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모산에서 복실이와 놀다
토요일,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다 내일은 복실이를 데리고 대모산에서 놀자.
속초 설악산을 가기에는 하루가 너무 짧다.
옛날, 서당에서 책을 한 권 다 읽고 떼면 스승님에게 예를 올리고,
떡을 해 서당동문들과 함께 나누어 먹곤 한다.
내일은 복실이와 논다.
힐링이 필요했다.
지난 5개월,
나는 목숨을 걸고 프로그램에 매달렸다.
2%가 지난 토요일 비로소 채워졌다.
떡을 해 돌리지는 못 해도,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 가 일단 마침표를 좀 찍으면서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수고를 한 보상이 필요했다.
하루는 짧고,
그렇다면 어디 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
일원에서 오망불망 우리 두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을 복실이에게 가기로 했다.
오후에 마트에 가 복실이에게 줄 닭가슴살을 샀다.
1700원짜리 초정리 탄산수가 그렇게 먹고 싶어도 참고,
복실이에게 2000원짜리 소세지를 사 먹였고,
내일은 3000원짜리 낙원동 잔치국수 대신
5400원짜리 닭가슴살이다.
우리 부모님이 그렇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주며 우리를 키웠다.
자식들에게 자장면을 먹이고,
어느 자식이
어무이, 왜 자장면 안 드세요?
라고 물으면
어머니는,
엄마는 원래 자장면을 안 좋아한다, 라고 하면서 돈을 아끼신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를 키워주셨다.
그런데 그렇게 키우면,
뭣하나?
부모님이 뼈가 빠지도록 돈을 벌어 자식에게 물려주면,
또 뭣하나?
자식들은 하나같이 부모님을 고려장시키는데!
그래지 마라, 이노무새끼들아!
집에 어머니는 올해 94세시다.
우리 형님과 형수님이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다.
나도 일주일에 두 번 죽과 찰떡을 사 어머니에게 간다.
요즘 어머니 얼굴이 참 좋으시다.
효란, 어려운 게 아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면 된다.
노르웨이산 반디푸스 복실이는
이제 겨우 4개월짜리 아이다.
그동안 얼마나 잘 먹였는지 살이 올라 다리살이 제법 통통하다.
그래도 언덕길을 걸으면 지구력이 떨어지는지 얼마 안 가 내 다리를 끌어안으며
아저씨,
나 좀 안아주시오!
하고 애원을 한다.
어제도 두 번을 안아주었다.
개는 원래 밖에서 놀아야 한다.
옆지기가 복실이를 데리고 공원에 왔고,
교회에 가 부주 대신 큰 걸 보고 공원에 가니 복실이가 보였다.
계단을 올라간 나는
저만큼 있는 복실이를 쳐다보았다.
복실이도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었다.
긴가민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복실이.
내가 복실아,
하고 부르자 그제야 그럼 그렇지, 하고 우다다다 빛처럼 다가와 나에게 안겼다.
30분 정도 논 다음 드디어 삶고 구운 닭가슴살을
꺼내 복실이에게 하나씩 주기 시작했다.
복실아,
천천히 씹어먹어라,
라고 주문을 하지만 마이동풍이다.
씹는 게 아니라 삼킨다.
꿀떡, 하면 없다.
공원에서 대모산 쉼터로,
그곳 쉼터에서 다시 불국사로 올라갔다.
경주 불국사와는 어떻게 다를까?
그 불국사를 올라가는데,
닭가슴살을 한 통 먹은 복실이가 두 번
걸음을 멈추고
아저씨,
좀 안아주시오, 하고 간청을 했다.
안아주면 내 어깨에 올라가 옆지기가 따라오는지를 살핀다.
두 사람이 같이 있어야 복실이는 안심을 한다.
내가 안 보이면
나를 찾고,
옆지기가 안 보이면,
옆지기를 찾아나선다.
어제 대모산에서 4시간을 놀았다.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종은 달라도 통하는 게 있는지 다가가 꼬리를 흔들며 아는 체를 했고,
외면을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나같이 선배들이었다.
13년을 살았다는 점잖은 녀석은 간이 나쁘다고 했다.
아저씨라고 했다.
아니, 아저씨가,
담배를 너무 태웠나,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간이 왜 나쁠까?
복실아,
불국사에 온 김에 대웅전에 가 불공이라도 드리자.
복실이는 불공보다는 밭을 더 좋아했다.
복실아,
스님들 반찬인데 니가 들어가 삐대면 스님이
이놈 떼끼! 한다.
고려 때 창건한 절이라고 씌어 있었다.
만만한 게 고려다.
이 땅의 절은,
열에 아홉은 고려 때 창건이 된 역사가 깊은 사찰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는 호국불교가 아니었나.
불교가 꽃을 피운 시대가 바로 고려 때다.
어쨌든 역사는,
살아 있는 자들의 기록이다.
복실이 역시
한국산이 아니고, 노르웨이산이다.
내가 그렇게 명명했다.
그래야 대접을 조금 받으며 살 수 있다.
잡종입니다, 라고 하면 그 날부터 복실이는 푸대접이다.
종이 한 장 차이다.
복실이는 노르웨이에서 온 명견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똑똑하다.
이제 밖에 나와 논 다음 집에 갈 때 늘 앞장을 선다고 한다.
척척 찾아 아파트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그 다음 군말 없이 현관계단을 올라 수위아저씨에게
아저씨, 안녕하세요?
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복실이, 똥 누고 오나?
아니요, 산책하고 오는데요.
산책도 하고 똥도 쌌겠지.
똥도 치우고, 궁디도 잘 닦았는데요.
잘 치우고, 잘 닦은 줄 안다.
복실이,
다시 계단을 올라가
돌고 돌아, 마지막 끝 집을 향해 위풍당당
걸어간다.
마침내 현관문에 도착을 한 복실이,
두 발로 똑똑
노크를 하고는
할머니, 저 복실이 왔시요!
라고 한단다.
복실아, 이제 아저씨 간다.
복실이가 내게 돌아왔다.
나는 복실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집에 가면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아침에,
지하 슈퍼에 가 두부 한 모 사오너라, 하면
네, 하고 냉큼 사다드리고 그래라.
네.
복실아,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물면 안 된다!
물면, 바로 그 순간부터 너는 아웃이다.
알았나?
네.
다음에 또 올게,
잘 놀고, 씩씩해라.
네.
뒷이야기-다음 주 설악산을 갈 때 배낭에 복실이를 넣어 갈 궁리를 한다. 복실이에게 울산바위 정상을 보여주고 싶다. 지하철은 많이 탔다.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아마 다섯 번 정도 건넜을 것이다. 그런데 버스를 타니까 멀미를 하는지 못 견뎌했다. 설악산을 가면 밤에 복실이를 재워주는 모텔이 있으려나? 고속버스는? 불가마에 프리패스가 될까? 어제 우리와 4시간을 보낸 복실이, 몸까지 씻은 뒤라 아마 밤에 코를 골며 녹초가 되었을 것이다. 20171023해발120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