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서울에서 유명한 추어탕 식당은 빠짐없이 순례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 아닌가. 잘 되고 있는 식당, 잘 안 되고 있는 식당을 가리지 않고 순례를 했다.
탕 연구를 하면서 나는 제일 먼저 인터넷을 통해 추어탕을 구입했다. 왔다. 아니었다. 맛이 영 아니었다. 껍데기를 보니 장황했다.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다녀간 흔적을 열심히 팔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다녀가면 보증수표인가.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다. 차라리 요즘은 방송국에서 다녀가지 않았습니다, 라는 팻말을 내걸어야 장사에 도움이 된다.
서울 추탕의 출발점인 무교동. 맛이 있었다. 하지만 먹고 나서 솔직히 고개가 갸웃했다.
추탕이냐, 육개장이냐?
육개장이었다.
고대 부근에 있는 서울 추탕. 옛 명성은 어디 가고 이제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너무 노쇠해서인 지 탕을 끓이는 할머니의 어디에도 힘이 보이지 않았다. 맛도 없었다.
그 다음 찾아간 곳이 정동. 그곳은 남도의 추어탕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가게 문을 잠그고 그곳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광화문. 그곳에서 걸어서 정동을 갔다.
명성대로 손님이 많았다. 집은 19세기 기와집이어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로 문정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자리 하나를 차지한 우리는 추어탕을 시켜 맛을 보았다.
매끄러웠다.
부드러웠다.
그리고 갈칠 맛이 났다.
과연 명성대로였다.
아니, 우리가 찾아 나선 식당 중에서 당연히 넘버원이었다.
그런데, 그 집의 추어탕도 결국 조미료가 맛의 결정체였다. 조미료가 비린내를 잡고 있었고, 조미료가 맛을 내고 있었다. 나는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입안이 텁텁했다. 조미료가 들어 있는 음식이 내 혀를 잠시 기절시킬 수는 있어도 내 정신을 기절시킬 수는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변이 마려워 속을 태우는데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들어갔다. 교회가 만만해보였다. 아마 저 망우리나 여의도 같았으면 들어갈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이다. 작은 것은 아름답다. 거짓이 아니다. 껍데기는 작아도 속이 알찬 것이 진국이다. 속은 썩어 있으면서 껍데기는 거한 성을 하고 있는 교회는 이상하게 눈길이 안 간다. 속을 비우고 나오면서 교회의 첨탑을 바라보았다. 맑고 성스럽게 다가왔다. 같은 파인데 어떻게 한쪽은 썩어 자빠져 있고 다른 한쪽은 일급수 모양 이렇게 맑을까. 풀어야 할 숙제다. 교회 밖을 나간 나는 옆지기에게 말했다.
오늘부로 이제 순례를 접자.
그래요.
이제 배울 게 없다.
맞아요.
이제부터 우리가 추어탕의 맛을 새로 만들어 나가자.
그래요.
3개월 만에 수업 끝!
이제 닻을 내린다. 순례도 접고.
시립 미술관 앞 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정동 골목길이 내 마지막 배움이었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지난 몇 달 미꾸라지와 싸우며~
흘린 그 땀이 오늘에사 멈추네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이요~
나는 가네~ 나는 가네~
정동길 저 너머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이요~
뒷이야기- 옛날에는 안 그랬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추어탕을 끓여 먹었다. 그때의 맛은 담백했고, 구수했고, 그리고 감칠맛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식당에서 끓여 파는 추어탕은 전부 조미료를 넣어서 맛을 내고 조미료를 넣어서 비린내를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꾸라지가 비싸니까 고등어 통조림을 믹서에 갈아 넣기까지 한다. 자,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미 조미료에 혀가 굳어 있는 사람들의 입맛을 무슨 수로 되돌릴 수 있단 말인가. 그게 숙제다. 갈수록 태산이다. 200783도노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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