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그래도 걷는다

오주관 2021. 2. 23. 13:29

 

 

 

허리, 무릎, 그리고 스트레스

 

한 달 내내 스트레스와 싸우고 있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꿈을 꾸어도 홈페이지가 나타나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25만 원짜리 홈페이지가 부실해 큰 마음 먹고 200만 원짜리 홈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계약을 하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기술자가 기술자가 아니었다. 사장 따로, 상담사 따로, 기술자 따로인 따로부대였다. 광고를 너무 믿은 게 탈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보조가 아니라 기술자 역할을 하고 있다. 

 

1. 문장이 틀렸다

2. 사이와 사이의 간격이 안 맞는다

3. 문장이 배경에 묻혀 너무 어둡다

4. 흰바탕에 글자는 검은색으로 수정해라

5. 소제목에는 마침표를 찍지 마라

6. 쉼표 다음에는 띄워라 

7. 제목을 중앙에 배치해라

8. 방점은 지워라

9. 보호하고, 이렇게 쉼표를 찍고

10. 그 두 문장은 홈에서 빼고 소개 두 번째 문장 앞에 배치해라 

 

밤에 누워 자면 꿈속에 홈페이지가 나타나 내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실력도 없는 것들이 홈페이지를 만든다고 설치고 있다. 단어 하나 고치는데 일주일이 걸린다. 어느 날 전화를 해 홈페이지를 열어라. 열었습니다. 자, 그 문장 이렇게 고쳐라. 네, 알았습니다. 볼펜으로 적어라. 네. 알기는 뭘 알아. 돌아서면 그대로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하긴 세상을 보라! A급이 아닌 B급인 찌끄래기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며칠 전에는 무릎이 아파 병원에 갔다. 이 병원은 손님이 많아도 너무 많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을 치고 있다. 손님이 너무 많아 손님 한 사람 당 1분이면 진료가 끝난다. 대학병원보다 더 바쁘다. 속된말로 노난다. 서울 동선동에서 오재홍 재활의학과를 하고 있는 내 조카는 명의다. 인물도 배우는 저리 가라 이다. 사진을 찍었다. 허리도 튼튼, 다리도 튼튼, 무릎도 이상 무. 그런데 왜 무릎이 시큰시큰하고 밤에 지릿지릿 아픕니까? 노병입니다. 하! 입을 닫았다. 어느새 내가 생노병사의 병에 왔구나. 일주일에 한 번씩 연골주사를 세 번만 맞아보십시오. 한 대 맞았다. 

 

다 잊고 걷자!

 

일요일 아침, 오늘도 걷자. 며칠 강풍이 불었고, 엄청 추웠다. 그런데 오늘은 봄이 아니라 여름이다. 너무 덥다. 남원에서 버스를 내려 그 식당에 가 간짜장을 먹었다. 간짜장을 먹어야 그나마 싱싱한 양파를 많이 먹을 수 있다. 짜장은 양파가 있어도 적고 너무 물러 있다. 간짜장과 짜장의 차이점이다. 유일하게 먹는 중식이다. 계란과 고기는 안 먹는다. 

 

걷는다. 폼이 내 홈페이지와 같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이다. 한 달째 씨름하고 있는 홈페이지. 3월달에는 완성을 시키겠지. 홈페이지를 볼 때마다 잠깐씩 내 주먹이 부르르 떨리면서 운다. 야 이 망할 놈아, 하고 욕을 해주려다 참는다. 화 낸 놈이 진다. 이미 돈은 카드로 결제가 된 셈이다. 법적으로 태클을 걸어도 오는 게 없다. 있다면 기술자를 살살 달래면서 하는 수밖에 없다. 며칠 전에는 메일이 왔기에 보고는 

 

"너무 훌륭하다! 정말 수고했다. 조금만 더 정신을 일도하자."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을 춘다고 했다. 어제 또 메일이 왔다.

"품격이 달라졌다. 수고 많이 했다."

이런 식으로 한 달째 나는 홈페이지와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