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94세이신 어머니와 휴일을 보내다

오주관 2017. 3. 6. 13:47



올해 94세인 어머니, 일주일에 두번 수요일과 토요일 어머니를 찾아뵙는다. 2월

18일 토요일, 형수가 사온 붕어빵을 먹는 어머니. 정신이 카랑카랑하지만, 기력이

많이 없으시다. 내가 집에 가면 점심을 먹고는 함께 커피 한잔을 맛있게 드신다.




어머니에게 전복죽을 끓여 드리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수요일에 어머니를 찾아뵙는다. 토요일은 계속 가고. 갈 때마다 죽집에 들러 죽을 사 간다. 밥보다는 죽이 훨씬 맛도 있고, 소화시키기에도 좋다. 한 달 용돈을 죽 사는데 다 쓴다. 주급 10만 원을 받으면 여기저기에 쓰고 남은 내 용돈으로. 2월 22일 수요일, 전날 이마트에서 9900원에 전복 다섯 마리를 사 밤에 혼자 전복죽을 끓였다. 찹쌀과 전복 내장까지 넣어 나름대로 맛있게 끓였다. 다음날 아침, 다 먹고 빈통인 된장통에 전복죽을 담아 어머니에게 갔다. 맛이 있으시지요? 갠찮다. 죽집에 파는 전복죽에 전복이 들어 있을까? 다른 죽은 몰라도 전복죽은 집에서 끓여야 된다. 어머니 혼자 드시면 3일은 족히 드시리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산

94세에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는 정직을 물려받았고, 어머니로부터는 의지와 열정,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물려받았다. 미군부대 전기기술자이신 아버지는 그 해 미군이 철수하고 그 자리에 해병 1사단이 들어왔다. 아버지는 새로 지은 해병 1사단 건물의 옥내배선을 인부 여러 명을 데리고 공사를 했다.


경상북도 영일군 오천면 용덕동 4반 반장님댁 둘째 아들로 태어난 나

초등학교 시절, 겨울방학만 되면 오후에 형님과 함께 오어사 너머에 있는 산으로 간다. 보리밥에 고추장을 넣어 한 그릇 비벼먹고는 보리밭에서 새끼로 만든 축구공을 가지고 축구를 하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오어사 너머에 있는 황사 골짜기로 간다. 황사 골짜기에 도착하면 이미 나뭇단이 여러 보인다. 형님과 내가 지고 가기 좋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뭇단을 묶고는 새끼로 어깨걸이까지 만들어준다. 내가 진 나뭇단, 무겁지 않을 수가 없다. 황사골짜기에서 나무를 지고 일어나 얍! 하고 기합을 한 번 주고는 죽어라 걷기 시작해 집까지 가는데 대충 20리는 넘을 것이다. 활사골에서 오어사, 오어사에서 문충, 문충에서 해병 사격장, 사격장에서 세계동, 세계동에서 오천지서와 극장, 극장에서 오천초등학교를 지나 내 친구 정호네 정미소, 정미소에서 우리집까지 오는데, 8번 정도 쉬어야 도착할 수 있다. 일어서 걷는 순간부터 눈이 무서워 감히 앞을 보지 못한다. 땅만 보며 걷는다. 그렇게 땅과 친구 삼아 8번 정도 쉬었다 도착하는 집. 해는 이미 졌고, 캄캄하다. 배는 등짝에 붙어 있고, 삼다수가 있을 리 없는 나는 부엌에 달려가 바가지로 물을 퍼 허겁지겁 갈증을 달랜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도 그렇지만, 어머니가 대단하신 분이다. 겨울이면 늘 오어사 너머 호랑이가 산다는 황사골로 나무를 하러 가시는 어머니. 그 의지의 어머니가 지금 저렇게 지는 해가 되어 있다.




3월 5일 어머니와 함께 도봉산역 창포원에 나들이를 가다

어제 3월 5일 일요일, 어머니를 휄체어에 태우고 도봉산역에 있는 창포원에 나들이를 갔다. 형수는 막내동생 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어제 토요일 아침 형님과 원주로 떠났다.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어쩌면 마지막 촛불인 19차 춧불집회에 참석을 못했다. 촛불집회에 90만 명에 1명이 모자란 899999 명이 모였다면, 나 때문이다. 옆지기와 나는 커피를, 어머니는 유자차를 마시며 따뜻한 봄볕을 쬐였다. 어머니, 누가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100세까지 한 번 기운을 내 살아보소. 하하하, 어머니, 그렇게 하세요. 옆지기가 옆에서 추임새를 넣자 어머니가 야야, 무섭다. 그런 소리하지 마라.


나는 어머니를 보며 삶에 불을 다시 한 번 당긴다. 한번뿐인 삶, 마지막 불꽃을 태워야 한다. 활활! 한 줌 재를 남기지 않고 다 태워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4년이다. 다 태워야 한다. 그 전에, 박근혜는 반드시 탄핵이 되어야 하고, 구속이 되어야 하고, 아버지 박정희가 물려준 천문학적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희대의 사기꾼 최태민이 그의 딸들에게 물려준 어마무시한 재산을 몽땅 찾아 전액 몰수를 해야 한다. 청산과 처벌이 없는 역사는, 한 발자국도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멀리 가야 하는 대한민국, 떠나기 전에 청소를 해야 한다.



뒷이야기-뜨거운 여름, 중학생인 나와 어머니가 콩밭을 맬 때, 삼다수는 그 어디에도 없고, 입은 쩍쩍 갈라져 오고, 이마와 몸에서는 땀이 비오듯 흐르고, 눈은 이미 겁을 먹어 벌벌 떨고 있었다. 저 넓은 사하라 사막 같은 콩밭을 언제 다 매고 집에 가나? 그 때 내 마음을 읽은 어머님이 말했다. 야야, 겁내지 마라. 일은 손이 하지, 눈이 안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 했다. 잠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손이 일을 하지 눈이 일을 하지 않는다. 돈오돈수는 그렇게 왔다. 그 날 이후로 무슨 일을 하든 겁을 잘 먹지 않았다. 아니, 그때부터 일을 즐기기 시작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그 지혜를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의 스승이었고, 스승이다. 201736해발120고지아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