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독수리 5남매

오주관 2014. 12. 1. 15:40

 

 

우리 5남매

나를 중심으로 위로 형님과 누님이 있고, 밑으로 부산에 누이와 포항에 막내 누이가 있다. 누님과 나, 그리고 포항의 막내가 대체적으로 에너지가 많은 편이고 형님과 부산이 내향적이다. 그러니까 조용한 성격이다.

 

지금도 카톡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주고받는 사람은 누님과 막내다. 부산누이는 아무리 긴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다. 심지어 가슴에 힘을 준 채 야호! 하고 불러도 답이 없다. 가는 정이 없어서 그럴까? 그럴 수도 있다.

 

막내 누이의 막내 조카가 지금 계리사 시험 때문에 신림동 고시촌에 있다. 세 번 찾아갔고, 지난주에는 누이와 함께 찾아가 차돌박이 고기를 사주었다.

 

첫날 고시원 방을 얻을 때 나와 같이 돌아다니면서 얻었다. 무더운 7월이었다. 누나가 몇 번지 부근을 얻으라고 했습니다. 그래? 네. 일산 사법연수원에 있는 누나가 바쁜데도 불구하고 찾아와 고기를 사주었다고 했다. 그 때 정신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조카가 어렵게 공부를 하면서 고생을 할 때 삼촌인 나는 그 조카를 한 번 찾아 위로를 해주지 않았고, 고기 한 번 사주지 않았다.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얼마나 스트레스에 시달렸을까?

 

 

   

그 날, 고시원을 얻으러 다니면서 거리에서 본 젊은이들의 두 얼굴. 패기가 넘쳐나는 얼굴과 눈에 초점을 잃은 얼굴이 반반이었다. 언제인가, 다큐 3일에서 이곳 신림동 고시촌을 비추었을 때 마지막을 장식한 그 젊은이가 떠올랐다. S대 법대 츨신인 그는 사법시험에 여러 번 떨어진 낙방거사였다.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시험을 앞두고 있는 젊은이가 자신을 찍고 있는 피디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향의 부모님 때문에 이 시험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피디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저, 여기 옥상에서 뛰어내릴까요?

 

마지막 날 다시 만난 젊은이에게 피디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시험 발표 났어요? 네. 결과는요? 떨어졌습니다. 말을 잃은 건 피디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대 법대 출신을 죽이고 있는 사법시험. 고향의 수재였던 그는 분명 길을 잘못 선택한 것이다.

 

아버지 장례식장을 찾은 조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 조카가 사법연수생들을 무더기로 데리고 조문을 왔다. 3일을 우리 가족과 함께 아버지를 지켰다. 그리고 서울 시립승화원까지 따라와 우리와 같이 했다. 내가 헤어질 때 조카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조카의 손을 잡아준 일밖에 없었다. 힘이 들더라도 최선을 다해라. 네, 삼촌도 건강하세요.

 

 

   

조카를 찾은 누이와 나

그 날 밤, 차돌박이 고기를 구워 먹는 조카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조카 윤이 떠올랐다. 누이는 밤 7시 30분에 조카 진을 만나기 위해 광명에 가야 하기 때문에 밥을 먹지 않았고, 나도 차돌박이 대신에 된장에 밥 한 그릇만 먹었다. 윤도 오늘처럼 누군가가 찾아와 고기를 사주면서 힘을 보태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나뿐인 언니는 지금 프랑스에 살고 있다. 그 때 그 시절, 자신을 찾아준 사람은 부산의 어머니와 아버지뿐이었다.

 

 

   

언니와의 다짐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던 매제가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공단에 공장 하나를 임대해 식품회사를 경영하다 IMF를 만난다.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 매제네. 그 때 독수리 5남매의 하나인 내 누이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누이가 일한 곳은 세차장. 때는 여름이었고, 고등학교 회장인 언니가 하교 길에 비지땀을 흘리며 차를 닦고 있는 자기 어머니를 본다.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집에 돌아온 언니는 동생을 불러 손을 잡는다.

 

윤아, 엄마가 지금 우리를 위해 세차장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다. 언니, 정말? 그래. 그러니, 우리 둘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해 어머니를 구해야 한다. 알았니? 응.

 

언니는 프랑스로 날아가 그곳 대학교에서 알바를 하면서 공부를 한다. 그리고 방학 때마다 부산에 와서는 알바를 해 비행기 값을 마련해 가곤 했다. 지금은 몽마르트 언덕 부근에 아파트까지 하나 장만을 해 크리스토프라는 프랑스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교수의 제자 사랑

두 번 사시에 떨어졌을 때 가장 안타까워한 사람은 가족이 아닌 교수였다고 한다. 너는 꼭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조카가 계속 떨어지자, 정 안 되면 학문의 길을 가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은 지도 교수. 조카는 내심 결심을 한다. 이제 사시를 포기한다! 자기 때문에 삶을 희생하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서도.

 

부산에 내려가 직장을 알아보면서 어느 날 KBS퀴즈프로에 나온 모양이었다. 그 프로에서 조카는 전국을 상대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이제 사법고시는 포기했으니 이 프로를 보고 계시는 회장님들, 저를 꼭 좀 채용해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프로에 누나와 포항막내 누이도 참석을 했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이 서방이 조카를 일으켜 세우다

그리고 얼마 후 포항 이모네 집에 갔을 때, 포항시청의 이 서방이 저녁을 먹고 술을 한잔 하면서 조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윤아, 시험 두 번 떨어졌다고 포기하나? 옛날로 따지면 과거시험인데, 과거시험을 두 번 보고 포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너, 지금까지 공부한 게 아깝지 않니? 어떻게 포기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니? 관운이 없는 사람이 있다. 다시 한 번 더 도전해봐라. 그래야 너 자신도 그런 네를 인정할 것이다. 삼 세 번이라고 했다.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해 도전해보라, 이모부는 너 실력이 아까워 너무 안타깝다.

 

순간 조카의 눈이 반짝 했다고 한다. 자기 부모도 이제 포기한다고 생각하고 그 퀴즈프로에 동참을 했다. 그런데 이모부라는 사람이 다시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이었다. 부산의 동생 내외도 사실 지친 상태였다. 그 때 조카가 이모부를 향해 말했다.

 

이모부님, 저 한 번 더 해도 될까요?

그래, 도전해라, 너 실력이 너무 아깝다.

 

 

   

시험 전날 밤

마지막 시험을 보는 전 날 밤, 포항의 막내가 부산의 언니를 호출했다. 언니, 포항에 와 나하고 같이 서울에 올라가자. 그리고는 포항누이가 죽도시장의 엿을 만드는 곳에 전화를 해 엿을 주문했다고 한다. 새벽에 기차를 타고 올라가니 엿을 만들어 놓으라고. 그 전 날 밤. 큰언니에게도 전화로 연락을 해놓았다. 언니도 그 시간에 시험장소에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KTX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독수리 5남매 중 두 사람,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신촌에 내려 시험장소인 연세대 정문으로 가니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기지고 온 엿을 학교 정문에 붙여야 하는데, 엿을 녹일 장소가 없었다. 기지를 발휘한 포항 막내가 불을 밝힌 채 장사를 하고 있는 호떡장사에게 다가가 사정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사장님, 제 조카 하나가 오늘 여기서 사법시험을 보는데 이 엿을 좀 녹여 줄 수 없습니까?

하, 그래요? 녹여 드리지요.

하면서 호떡 굽는 철판에 포항에서 가지고 온 엿을 넣어 철철 흐르도록 녹여주었다. 너무 고마워 막내가 호떡 장사 아저씨에게 2만 원을 주면서 말했다고 했다.

사장님,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조카가 합격하면 인사하러 올게요. 건강하시고 돈 많이 버십시오.

조카가 합격하면 저도 영광이지요. 꼭 합격하길 바랍니다.

 

 

   

엿을 보자기에 넣은 세 자매가 달려간 곳은 연세대 정문. 정문에 도착하니 경비가 세 자매를 눈이 빠지게 쳐다보고 있더란다. 저 날카로운 레이저를 어떻게 피하나? 막내가 부산 언니를 바람막이로 세워 경비의 눈을 분산시켰고, 그 사이 큰언니와 막내 자신이 아직도 뜨거운 엿을 철문에 죽을힘을 대해 떨어지지 않게 칭칭 붙였다고 했다. 눈깜짝할 사이에 끝이 났다. 얼마나 열심히 붙였는지 손으로 뗄 수가 없을 정도로 감고 감은 모양이었다.

 

시험이 시작되다

어느새 날은 밝아 태양이 떠올랐고, 사법시험을 보는 수험생들을 태운 버스가 고사장 안으로 들어갔고, 세 자매는 조카를 보려고 목을 뺀 채 들어가는 버스를 쳐다보았지만 결국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행히 세 자매는 종교가 하나였다. 이제 큰 누나는 가톨릭으로 개종을 해 12월이면 영세(세례)를 받는다고 한다.

 

어쨌든 세 자매는 두 손을 비비며 조카가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빌고 빈 모양이었다. 300명을 뽑는 사법시험에 이번에도 떨어지면 조카는 정말 직업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기도는 팔공산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부산의 언니 부부를 부른 건 포항 막내였다. 한번은 들어준다고 했으니 지극정성을 다해 기도를 하자. 당사자인 부산 언니네보다 포항 막내가 더 기도에 매달렸다고 한다. 3, 5, 7, 9 홀수로 절을 한다는 걸 들은 형부는 그렇게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내려가 잠을 청하는 그 시간의 막내는 무릎이 아플 정도로, 아니 해가 떠오를 때까지 절을 하면서 조카를 위해 기도를 했다고 했다. 무려 삼 개월을. 팔공산 갓바위를 자기 집 드나들던 식으로 다닌 그 결과는?

 

막내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다

시험을 본 그 날, 조카의 말에 의하면 두 번 볼 때마다 꽉 막힌 그 문제의 유형을 다시 대했을 때 갑자기 장막이 걷히더라는 것이었다. 그 문제를 보는 순간 미소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그 문제를 풀었다고 했다. 드디어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벽이 열린 것이었다. 1000명 뽑을 때 떨어진 조카(아주 민감한 정치적인 문제가 사실 자신을 많이 괴롭혔다고 했다)가 300명 뽑는 그 날 시험에 비로소 자신감이 붙더라는 것이었다.

 

 

   

조카를 본 막내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으면서 세 자매는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조카를 보기 위해 개미 수천 마리가 엿에 들붙어 있는 정문에서 기다리고 기다렸다. 드디어 정문 앞으로 나타난 버스. 막내가 본 조카는 헌 운동복 차림이더라고 했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얼굴이 그렇게 맑고 밝더란다. 아, 됐구나! 윤이 드디어 됐구나! 막내는 포항의 자기 신랑에게 문자를 보냈다. 윤이 얼굴이 그렇게 맑고 밝네요. 세 자매는 엿이 붙어 있는 철문을 향해 고개를 연신 숙이며 감사의 기도를 했다고 한다.

 

연수원의 조카에게 문자를 보내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한 번 찾아가 위로를 못해준 조카 윤. 기운이 빠져 어깻죽지가 축 쳐져 있을 때 찾아가 고기 한 번 못 사준 조카. 그런 조카에게 내가 요즘 해주는 일은 가끔 지쳐 있을 조카를 위해 문자로 힘을 실어주는 일뿐이다. 그럴 때마다 감사하고 용기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는 답을 보내오는 조카.

 

며칠 전 밤에 조카에게 보낸 문자.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문제는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초심을 잃지 말고, 그리고 벽이 나타날 때마다 세차장의 어머니를 떠올리고, 그리고 프랑스의 언니와 한 그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다. 윤아, 행진하는 거다! 네, 삼촌, 용기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삼촌도 꼭 건강지키세요!

 

 

   

막내가 어제 보낸 문자

오빠, 지금 오빠가 많이 힘 든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틀림없이 좋은 일이 다가올 것이다. 오빠, 기운 잃지 말고 용기백배 살아보자. 오빠는 누구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반드시 큰 결실이 오지 싶다, 오빠.

 

 

뒷이야기-에너지가 많은 사람은 따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반대로 적도 많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의 특징은 목소리가 대체로 높다. 막내는 포항의 김부선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수년 간 부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사실을 안 막내가 그 문제를 공론화시켜 결국 3천만 원을 삼킨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아내었고, 그 주인공은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촌극이 벌어졌다. 막내의 가족사랑은 끝이 없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회에 관한 한 한이 없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 막내가 회를 한 달에 한 번씩 공수해주곤 했다. 그걸 일회용 비닐에 담아 냉동을 시켜 아버지에게 드린 형수의 그 정성도 대단했다. 그 막내의 가족사랑이 이제 어머니에게 향하고 있다. 오빠, 내 축농증 수술 끝나면 엄마가 먹을 수 있게 음식을 만들어 보낼게. 우리 독수리 5남매가 어머니를 살려야 한다. 내가 그 역할을 할게. 오빠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키워 갔으면 좋겠다. 오빠, 힘내라! 2014121도노강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