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어제 일요일 우리 두 사람이 한 일

오주관 2017. 12. 18. 16:11




겨울 한파, 독하게 춥다


어릴 때는 추워도 추운 줄을 모르고 살았다. 눈이 오면 마냥 워리모양 신이 났다. 12월이 되어 겨울방학만 하면 눈을 학수고대하곤 했다. 오늘은 눈이 안 오려나? 내일은 눈이 오겠지? 하지만 하늘은 내 마음하고는 달랐다. 귀신도 두드려 잡는 필승! 해병 1사단이 등을 기대고 있는 경상북도 영일군 오천면 용덕동에는 겨울이 되어도 눈이 잘 내리지 않았다. 산타할아버지가 등장을 하고,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캐롤이 나오면 하얀 눈을 늘 그리워하곤 했다. 제발 좀 눈이 내려주었으면, 하고 회색하늘을 쳐다보며 간절함을 뜨워보내곤 했지만, 하늘은 늘 시침을 뚝 따곤 했다. 그 때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겨울이 싫고, 눈이 또한 싫다. 빙판길은 더더욱 싫다. 콰당, 하고 넘어지면 낙상이고, 낙상이면 엉덩이의 대퇴골이나 손목뼈가 나갈 수도 있다. 나가면 골로 갈 수도 있다. 그게 세월이다.




도시락 풀러스 해독주스


언제부터인가 도시락에 덤이 하나 더 붙었다. 해독주스. 생 채소를 먹으면 흡수율이 10%이고, 삶아먹으면 60%이고, 삶은 채소를 갈아먹으면 흡수율이 90%라고 한다. 이왕이면 삶아 갈아먹자. 면역력이나 고지혈은 차치하더라도 당장 동맥경화에 좋다고 한다. 나는 고지혈이 없고 콜레스테롤이 낮다. 당근, 블루커리, 양배추, 도마토를 넣어 삶는다. 다 삶은데 바나나를 하나 넣어 갈아 하루에 두 번 먹는다. 보름째다. 우리 두 사람, 열심히 먹고 있다. 몸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좋은데, 하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털모자도 부족해 그 위에 모자를 다시 덮어쓰고도 머리가 추웠는데, 이제 그렇게 춥지가 않다. 느낌이 나이스하다.


 


옆지기가 보내 준 커피 선물


추운 그 날 오후, 대학로까지 걸어 온 나는 옆지기가 준 커피선물이 생각이 나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4500원짜리에 1500원을 더 보태 달달한 커피를 한 잔 시켜 3층으로 올라갔다. 3층에 앉아 노트북을 꺼내 교정작업에 들어갔다. 궁즉통이라고 했다. 답답하면 안 보이던 문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영어번역을 꺼내 다시 읽어보아도 영 아니올씨다 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그동안 옆지기 덕분에 영어실력이 많이 늘었다. 쭉 읽고 그렇지, 하고 독해를 한다. 발음도 많이 좋아졌다. 이노무 새끼가 번역을 엉터리로 했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소인이 대대적으로 잘못 하였나이다.

라는 문장을 영어로 번역을 했는데 이 쌍노무 새끼가,

아 엠 쏘리.

로 번역을 했다고 한다.


 


어제 일요일 아침, 커피숍에 가다


아침을 먹은 우리 두 사람은 가방에 작업할 노트를 넣어 동네 커피숍에 갔다. 1차로 보낸 초고번역본을 읽고 교정을 보아야 할 부분을 체크를 해 다시 보내야 한다. 영어번역전문센터가 아닌, 대학교에서 한 번역이라 그 솜씨가 달랐다. 2중 국어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한 번역과, 2중 국어가 안 되는 환경에서 한 번역의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컸다. 국어는 내가 담당을 하고, 옆지기는 영어를 담당하면서 2시간을 매달렸다. 드디어 끝이 났다. 이제 보내면 다시 수정을 할 것이고, 그리고 최종본이 올 것이다.




삶과 죽음


어려운 문제다. 도대체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일까? 내 나이 다섯 살 때였다. 나는 그 때까지 우리 인간은 영원히 사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람이 죽는 것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 아침, 꽃으로 장식한 상여를 본 나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저게 뭡니까? 동네 금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동네를 다니면서 소똥을 줍는 할아버지였다. 그래서 상여를 메고 간다고 했다.  그 날 본 그 상여가 지금까지 내 화두가 되어 있다. 삶과 죽음은 도대체 무엇이냐? 어젯밤 jtbc에서 본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보고 그 이야기를 했더니 옆지기가 물었다. 풀었습니까? 아직 못 풀었다. 태어나고, 죽는다! 그렇다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 키워드만 알면 삶을 풀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키워드가 바로, 가치라고 생각한다. 가치 있는 삶이 삶의 중심 키워드라고. 그래서 1인칭과 3인칭이 끊임없이 등장을 한다.


나와 내 가족만 잘 사는 그런 삶은 아무 가치가 없다.

1인칭이 아닌, 3인칭,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사는 그런 세상이 가치 있는 삶이다!




어제 오후 소요산온천에 가다


번역교정을 다 본 우리 두 사람은 때를 벗기기 위해 온천장으로 갔다. 2주에 한 번씩 때를 벗기려 간다. 때도 벗기고, 불가마에 들어가 땀도 흘리고. 소풍 삼아 지하철을 타고 소요산에 있는 그 온천으로 갔다. 녹양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지하철역 밖 상가건물을 바라본 나는 옆지기에게 말했다.


우리 인간이 절대 건드릴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뭐예요?

하나는 땅이고, 다른 하나는 부다.


옆지기에게 설명을 했다. 땅은 우리 인간이 절대 소유할 수 없다. 왜나하면, 땅은 우리 인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를 하여 국가가 잠시 맡을 수는 있어도, 개인이 땅을 소유할 수는 없다. 그 대신 임대는 가능하다. 부도 마찬가지다. 흔히 이건희와 그의 아들 이재용의 부는 이건희와 이재용의 부라고 믿고 있는데, 아니다. 이건희와 이재용의 부는 그 두 사람의 부가 아니고, 우리 국민의 것이다. 그것만 알면 75억 우리 인류에게 불행은 없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다. 그래서 깨친 자들(빌 게이츠,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은 자신의 부에서 1%만 쓰고, 나머지 99%는 사회에 환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골을 싸맨 채 돈을 벌기 위해 덤비고 있는 이 사업도 출발은 나로부터이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만약 큰 부를 얻게 되면, 그 부는 내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부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땅과 부는,

개인의 것이 아닌, 자연이고, 전 세계인의 것이다!




죽음은 무엇이냐?


이 주제 또한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역시 가치의 문제로 보아야 답을 얻을 수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시간이 되면 다 죽는다. 어느 생명체도 비껴갈 수 없다. 그렇다면 흔적이고, 가치이다. 여기에 신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 신은 괄호밖이다. 내가 65년 공부한 그 끝에서 얻은 결론이다. 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이고, 그리고 가치이다. 머리를 싸맨 채 노력을 해 성공을 해도, 정신일도 하사불성 그 끝도,  결국은 내가 아닌, 내 가족이 아닌, 우리 모두이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삶 그 끝에 오는 어마무시한 공포와 두려움의 그 죽음도 조금은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환경이고, 구조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학교 문제가 아니다. DNA문제가 아니다. 가문의 문제가 아니다. 4대문 안의 문제가 아니다. 우파와 좌파의 문제가 아니다. 지식과 무지의 문제가 아니다. 능력과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인자다. 유전인자보다 더 무서운 것은, 환경인자이다. 이것만 알면 우리 인간이 풀어야 할 숙제를 풀 수 있다. 환경이고, 구조이다. 잘못 계산해 만들어놓은 블랙홀의 그 퍼즐 속에 풍덩, 튕겨 들어가면 식물인간 이건희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서울역 뒤의 노숙자들 속에 안 끼어들 수가 없다. 퍼즐은 환경이고, 구조이다. 니가 잘나서, 니가 능력이 있어서 그렇게 배를 두드리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니가 못 나서, 니가 능력이 없어서, 오늘도 찬 바람에 몸을 오들오들 사시나무 떨 듯 떨며 희망 대신 절망의 소주를 마시며 고통을 끌어안고 사는 것이 아니다. 엉터리로 만든 그 퍼즐 때문이다.


부자로 살면, 이웃에 베풀면서 살아야 한다.

맞는 말씀입니다.

간단하다.

내가 행복하려면 내 가족이 행복해야 하고,

우리 동네가 행복하려면 우리 이웃동네가 행복해야 하고,

우리 남한이 행복하려면 우리 38 이북이 행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