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시작과 끝
법환포구에서 바라본 한라산
제주에서 본 항구 중 가장 마음에 든 곳이 법환포구다
그리고 법환마을이다
옛부터 배산임수라 했다
산과 물, 아니면 바다가 있어야 한다
물이 있어야 숨통이 트인다
사색하기 좋은 이곳은 우연히 네비가 말해 횡재를 한 사려니숲
알고 간 곳이 아니다
아,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사려니숲이구나
차에서 내려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추웠다
다음을 기약학고 잠시 후
우리는 돌아섰다
숲은 인간에게 쉼을 제공한다
마음이나 육신에 병이 찾아오면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 숲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숲은 병든 육신과 마음을 치유시키고 그리고 힐링을 붙여준다
탐욕과 욕망을 내려놓으면 치유와 힐링을 만난다
강남에서 영어학원을 해 대박을 친 옆지기 동료가 있다
알바 선생 한 사람, 그리고 월세와 기타 비용 등을 제외하고 한 달 수입이 8백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런데 그녀가 유방암 3기라고 했다
당연히 병원행
모든 걸 내려놓고 배낭 하나 매고 숲으로 가라고 했다
숲에 가서 숲과 친구가 되라고 했다
영어학원을 하면서 온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면서 그녀만의 교재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무한경쟁에서 어쨌든 그녀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그런 그녀가 암에 덜컥 걸려버렸다
살아야 한다
내려놓고 산으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숲 대신, 학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어떻게 잡은 학원인데?
내 목숨인데
맞다, 목숨을 함부로 못 내려 놓는다
결코 마음대로 놓을 수 없는 무거운 주제다
삼식이와 삼돌이 친구들이 놀고 있는 범섬
다시 찾은 범섬
삼식이와 삼돌이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범섬이지만 내일은...
그리고 이 여행의 끝은?
탕탕탕!
배를 몰고 나가 문어도 잡고 도다리도 잡고 오징어를 잡아 해물 칼국수 장사라도 했으면 좋을 아름다운 포구다
애월읍 어디에 있다는 문어해물라면, 우리도 가보았다
방송이라는 막강한 힘에 우리 모두는 미안하지만 포로가 된지 오래다
우리고향의 그 국수집처럼 간이 부어 있는 곳
맛도 별로 없는 짠 라면을 먹기 위해 오늘도 허재비들은 줄을 서 기다릴 것이다
칼국수로 서울에서 네 손가락 안에 든다는 찬씨 칼국수 집을 가보았다
조개와 해물이 얼마나 많은지 바가지를 하나 준다
그 소문만 믿고
먹었다
속았다
도봉산의 아웃도어 그 골목에 있는 3000원짜리 손칼국수와
도봉산 입구의 나무꾼과 선녀의 2500원짜리 칼국수가 더 맛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속고 살아야 하나
아니, 언제까지 방송이 만들어내고 있는 그 거짓에 놀아나야 하나
제주에서 귤밭에 품앗이를 하루 나갔었다
이 사람은 귤을 못 따는 초짜이니 귤을 날라라 해라
나를 데리고 간 형님과 주인이 귓속말로 주고받았다
알았다는 사인을 보낸다
나중에 따보니 어렵지 않았다
나라시 시키려고 작전을 짰구나
나는 놈 밑에 기는 놈이 된 나
나는 그들이 딴 귤을 날랐다.
일본말로 나라시
일당 12만원짜리 중노동이다
하루종일 돌밭인, 길도 없는 길을 개척하면서 양 손에 귤이 가득 든 바구니를 날랐다
그 다음은 리어카에 싣고 창고로 운반을 했다.
그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목이 탈 수밖에
입안이 사막이 되어 쩍 갈라졌다
주인 형님이 목이 마를 때는 귤을 따먹어라 했다
나는 귤을 먹지 않았다
갈증에 도움이 전혀 안 되었다
물뿐이다
타는 갈증에는, 물이, 최고다
바가지 물을 마시면서 난생처음 귤나라시라는 것을 해보았다.
뭐가 빠지도록
일을 마치고 나는 옆지기에게 주려고 주인이 버린 귤을 포대에 담았다
굵은 귤이 비싼 줄 았았는데,
귤밭 주인은 굵은 귤은 재수가 없다는 듯 그냥 밭에 버렸다
한 박스에 3500원밖에 못 받는다고 했다
귤은 굵은 것보다 작은 귤이 상품이라는 것을 모슬포 부근의 귤밭에 알바를 하면서 배웠다
6만 원 받기로 하고 일을 했는데 7만 원을 받았다
나머지 5만원은 누가 먹었을까?
강원도 홍천에서 책방을 하다 부도를 내고 제주로 도망을 와 제주 사람이 되어버린 그 형님 영감이 먹었을까?
모르지!
형님, 이번에 반드시 그 년놈을 없애야 합니다
그 년놈이 죽어야 우리 모두가 삽니다
동생 말이 맞네!
그 이가와 박가를 쫒아내어야 우리 동네 주민들이 삽니다
그 말이 맞네!
한번 보십시오,
저것들은, 말문을 열었다 하면 전부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두 년놈이, 잘된 일은 전부 내 공이고, 못된 일은 전부 부하나 전직 동장 탓입니다!
그게 되는 소리입니까?
거짓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
그러니 자기 패들도 이제 등을 돌리지요.
맞는 말이야
형님, 다가오는 2017년 동장 선거에 듣도 보도 못한 큰바위가 나타난다는 말씀, 들어보셨습니까?
아니, 금시초문인데?
하, 그래요.
자네, 그 이야기 어디서 들었나?
유명한 역술인이 이미 2009년 봄에 예언을 했습니다
그래?
네.
원래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고는 했네, 그 말대로라면 지금이 난세는 난세지
난세고말고요!
그 이가와 박가를 추방시켜야 우리 동네가 미래를 만납니다
꿈이 살아나고요
그래, 그 말은 진실일세
그런데 문제는 동민들이 아닌가
아직도 당달봉사니, 그게 문제야!
녹내장을 걷어내어야 합니다
눈에 낀 백태도 강제로 입원을 시켜서라도 걷어내어야 합니다
그러게 말이야
형님, 좌와 우를 한번 보십시오
다른 것 같지만 하나도 안 다른, 같은 패거리들입니다
색은 달라도 본질은 하나입니다
지랄이 파도롤 타고 있네 그려
그러나저러나 도대체 큰 바위 얼굴은 언제 나타나나?
이미 2014년도에 우리 동네에 들어왔습니다
그래?
네
단지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때가 되면 나타날 것입니다
하!
시간이 말해 줄 겁니다
어쨌든, 이제는 뛰어넘어야 해!
우도 뛰어넘고 좌도 뛰어넘어야 하네.
문명도, 국가도, 종교도, 이념도, 인종도, 언어까지 뛰어넘는 지도자가 나타나야 해!
반드시 뛰어넘을 지도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암, 그래야지, 그래야 우리 동네가 살아!
한번 기다려봅시다
뒷이야기-함덕에서, 정동진에서 밤이면 밤마다 술을 마셨다. 밤마다 소맥으로 나를 세탁했다. 취해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깜깜한 그 밤이 좋았다. 술을 마셔 내 이성이 눈을 감으면 정의가 바닥에 떨어지고 불의가 힘을 얻는 뒤죽박죽의 우리 대한민국이 어느 정도 용서가 되곤 했다.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지도자가 지금이야말로 우리 경제를 한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그 뻔뻔함을, 그리고 거짓으로 도배를 한 사기꾼이 펴낸 회고록도 용서가 되곤 했다. 반드시 밝혀야 할 국사는 뒤로 감춘 채 치적 아닌 치적을 가지고 자기자랑에 미쳐 날뛰는 꼭지가 덜 떨어진 인간과, 자격도 실력도 안 되는 지도자가 잠시나마 용서가 되곤 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밤시간이 너무 짧았다. 밤의 끝은 낮이 아닌가. 낮이 피비린내 나는 전투이면, 밤은 이성을 잠시 접는 휴식시간이다. 아마 밤이 없으면 미쳐버릴 인간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래서 1%는 늘 괴롭다. 고민과 고뇌 그리고 백척간두 그 끝에 만나는 희망과 꿈. 그 희망과 꿈을 잡기 위해 나는 오늘 다시 배낭을 맨다. 201523도노강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