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올해 92세인 어머니.
고단한 삶을 붙잡은 채 고군분투하고 있다.
작년 4월 93세로 돌아가신 아버님.
아버님에게 못다 한 효를 어머니에게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올여름,
그 무더운 폭염의 나날을 나도 고군분투했다.
7월 중순부터 어머니와 한 방을 쓰면서 대소변을 받아드렸다.
척추협착증 때문에 2년 전부터 휄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30여 년을 형수님이 아버님과 어머님을 모셨다.
대단하다.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효부이시다.
아니, 천사라고 부르고 싶다.
기력이 쇠할 때마다 동네병원에서 빈혈주사를, 그것도 모자라
사이사이 전직 간호사 분을 오게 해 영양제를 놓아드리곤 했다.
형수의 그 지극정성이 통해 어머니가 그나마 저렇게 건강하시다.
공원에서 만난 친구분.
어머니는 92세시고, 옆의 할머니는 올해 100을 넘어 102세시다.
전주가 고향인 할머니에게 귀는 잘 들리십니까? 라고 물으니 어둡다고 하시면서
경상도 며느리가 뭐라고 뭐라고 하면 그게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른다고 하셨다.
할머니, 앞으로 8년을 더 사셔서 110세를 채우세요.
큰일납니다!
지금까지 산 것만 해도 지겨운데, 안 됩니다.
아저씨, 우리 며느리가 들으면 졸도합니다!
날이면 날마다 오후 그 시간만 되면 요양사 아주머니와 나오는 단골 쉼터.
무슨 인연인지, 아버님을 모셨고 이제 어머니를 모신다.
그 요양사 아주머니도 천사시다.
어머니에게 지극정성을 다하신다.
입맛이 없으면 찰떡을 사다 드리시고, 더운 여름에는 냉면까지 사가지고 와
갈증을 풀어주기도 한다.
어머니 곁에는 천사가 두 분이다.
형수님과 요양사 아주머니.
공원 안에 있는 작은 도서관.
요양사 아주머니가 안 오시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공원에 나오곤 한다.
올여름은 유독 더웠다.
긴긴 여름 밤, 어머니는 8번도 일어나시고 많을 때는 11번도 일어나셔서 소변을 보시곤 했다.
그런 밤이면 토막잠을 잘 수밖에 없다.
내가 안쓰러우신지 어머니가 몰래 혼자 일어나 소변을 보시다가 잠을 깬 나와 부딪칠 때가 있었다.
어머니 침대에는 파리채와 효자손이 있다.
만약 내가 자면 그걸로 깨우라고.
야야, 미안해가야.
어머니, 절대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우리 5남매를 어떻게 캐우셨는데요.
마른자리 진자리 다 가려가면서 그렇게 키웠잖아요.
절대 그런 마음, 먹지 마십시오.
오야, 고맙다.
어머니는 여걸이셨다.
고향에 살 때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이 그렇게 어머니를 따르셨다.
우리 집이 동네 아주머니들의 아지트였다.
동네에 무슨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우리 집에 아주머니들이 모여 일을 하곤 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이 어려움에 처하면 어머니는 손수 시장으로 들어가 장사를 하시면서
우리 가정을 일으켜 세우곤 하셨다.
대구 서문시장에 가 양말을 도매로 사와 포항 죽도시장 안에서 양말과 속옷장사도 하셨고,
나하고 겨울에는 붕어빵도 구워 팔곤 했다.
그리고 내가 중학생일 때,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그 밭에(2백평) 겨울이면 아버지와 날이 새도록 똥장군이를 지게에 지고
밭에 뿌리시곤 했다.
여자의 몸으로 겨울이면 산 위에 있는 보리밭에 똥물을 지게에 지고 올라가 뿌리신 어머니.
척추가 고장이 날 수밖에.
어머니를 돌보아 준 두 달 열흘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제, 나는 새로 이사를 한 집에 돌아왔다.
오늘 대구에 있는 막내가 전화를 하니 어머니가 야야, 내가 마이 아프다, 라고 하시더라고 내게 전했다.
하, 어제 나와 헤어질 때만 해도 끄렁끄렁했는데.
불안이 엄습한 모양이다.
마음 때문이다.
늙은 분들이 제일 견디기 어려운 게 마음이다.
마음이 무너지면 몸도 덩달아 무너진다.
이번 여름, 형수님과 내가 지극정성을 다해 기력이 쇠한 어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어제 공원에서 102세 할머니가 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라시는 것이었다.
이제 말도 하네요.
몇 달 전에는 기력이 없어 말도 잘 못 하셨다.
내가 어머니와 숙식을 같이 하면서 안정을 찾으셨다.
마음이 안정이 되니 밥도 잘 잡수셨다.
집으로 복귀를 하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우리 자식들을 전부 불효자로 만들고 있다.
몇 십 년 전 농경사회에서는 자식들이 전부 부모님을 모셨는데, 이제는 열이면 여덟이 요양원에 부모님을 맡기신다.
고향의 5촌 당숙모 두 분이 요양원에 들어가 계신다.
집이 없나, 밥을 못하나?
가을이면 산에 도토리를 주워 와 도토리묵 만드는데 기술이 뛰어난 당숙모도 요양원에 들어가 계신다.
또 한 분 당숙모님도.
말이 쉬워 요양원이지, 현대판 고려장이다.
지게에 지고 산에 부모님을 버리는 거다.
형편이 되어도 요양원, 형편이 안 되어 요양원.
옆지기가 우리는 누가 있어 찾아올까요?
스위스로 가서 한잔 마시고 같이 손잡고 가자.
수갑은 어떻게 해요?
수갑은 그런데 시간이 제법 걸린다.
목숨이 긴 사람은 아마 열흘이 지나도 숨을 쉴걸?
그러니 스위스에 가서 우유 한잔 마시고 편안하게 가자.
요양원, 좋은 데가 아니다.
그러게요.
어머님은 나에게 역마살과 상상력 그리고 열정을 물려주셨다.
여름방학 때 산 위의 밭에 가 콩밭을 맬 때, 내가 더위에 요령을 피울라 치면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일은 손이 하지 눈이 하는 게 아니다.
항상 눈이 먼저 겁을 먹는 것이다.
겨울철, 어머니와 나무도 참 많이 했다.
형님은 도시로 유학을 가고 없고, 고향에 남은 내가 농사일을 함께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있다.
아버지로부터는 정직을, 어머니로부터는 상상력과 열정을.
어머니, 힘을 내어 다시 한번 삶에 불을 지피세요!
가는 그 날까지 우리 5남매가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제 마음 잘 아시지요?
약속 지키셔야 합니다.
뒷이야기-그 해 겨울 경주 분교에 있을 때, 어머니가 서울에서 내려오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대문과 동대문시장에 혼자 가서 일을 보시곤 했다. 길눈이 보통 밝으신 게 아니다. 아마 보름 정도 어머니가 분교에 있었을 거다. 밤이면 마을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가 텔레비전을 보시고, 낮에는 산에 올라가 나는 나무를 어머니는 나물이나 버섯을 채취하곤 했다. 분교 밭에는 냉이와 달래가 정말 많았다. 된장에 넣어 끓여 맛있게 먹었다, 어머니가 가실 때까지. 그 때는 두 다리가 아주 건강했는데. 망할, 시간이, 세월이 어머니 다리를 직립보행을 못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그리고 세월이...2015101도노강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