봤을까?
사십 중반의 어머니와 이십 초반의 젊은 아들은 피에타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21세기, 우리 인간들의 주제를 자본의 하부구조인 청계천이라는 곳에서 풀어나간 김기덕 감독의 그 천재성을 관객들은 아, 하고 포착했을까?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를 통해 퍼부은 저주와 경고의 메시지를 관객들은 눈치 챘을까? 그의 영화가 그렇듯이 피에타도 두 부류가 계속 물고 늘어진다. 악과 선. 한쪽은 폭력을 휘두르는 자, 다른 한쪽은 폭력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자.
피에타는 우리 인간들이 풀어야 할 주제를 다루었다. 자본과 권력과 종교를. 피에타는 무겁고 무서운 영화다. 21세기, 우리 인간에게 다가온 숙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1%가 세계의 주인인 질곡의 세상을 눈물 나게 사실적으로 그려 나가고 있다.
돈이 전부인 세상. 그 돈 앞에서 힘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굴복, 좌절, 절망, 죽음뿐이다. 이강도의 방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할렐루야 교회와 십자가는 교회와 십자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채업자는 거대자본가다
미쳐 날뛰는 폭력은 권력이다
자본과 폭력 앞에 눈을 감고 있는 십자가는 고철덩어리다
죽이고 죽는 게임 속에 절망뿐인 그들이 세상을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구원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 지옥의 아비규환을 김기덕 감독은 아주 냉정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병이면서 동시에 세계가 앓고 있는 그 병을. 이제 답은 우리가 찾아야 한다.
묻고 싶다?
당신이라면 우리가 풀어야 할 그 숙제를 어떻게 풀겠습니까?
뒷이야기-김기덕 감독이 만든 영화를 꿰뚫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온 삶을 알아야 한다. 그의 성장배경과 그리고 어떻게 이 세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는지를. 시도, 소설도, 음악도, 미술도 마찬가지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다자이 오사무의 삶을 먼저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