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장이자 영웅인 어머니
3년 전,
94세에 돌아가신 아버님은 나에게 정직과 부지런함을 물려주었고,
지금 사선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시고 계시는 올해 95세인 어머니는
나에게 의지와 열정 그리고 도전정신을 물려주었다.
특히 어머님은 우리 집이 기울 때마다 손수 앞장을 서
기울어져가고 있는 집안의 경제를 일으켜 세우곤 했다.
오늘 아침 사전투표를 하고 상계 집으로 갔다.
어머님이 안 좋으시다고 형수가 전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내가 사 간 찰떡을 드셨고,
보름 전만 해도 어머니를 헬체어에 태우고 도봉산역에 있는 창포원에 가
방배동에서 온 74세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하셨는데.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우리 5남매를 잘 키워주어서 고맙습니다.
어머니는 일생을 정말 열정적으로 사셨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산은 너무 크다.
초등학교 겨울방학만 되면 형과 나는 오어사 옆 황사골에 나무마짐을 간다.
무거운 나뭇단을 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바라보면 앞에 캄캄했고, 까마득했다.
황사골에서 집까지 족히 10리는 되었다.
언제 집에 가나, 하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먼 길을 갈 때는 앞을 보지 말고 땅만 보고 걸어라.'
순간 내 머릿속으로 빛 하나가 찾아왔다.
아!
그 때 찾아온 깨달음
돈오돈수였다.
중학교 여름방학 때, 공동묘지 우리 밭에 콩밭을 맬 때,
물도 없는 나는 산 아래 병포리의 푸른 동해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동네 친구들은 전부 저 바다에 있을 것이다.
친구들은 보나마나 언 몸을 데우기 위해 뜨거운 바위에
몸을 눕힌 채 오들오들 떨고 있을 것이고,
더위에 지친 나는 콩밭의 이 풀을 언제 다 매고 집에 가나, 하고
눈이 겁을 먹은 채 두려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그 때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일은 손이 하지 눈이 하는 게 아니다.'
아!
나에게 찾아온 두 번 째 빛!
돈오돈수였다.
그 이후로 나는 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땀을 내 친구처럼 여기고 끌어안았다.
어머니는 나의 스승이자 대장이며 그리고 영웅이었다.
'어머니, 꼭 가셔야 합니까?
11월 선선할 때 가시면 안 됩니까?'
어머님이 나를 희미하게 바라보셨다.
95년 사신 어머니,
사선 앞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시고 있다.
● 평소에 어머니에게 말했다. 만약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화장을 해 고향이 아닌 수락산에 뿌려드릴게요. 그래야 저희들이 수락산에 가 어머니를 추억하면서 잠시나마 쉬었다 올 수 있습니다. 어머니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나도 죽으면 옆지기에게 도서관에 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머니, 6월을 못 넘기실 것 같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