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후회

오주관 2023. 3. 30. 15:04

 

수요일 아침 9시 30분부터 지역번호로 전화가 네 번 걸려왔다. 나는 안 받았다. 그러자 010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이제는 내가 전화를 하자. 가부간 내 의사를 분명하게 전해야 한다.

 

월요일 아침 나는 우리은행 지점을 찾았다. 내 카드가 쿠팡에서 결제가 안 된다. 이유는 이 카드가 해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잘 나가다 뭐로 빠진다고, 쿠팡에서 계속 결제를 해왔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비밀번호를 넣으면 이 카드는 해지가 되었음으로 사용 불가라는 문자가 떴다.

 

은행원이 내 카드를 받아 검사를 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 카드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해지가 안 된 카드입니다."

 

쿠팡 담당자와도 통화를 했다. 어쨌든 일단락이 된 후 은행원이 카드를 하나 새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 카드보다 나은 카드라고 했다. 은행원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투명플라스틱. 반은 듣고 반은 못 들었다.

 

그 카드가 다음날 저녁 집으로 배달이 되었고, 나는 카드 뒷면에 내 사인을 했다. 집사람이 카드를 보더니 이 카드는 신용카드이고 년회비가 있다고 했다. 나에게는 체크카드가 여러모로 편했다. 그래서 신용카드 하나를 없앤 기억이 있다. 그럼 이 카드를 해지시켜야겠다. 

 

다음날 아침 고객센터로 전화를 해 이 카드를 해지해달라고 했다. 본부에서 지역은행으로 전달이 되었고, 그 사실을 통보받은 은행원이 나에게 그렇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전화를 하자 ARS를 통해 담당자 은행원이 받았다. 사실 체크카드인 줄 알고 받았다. 그런데 신용카드이면 내가 불편하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체크카드를 쓰겠다. 그러니 해지해 달라.

 

아가씨가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년 회비도 면제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체크카드 기능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용 좀 해주면 안 되겠습니까? 정 안 되면 6개월만 사용하고 해지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 마음을 나는 헤아리지 못 했다. 카드 두 개를 지갑 속에 넣어다니는 것이 불편하다. 하나가 여러모로 편하다. 그 때의 나는 1+1은 2밖에 없었다. 내 뜻이 너무 강경해 여은행원이 더는 말을 잇지 못 했다. 알겠습니다. 하고 긴 통화가 끝났다. 

 

저녁을 먹으면서 내가 말했다.

"그렇게 사정을 하는데 내가 너무 했네. 마 쓸 걸. 은행원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는데, 그 사정을 이해 못 했네."

"그러네요."

 

카드 하나가 내 평정심을 흐뜨려놓았다. 그 옛날 보험회사 영업사원이었던 나는 개발바닥이 된 채 뛰어다녔다. 담당부서를 방문할 때마다 문 앞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심호흡을 했던가. 잘해야 될 텐데, 성공해야 될 텐데. 담당자가 노, 하고 말하면 나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나? 그 때 얻은 그 스트레스가 결국 내 장에 압박을 가해 긴장만 하면 배가 아프면서 화장실에 직행하도록 만들곤 했다. 신경성이나 과민성이 그 때 얻은 병이었다. 

 

후회는 항상 뒤에 온다. 내가 은행원의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 했다. 해지가 되어 나는 편하지만 그 은행원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상사로부터 문책은 안 당했을까? 어떻게 카드를 하룻만에 해지를 시키나? 영업을 어떻게 했기에 그런 결과가 나오나? 해지를 시켜 편했지만 내 마음 한구석은 그러나 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