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이 땅에서 쫌팽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오주관 2009. 6. 5. 17:20

 

  

요즘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 어제도 그랬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옆지기도 마찬가지다. 나는 만근이고 옆지기는 천근이다. 어젯밤, 집에 들어갈 때 산 막걸리를 마시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 천근이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시계를 보니 23시 30분이었다. 피곤할 텐데.

 

만근이, 잔데이.

주무세요.

당신은?

김 선생에게 이메일 하나 보내주고요.

만근이 깨우지 마래이.

 

일어나니 아침이었다. 햇살 때문에 더 잘 수가 없다. 뜨거운 햇살이 내 얼굴을 만진다. 뜨거운 햇살이 내 몸의 습기를 말린다. 곰팡이도 죽이고 세균도 죽인다. 창밖 도노강에는 오늘 아침에도 몸이 뜨거운 잉어들이 짝을 찾기 위해 물살을 가르며 어디론가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 푸드득 푸드득~

 

집을 나온 우리는 횡단보도에서 헤어진다. 한 사람은 길 건너편의 마을버스 쪽으로, 다른 한 사람은 배낭을 멘 채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어딘가로 삼십여 분 걸어간다. 오늘은 금요일.

 

7시에 가까, 8시에 가까?

마음대로 하세요.

잠깐.

돌아보았다.

이거 주까, 저거 주까?

강릉 경포대해수욕장에서 커피를 파는 할머니가 생각났다.

하하하하!

뚜구와! 조심혀, 주디 디.

하하하하!

 

혈액형이 O형인 나는 가끔씩 이런 싱기비로 뜨거운 내 뿔을 다스린다. 이 뿔을 가라앉히려면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뿔아 내려가라 저 밑으로. 술도 약이 되지 않는다.

 

 

 

  

둑을 걸어가고 있는데 불현듯 한 사람이 떠오른다. 핸드폰을 연다. 누른다. 음악이 흘러나온다. 단조다. 마치 조곡 같다. 집에 있나? 아니면 바깥.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형님.

어디 집이가?

아니요, 이제 막 집을 나왔습니다.

아, 그래?

네.

요즘 어예 지내노?

시국이 그래서 좀 그렇습니다.

그렇제?

네. 형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가슴이 좀 아프다.

그렇지요.

지금 둑길을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무슨 생각을요.

이 땅에서 쫌팽이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

참, 정교수.

네.

오늘 학교 강의 있제?

네.

오후에 학교 가면 만날 수 있나?

학교 오시려고요.

응.

아이고, 큰일 났네요. 저 오후에 수원캠퍼스에 특강이 있습니다.

그래?

네. 어쩌지요.

그럼 할 수 없지.

오늘 밤에나 갈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에 보자. 편할 때 전화해라.

그럴게요. 형님, 죄송합니다.

아이다. 다음에 보자.

네. 제가 전화 드릴게요.

 

 

 

  

어제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세종연구소 소장인 송 아무꺼시가 연사로 나와 강의를 했는데 그 강의가 참으로 황당했다. 국제정치학이 전공인 그가 핏대를 올린 것은 북핵이나 국제정치가 아니었다.

 

어느 누가 의자에 앉아 딱 지켜보았답니다. 대한문에 조문을 오는 사람들을. 재미있는 것은 한 사람이 왔다가 다시 오고 갔다가 다시 오고 하기를 무려 다섯 번. 뿐만 아니라 봉하마을에 하루에 조문객이 20만 명이 왔다고 발표를 했는데 그 정도의 인원이면 40인승 버스가 5천대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지 에미와 애비가 돌아가면 그렇게 섧게 울겠습니까?

 

갑자기 장내가 술렁거렸다. 의원 몇 사람이 손가락으로 강사를 가리키며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말고 오늘 강의할 내용만 말하시오 라고 항의를 하자 충성파 송 아무꺼시가 의원들을 향해 왈

 

허허, 전국에 강의를 다니다 보면 꼭 저런 사람 한둘이 있어. 여보시오,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온 사람에게 그게 무슨 결례입니까? 그러면 안 돼요. 아, 강의를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지.

 

그렇지 않아도 한나라당의 인기가 자고나면 추락을 하고 있는 판에 또 기름을 붓는 오줄쟁이가 나타났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꼭 저런 핫바지들이 있기는 있어. 주제 파악을 못하는 해바라기성 충성파가. 알고 보니 지난 총선 때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다 떨어진 인물. 그런 그가 이런 공적인 자리에 나왔으니 보란 듯이 저 푸른 기와집을 향해 충성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사라짐을 의미한다. 사라짐은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생과 사는 삶의 한 부분이 아니냐 라고 말했다. 사라짐이 없으면 태어남도 없다. 삶과 사는 하나의 선 위에 존재하는 점이다. 비록 그는 갔지만 그의 정신은 이 땅에 살아 있다. 그 정신이 살아 있는 한 그는 불멸이다.

 

 

 

 

 이번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느낀 바가 많다.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무대는 분명 21세기다. 하지만 사고는 그게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22세기를 향해 안테나가 뻗어 있고, 어떤 무리들의 사고의 안테나는 21세기는커녕 아직도 19세기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인간 노무현은 저 멀리 앞을 바라본 사람이었다.

인간 노무현은 21세기가 아닌 22세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 노무현은 경계의 벽을 허문 사람이었다.

인간 노무현은 이념이나 틀보다 자유와 행복을 추구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나라 지도자이기 전에 이상주의자였고 사상가였고 혁명가였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없었다면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는 아직도 어둠 속에 있었을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각자는 늘 먼 곳을 바라본다.

고로 그를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것이 어렵다.

 

며칠 전, 고향 사람들과 나와의 싸움. 몇 달 전, 나는 낮잠을 자고 있는 고향의 어느 사이트에 내 글을 옮기기 시작했다. 늘 보아도 그 장단이었다.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글들을 훑어보면 적막했다. 개똥이 아버지가 어제 돌아가셨습니다. 내일 소똥이 둘째 아들 돌입니다. 개똥이 중학교 25회 정기총회가 아무 날 있습니다. 그리고 향우회라는 방에는 벼락출세를 한 사람과 돈깨나 번 사람들이 만나 악수를 나누거나 술잔을 든 채 즐거워 죽겠다는 듯 웃음을 날려 보내는 풍경이 만포장으로 걸려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내 블로그의 글을 옮겼는데, 그 글 때문에 고향의 그들은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 부글부글. 나중에 삥 돌기 일보 직전까지 와서야 괴성을 내지르며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들은 미쳐 있었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그 옛날 고래에게 던져야 할 삼지창을 꺼내 나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내가 고향 사이트에 글을 올린 목적은

 

1. 소통이었다. 2. 학습과 고민이었다. 3. 같이 토론을 하자. 4. 개혁이었다.

 

한때 고향에 정신과 혼을 불어넣어준 나였다.

 내 지도를 받아 운명이 바뀐 후배들이 몇 있다. ▲ 고향 도서관에서 일 년 동안 같이 공부를 하면서 어린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주었다.  고향을 위해 만든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중심인물이었다.  학력을 위조해 시의원에 당선이 된 그 후배를 고발했다.  지금도 시의원으로 있는 조폭들을 솎아 내어야 한다고 메시지를 주고 있다.

 

이런 고마운 사람에게 삼지창을 마구 던지다니! 이거야말로 배은망덕이다.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다니.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 알밥까지 동원시켜 나를 공격했다. 알밥 5명만 동원을 하면 어느 사이트든 개판이 된다. 참이 가가 되고 가가 참이 된다. 알밥의 특징은 인격을 깨부순다는 것. 마치 조중동이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들을 상대로 벌인 인간 이하의 그 짓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알밥이 히죽히죽 웃으며 남의 복장을 마구 쑤셨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찔러 이 사람을 구속시켜야 돼!

아니 이미 어느 정보기관에서 수사를 하고 있다지?

그 글을 본 나는 그랬다.

그래 찔러라.

민정실에 찌르지 말고 이대통령에게 똑바로 찔러라.

영광이다.

아고라에는 미네르바가 블로그에는 오모차베가!

구속되면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겠네.

아이고,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 나가면 따 놓은 당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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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진실로 실망을 한 것은 98프로가 아닌 100프로와의 싸움이었다는 것이다. 설마 푸른 눈을 가진 후배가 한둘은 있을 것이다. 나를 지지하는 후배가 한둘은 있을 것이다, 라고 믿었는데 한둘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아래 위 할 것 없이 기총소사를 갈겨대는 그 무차별 공격 앞에 나는 나뒹굴 수밖에. 후퇴다! 작전상 후퇴다.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다. 광풍은 피해야 한다. 나에게 날아오고 있는 저 광풍은 무지의 미친 태풍이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올린 글을 지우라고 했다. 이튿날 기다렸다는 듯이 내 글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옆지기는 용기 없음, 이라고 표현했다. 용기와 의리가 없는 후배들이라고 했다. 그들은 참이 아니에요. 그리고 분명한 것은, 죽어도 그들은 당신의 정신세계를 몰라요. 어째든 그들의 승리였다. 그들은 두 손을 높이 들고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그들은 개선장군 모양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봐라, 물리쳤잖아! 그렇게 단결만 하면 돼! 우리 같이 무식한 인간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똘똘 뭉쳐야 돼!

 

악마 하나를 물리쳤다.

미친 인간 하나를 물리쳤다.

좌파 하나를 물리쳤다.

 

과연 그들은 승리했을까? 사이트의 글들이 다 사라졌다고 승리한 것일까. 그래서 삥 돌아버리기 전의 그 미침이 시원하게 바닷바람에 씻겨 날아갔을까.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평가를 내렸다.

 

고향 패!

오모차베 승!

 

옆지기였다. 그들은 아직도 무지의 세계에서 숨을 쉬고 있다. 그들의 사고 역시 무지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21세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이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한다. 그들은 결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를 것이다. 슬픈 것은 그 사실들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고인이 된 그 사람은 대 학자였고 살아 있는 한 사람은 철딱서니가 없는 중학생이다.

 

이 땅에서 좀팽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눈은 있지만 눈을 바로 뜨지 못하고,

귀는 있지만 밖의 아우성을 듣지 않고,

입은 있지만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양심은 있지만 그 양심을 꾹꾹 누른 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정녕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그것으로부터 탈출을 해야 한다. 이념은 아니다. 인종도 아니다. 문화도 아니다. 종교도 아니다. 국가도 아니다.

 

무지와 탐욕이다.

 

 

뒷이야기- 끼리끼리라는 말이 있다. 사고가 어슷비슷하지 않으면 교류가 어렵고 그리고 소통이 어렵다. 각자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외로움은 필연이고. 입에 단내가 나도록 인간을 탐구한 한 사람과 입에 단내가 나도록 탐욕을 탐한 무리들과 붙었을 때, 승자는 누구일까? 한쪽으로 쏠리는 광풍의 그 미친바람을 맞으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며칠이었다. 무지와 탐욕으로 뭉쳐져 있는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각자가 그렇듯이 도전은 늘 있다. 경계를 허물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각자의 삶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죽음과 동시에 영원히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어서 영원히 사는 사람이 있다. 200965도노강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