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나의 대장이자 영웅인 어머니

오주관 2018. 6. 8. 14:34



3년 전,

94세에 돌아가신 아버님은 나에게 정직과 부지런함을 물려주었고,

지금 사선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시고 계시는 올해 95세인 어머니는

나에게 의지와 열정 그리고 도전정신을 물려주었다.

특히 어머님은 우리 집이 기울 때마다 손수 앞장을 서

기울어져가고 있는 집안의 경제를 일으켜 세우곤 했다.






오늘 아침 사전투표를 하고 상계 집으로 갔다.

어머님이 안 좋으시다고 형수가 전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내가 사 간 찰떡을 드셨고,

보름 전만 해도 어머니를 헬체어에 태우고 도봉산역에 있는 창포원에 가

방배동에서 온 74세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즐거워하셨는데.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우리 5남매를 잘 키워주어서 고맙습니다.

어머니는 일생을 정말 열정적으로 사셨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유산은 너무 크다.

초등학교 겨울방학만 되면 형과 나는 오어사 옆 황사골에 나무마짐을 간다.

무거운 나뭇단을 지고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바라보면 앞에 캄캄했고, 까마득했다.

황사골에서 집까지 족히 10리는 되었다.

언제 집에 가나, 하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먼 길을 갈 때는 앞을 보지 말고 땅만 보고 걸어라.'

순간 내 머릿속으로 빛 하나가 찾아왔다.

아!

그 때 찾아온 깨달음

돈오돈수였다.


중학교 여름방학 때, 공동묘지 우리 밭에 콩밭을 맬 때,

물도 없는 나는 산 아래 병포리의 푸른 동해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동네 친구들은 전부 저 바다에 있을 것이다.

친구들은 보나마나 언 몸을 데우기 위해 뜨거운 바위에

몸을 눕힌 채 오들오들 떨고 있을 것이고,

더위에 지친 나는 콩밭의 이 풀을 언제 다 매고 집에 가나, 하고

눈이 겁을 먹은 채 두려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그 때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야, 일은 손이 하지 눈이 하는 게 아니다.'

아!

나에게 찾아온 두 번 째 빛!

돈오돈수였다.


그 이후로 나는 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땀을 내 친구처럼 여기고 끌어안았다.

어머니는 나의 스승이자 대장이며 그리고 영웅이었다.



'어머니, 꼭 가셔야 합니까?

11월 선선할 때 가시면 안 됩니까?'


어머님이 나를 희미하게 바라보셨다.

95년 사신 어머니,

사선 앞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시고 있다.




● 평소에 어머니에게 말했다. 만약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화장을 해 고향이 아닌 수락산에 뿌려드릴게요. 그래야 저희들이 수락산에 가 어머니를 추억하면서 잠시나마 쉬었다 올 수 있습니다. 어머니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나도 죽으면 옆지기에게 도서관에 뿌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머니, 6월을 못 넘기실 것 같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