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그 골목에 입성하다.

오주관 2006. 11. 6. 11:27

 

 

 골목밤풍경

 

 

내가 이곳에 터를 얻어 자리를 잡은 지 벌써 3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여름의 한복판인 8월 어느 날 이곳 동네에 방 하나를 얻은 나는 거리에 나가 노점을 하기로 하고 자리를 물색하러 다녔다. 그런 어느 날 내 눈에 푸른 신호등 같은 구원의 글 하나가 나를 사로잡았다. 가게. 3평. 보증금 3백에 월 30만 원. 내 눈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아마 하느님이 나를 위해 이 가게를 내놓았구나. 나는 복덕방 유리문에 붙어 있는 종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뿐만 아니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나 같은 가난뱅이가 이 글을 발견하면 큰일이다 싶었다. 3백이라는 글자와 3십이라는 글자가 사람을 호리기에 충분했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몸이 간헐적으로 떨려왔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 절망 그 끝에 희망의 메시지가 찾아온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절망 그 끝에 삶을 내놓고 이승을 떠난다. 희망은 절대 평지에 존재하지 않는다. 구원 또한 그렇다. 등대를 보아라. 등대가 있는 곳은 항상 절해고도와 땅의 끝에 자리하고 있다. 등대가 평지에 서 있으면 그것은 등대가 아니다.


희망은 절망 그 끝에 매달려 있다.

구원 또한 삶의 그 끝에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끝은, 끝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인 것이다.


집에 돌아온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나보다 더 빠른, 홍길동이 같은 인간이 내일 아침 복덕방 셔터가 올라가자마자 쳐들어가 다짜고짜 ‘이 가게 내가 얻겠습니다.!’ 하고 선수를 치면 나는 망하네! 하, 밤이 기네, 오늘따라. 이 사실을 강남에 있는 em도 알아야 하는데……. 아마 이 사실을 알면 그녀도 나처럼 흥분을 하리라. 그렇지 않아도 피가 뜨겁고 열정적이고 늘 한 발 앞서 나가는 내 대가리 속의 안테나가 가만있지를 못하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천장을 쳐다보았다. 그 가게는 분명 나를 위해 그 누군가가 보내준 선물이다. 이 똥걸비에게 준 선물이 분명하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 30분이었다. 텔레비전도 없고 라디오도 없고 배를 채울 밥도 없고 빈 가슴을 달랠 여자 사람도 지금 없고, 그리고 뜨거운 몸을 달랠 그 뭐도 없었다. 일어났다.

 

 

 

 

 나와 매일 부딪치는 욕망의 거리


낮은 뜨겁지만 밤은 그런대로 견딜 만하다. 나는 골목을 돌고 돌아 마트에 갔다. 서울 막걸리를 샀다. 그리고 게맛살을 샀다. 할인마트에 가면 천 원짜리 게맛살이 편의점에서는 1800원이다. 도둑놈들…… 라고 속으로 씨부리면서 골목길을 돌고 돌아 키로 문을 따고는 방에 들어왔다. 석 달 열흘째 계속되고 있는 술이다. 살아가면서 탈출구가 막혀 있다든가 비상구가 없으면 그때 우리 인간들은 세 가지 일에 매달리게 된다. 술, 여자, 마약이 그것이다. 나는 단연 술이다. 술이 내 유일한 친구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전 총리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요즘 내 유일한 친구는 오른손이다.’


요즘 내 유일한 친구는 술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술과 em이다. 그녀가 없는 시간이면 술이 내 친구다. 한 잔 마시면 가슴이 뚫린다. 두 잔 마시면 머릿속의 거미줄이 꿈틀거리면서 걷히기 시작한다. 세 잔 마시면 미움의 감정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넉 잔 마시면 원인과 결과가 악수를 한다. 다섯 잔을 마시면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이 악수를 한다. 부족하다고? 알았어. 이번에는 소주다. 소주가 가지고 있는 성질 중에 으뜸은 마신 만큼 취한다는 것이다. 순수와 진실의 결정체. 마신다. 게맛살을 한 조각 뜯어 씹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시대와 사이클이 안 맞다. 일찍 태어나든가 좀 더 늦게 태어나야 했었다. 지금은 아니다. 시대와의 끝없는 불화의 그 원인은 원판이 안 맞는다는 것이다. 사고의 원판. 절감한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내 유전인자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그래서 판이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초 오상순 선생이 그 시대와 맞지 않았고 마 교수가 이 시대와 맞지 않듯이. 반 발 앞만 가도 뒤의 사람들의 호흡은 말도 못하게 가쁘다. 헥헥거리며 따라오다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다고 판단이 되면 그때부터 뒤통수를 향해 돌들을 던진다.


지난 세월 내가 침묵으로 보낸 것도 그 소이가 여기에 있다. 독불장군은 절대 일어서지 못한다. 끼리끼리여야 한다. 인적 네트워크, 그러니까 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회의 중심부에 들어갈 수가 없다. 강남이 불패하는 이유는 불패들끼리 계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믿는 유일한 신은


돈신이다.


권력도 십년이요 손가락 빠는 명예도 허상이다. 생명이 가장 긴 것은 역시 돈인 것이다. 돈만 있으면 이 세상은 천국인 것이다. 돈이 없으면 이 세상은 지옥이고. 종교도 결론은 돈 잔치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뭣 하러 교회에 오고 절에 오는가, 이 화상들아! 예외는 있다. 청담과 성철과 법정 같은 스님은 돈과는 거리가 먼 분들이다. 그들은 물질 대신 이 세상을 품으신 분들이다. 급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날라리들은 죽으나 사나 돈과 여자 그리고 술을 찾아 부나방처럼 떠돈다, 오늘밤도. 맞나? 맞다.


또 흥분했네!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다시 원위치. 어쨌든 그 다음날 날이 밝기 무섭게 나는 아침밥도 포기한 채 복덕방 앞에 서서 기다렸다. 뿐만 아니라 나 같은 인간이 나타나면 골을 깨버릴 것이다, 라는 심정으로 두 눈에 힘을 준 채 중개사 나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얻었다. 가서 확인을 해보니 실지로 가게 평수는 1평도 채 안 되었다. 그럼 2평은 어디에 붙어 있나? 가게 앞이었다. 그 골목의 가게들이 다 가게 앞 땅을 그렇게 사용하고 있었다. 마을버스가 수시로 다니는 일차선 도로를 가게들이 그렇게 묵시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 가게 앞도 다 합하면 2평 정도의 평수가 나왔다. 해서 합이 3평이었다. 좋다, 하고 나는 그 가게에 말뚝을 박았다. 여기서 시작하리라. 그리고 이 동네에서 내 존재의 닻을 올리리라. 지금까지 마이너스였던 경제를 여기서 지상 위로 끌어올리리라. 우리나라 경제에 보탬이 되어주지 못한 내가 아니었나. 좋다, 이제 도움을 주자.


2006년 8월 29일. 내 경제개발 1개년 계획은 그렇게 시작하였고 그리고 닻을 올렸다. 1년 후에는 이곳을 떠나 저곳에서 다시 경제개발 2개년 계획을 위해 땀을 흘리리라. 성경은 말하고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끝은 창대하였느니라.   

   

대학교 후문이 붙어 있고 산동네가 자리를 잡고 있는 이 동네에서 내 인생의 후반기의 닻은 올라갔다. 18년 간 그 가게에서 야채장사를 한 아주머니가 남기고 간 잔해. 나는 그 잔해들을 지우기 위해 줄 땀을 흘렸다. 거미줄, 새까맣게 변해 있는 세월의 때, 하수구에서 코를 지르게 한 지린내, 유리창이 떨어져 나가 신문지로 가려져 있는 창 등등을 걷어낸 나는 세월이 남기고 간 때를 걷어내고 씻은 다음 흰 페인트를 칠했다. 맑은 얼굴로 변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사람도 그렇듯이 우선은 용모가 깨끗해야 한다. 나는 정말이지 맑은 얼굴을 좋아한다. 깨끗하게 씻은 맨 얼굴을. 가게가 어느새 내 모습을 닮아 있었다. 주인이 깨끗하면 가게 역시 깨끗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쓸쓸한 밤거리 풍경 


며칠 후 냉장고가 들어왔다. 또 치킨을 만들 물건들이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할 물건들이 속속 들어와 내 가게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 많은 물건들은 전부 청계천에서 왔다. 청계천은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줄 땀을 흘리며 청계천을 자주 찾았는지를. 마르고 닳도록 찾았었다. 동묘에서 청계천으로 나는 열심히 다리품을 팔고 팔았었다.


청계천은 알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내 다리가 얼마나 자주 그 땅을 힘차게 밟고 다녔는지를

청계천은 알고 있다.

얼마나 자주 내가 줄 땀을 흘리며 입에서 단내를 내뿜었는지를

청계천은 알고 있다.

때가 묻은 공책을 꺼내 얼마나 자주 볼펜으로 기록을 하였는지를.

청계천은 알고 있다.

얼마나 자주 내가 줄방귀를 뀌었는지를.

빵! 빵! 고사포 터지듯이 그렇게 터져 나온 것은, 내 존재의 불안이었다.

한쪽 다리만 들었어도 나는 개였다.

30초마다 터진 고사포.

물똥을 안 싼 것 만해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드디어 닻은 올랐다. 9월 15일.

감독이 나발에 입을 대고 소리를 친다. 카메라 됐나? 오케이. 조명 됐나? 오케이. 주연배우 됐나? 오케이. 조연 그리고 엑스트라들 됐나? 오케이. 플래카드, 올리고! 만 오천 원을 주고 만든 모차베가 천천히 올라간다. 감독이 소리친다.


‘자자, 스탠바이.'

일순 긴장이 돈다.

'레디 액션!’


감독이자 카메라감독이자 조명감독이자 주연배우이고 조연배우이고 엑스트라인 나는 솥에 기름을 붓는다. 그리고는 가스에 불을 붙인다. 퍽, 하고 불이 붙는다. 얼마 후 온도계의 눈금이 170을 가리킨다. 나는 옷을 입힌 닭 조각을 조심스럽게 집게로 집어 솥에다 넣는다. 치익! 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닭 모가지 한번 비틀어본 일이 없었던 내가, 날이면 날마다, 생닭을 삼지창만한 칼로, 12토막을, 낼, 줄, 나, 예전에 꿈도 못 꾸었었다. 이래서 인생은 드라마인 것이다. 망하고 흥하고, 그리고 반전과 역전이 있는 한 편의 드라마…….

 

 

 

 

 골목길

 

 

닭과의 싸움 


아! 쓸쓸한 내 인생이여!

나는 묻는다,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까……

그리고 그 끝은……




뒷이야기- 닭 튀기는 직업을 가진 나는 날이면 날마다 생닭과 싸웠다. 삼지창보다 더 큰 칼을 손에 들고 생닭을 토막 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탁! 하고 칼을 내리치면 뼈와 뼈 사이에 가닿아 쉽게 갈라져야 되는데, 내 칼이 가닿는 곳은 뼈와 뼈 사이가 아니라 뼈의 중간이었다. 이런 식으로 자르면 언제 포정을 닮을까. 뼈와 뼈 사이로 칼이 지나가는 바람에 칼을 한번 갈면 16년 정도 사용할 수 있다는 칼의 도인인 포정. 어랍쇼, 12토막은커녕 숫제 꽁치를 칼로 다진 것 모양 죽판개판이 되어 있었다. 부끄러웠다. 해서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혹시 내 칼질하는 것을 쳐다볼까 두려웠다. 쳇, 완전히 초자구먼! 좆이나, 앞으로 많이 골려먹어야지. 탁! 하고 내리치면 살을 뚫고 지나간 내 칼은 나무토막에 한가운데에 박힌다. 뽑는다. 안 뽑힌다. 몸에서 땀이, 아니 얼굴에서 줄 땀이 흘려 내린다. 이 망할 칼아, 좀 뽑혀라, 엉, 사람들이 보고 있다, 좀 뽑혀라. 두 손으로 기합을 넣으며 눈알이 튀나오도록 힘을 준다. 어라차, 칼이 뽑히면서 뒤로 나자빠진다. 쾅, 하고 엉덩방아를 찧는다. 아마추어는 프로보다 힘을 두 배나 더 써도 그 결과는 참담하다. 프로가 아름다운 것은 조화요, 균형이요, 절대 미다. 


나는 말했다. 남이 하면 나도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더 잘 할 수 있다, 라고 나는 em에게 말했었다. 진짜다. 죽판개판의 그 칼질이 10일 뒤 드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만든 치킨 닭의 맛은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코를 벌렁거리게 하기 시작했다. 10여 일 간의 무료 시식회. 벌떼처럼 모여든 군상들. 탐욕으로 가득 찬 그들. 나는 그들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와 인연을 맺을 그들을 조심스럽게 나는 관찰하기 시작했다. 80에 가까운 퇴역장군, 예수쟁이 아주머니인 똥파리, 원룸 20개를 가진, 그래서 윌 수입 500을 입버릇처럼 자랑하면서 내 치킨을 수시로 집어간 간을 밖에 드러내놓고 살아가고 있는 그 여자, 수시로 붕어빵을 집어 먹는 추어탕집 주인인 추사장, 생고기를 파는 고사장, 세탁소 주인인 세사장, 잡화를 팔면서 공으로 주면 먹지만 돈을 주고는 어림 반 푼도 없는 정말 잡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70 먹은 잡사장, 침만 흘리며 지켜보고 있는 잡사장 친구인 이발사, 반도 태권도 도장의 관장인 70 가까이 된 늙은 애, 내 옆의 빵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빵사장과 그 옆의 간장 할머니와 붕어빵을 구워 팔고 있는 붕사장인 나. 앞으로 나는 그 골목 안 풍경을 그려나갈 생각이다. 그 동네를 떠나는 그날까지. 2006116비가오고있는겨울초입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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