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 운동
어젯밤에도 우리 두 사람은 술 배인지 밥 배인지 때문에 약간 부어올라 있는 뱃살을 빼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틀 전 밤에도 비가 내리는 둔치를 나 혼자 걸었다. 가는데 5킬로 오는데 5킬로. 해서 10킬로.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습했다. 해서 우산을 펴지 않은 채 그냥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 많던 사람들도 비가 오는 날이면 노는 날인지 자전거 패들만 앞뒤로 오갈뿐 조용했다.
1킬로 정도 갔을 때 웬 여자 하나가 계단을 내려와 내 앞에서 걷기 시작했다. 밤인데도 여자의 복장이 내 눈을 자극했다. 빨간 색의 운동복이었다. 말라 있었다. 그리고 혼자였다. 나와는 거리가 50미터 정도. 밤 10시, 비가 내리고 있는 둔치, 여자 혼자. 그것도 빨간 운동복. 갑자기 화성이 생각났다. 이심전심일까, 여자가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속으로 무슨 정성이 뻗쳐 이 밤에 나오십니까. 내가 보아도 좀 위험해 보였다. 여자에게 향하는 남자들의 욕망은 때와 장소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간다. 혼자는 위험하다. 될 수 있으면 두 사람이 짝을 지어 나와야 한다. 내 마음 같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세상은 내 마음 같지 않기 때문에 평화가 깨어지는 것이다.
2킬로미터 지점에서, 그러니까 굴다리 못 미쳐 지점에서 여자가 유턴했다. 잘 됐다 싶었다. 잠시 후 나와 그 여자는 비껴갔다. 내 손에는 우산이 잡혀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여자의 신경이 온통 내 우산에 향해 있었다. 탁! 하면 어! 하고 온몸이 얼어붙을 것이다.
여자여, 걱정하지 말고 똑 바로 집으로 들어가라.
어젯밤 그 지점을 지나가면서 나는 옆지기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이런 곳에 혼자 운동하기에는 위험하지요. 그것도 밤늦은 시간. 뿐만 아니라 빨간 운동복은 더더욱. 다들 한가위를 맞이하기 위해 고향으로 갔는지 여느 날과는 달리 한가했다.
쿵쾅쿵쾅 지하철이 다리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 은하철도 999가 불을 밝힌 채 종점을 향해 천천히 가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다리 위에서 맨손체조를 했다. 팔다리운동, 머리운동, 다리운동, 몸통운동, 허리운동, 손운동 등등을 마치고는 아이고 죽겠다, 하고 다리 위에 큰 대자로 누웠다. 큰 비가 온 뒤라 다리 밑에는 이과수 폭포 모양 물소리가 찰찰찰 소리를 내며 흘러 내려가고 있었다.
# 막걸리를 마시다
운동을 했으니 목이 말랐다. 나는 사 온 막걸리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소주가 지겨우면 막걸리, 막걸리가 목에 걸리면 소주다. 맥주는 가급적 피한다. 양도 양이지만 뱃살 때문에. 마르고 닳도록 달릴 때는 몰라도 걷기만 하는 요즘은 될 수 있으면 안 마신다. 누가 사주면 마시지만, 내 돈 주고 마시라면 나는 사양한다. 소주 한 병이면, 막걸리 한 병이면 만사가 오케이다. 그 대신 와사비는 있어야 한다. 어젯밤에도 간장에 물을 타 와사비를 넣어 젓가락으로 잘 저어 앞에 놓고는 막걸리를 한잔 가득 따라 마셨다. 막걸리보다는 소주를 더 잘 마시는 옆지기는 별 흥미가 없다는 듯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고맙네. 나 혼자 마시기에 양이 좀 부족하다. 두 병 마시면 똥배가 걱정이라 사양한다. 한 병으로 마감해야 한다. 어쨌든 맛살을 뜯어 와사비에 찍어 막걸리 한 병을 비우고는 상을 물렸다. 아따, 잘 마셨다.
#가미가제 특공대를 쫓아
상을 물리고 천장과 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밤마다 기습공격을 해대는 가미가재 특공대가 있나 없나 싶어서. 그 작은 모기도 뇌가 있고, 그리고 사고를 하는 것 같다. 불을 켜면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불을 끄면 나타나 인정사정없이 우리 두 사람의 몸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 먹는 것을 보면. 가미가재가 출격을 하면 밤 두 시에도 눈을 뜨고 세 시에도 눈을 뜬다. 방법이 없다. 탁! 어리버리 잠에 취한 눈으로 특공대를 찾아 탁! 하고 때리면 열에 일곱 여덟은 저승으로 간다, 조금 전 우리 두 사람의 피를 빨아 먹은 그 피를 다 게워낸 채.
#차마고도를 가다
차마고도 하네요. 눈을 감은 채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던 나는 그래, 하고 눈을 떴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쳐다보았다. 두 번 보고 두 번 다 감동을 받았다. 마방과 순례의 길. 시선을 고정시키고 보니 재방이었다. 2탄인 순례의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긴장감이 조금 다운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신비의 차마고도였다. 문명과 과학의 빛이 거세되어 있는 오지 중의 오지인 티벳. 그리고 중국과 티벳과 인도를 이어주고 있는 교역의 길인 차마고도.
성지인 라샤로 향하고 있는 순례자들을 카메라는 비추고 있었다. 이름하여 오체투지. 다섯 걸음을 걷고는 자신의 몸을 땅에 올인 하듯 몸을 낮추는 자세. 그들의 순례는 고통 그 자체다. 왜 저들은 저렇게 고통스럽게 그곳으로 가고 있을까. 오체투지는 무엇일까. 땅은 우리 인간들의 자궁이다. 생물학적 탄생 그 이전의 생명의 텃밭이다. 그 깨끗한 몸과 정신의 텃밭으로 가기 위해 저렇게 자신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기 전의 마지막 종점인 라샤. 그렇다. 저들은 라샤를 가기 위해 저렇게 험한 설산과 고도 5천미터의 그 돌밭을 기어가듯 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그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오체투지를 하는 그들의 어느 누구도 뚱뚱한 사람은 없었다. 말라 있었다. 말라도 너무 인간적으로 말라 있었다. 너무 투명해 그들의 영혼이 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하, 저들의 저 순례, 정말 값져 보이네.
그래요.
오체투지. 문명의 나라의 사람들이 저 광경을 보면 어떻게 이해를 하고 해석을 할까.
아마 두 가지겠지요. 감동, 아니면 무의미.
저렇게 하라고 하면 할까.
대부분 안 하겠지요.
문명이 차단된, 과학이 차단된, 저 설산에서 저들이 가고자 하는 라샤는 도대체 뭘까?
글쎄요. 욕망이 끝나고 태초의 영혼이 시작되는 곳...
아마도.
나는 아프칸에 가 선교활동을 하다 그들의 밥이 될 법한 그들을 떠올렸다. 누구의 삶이 더 의미가 있을까. 문명화 된 세계에서 간 지적인 그들과, 지적 저장물 대신 지혜를 가지고 있는 저들. 어느 쪽의 삶이 더 순수하고 의미가 있을까.
저들은 하느님의 세계를 모른다.
저들은 저 여의도에 있는 궁궐 같은 그 교회를 모른다.
저들은 오늘도 궁궐 같은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찬앙하며 두 손을 마르고 닳도록 치고 있는 그들의 육적 정신세계를 모른다.
저들은 말씀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오늘을 모르고 모른다.
나는 생각한다.
모르는 저들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들, 어느 편의 삶이 더 고귀하고 의미가 있을까.
#초파리가 나타나다
며칠 전, 포도를 먹고 그 찌꺼기를 비닐봉지에 넣고는 까마득히 모르고 지냈다. 어제 이상하게 날파리 같은 것들이 날아다녀 그 진원지를 가보니 비닐봉지 안에 넣어둔 포도 찌꺼기에서 초파리 떼가 득시글거리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서울 중심지에서 만난 초파리. 상상이 가지 않았다.
창조인가, 진보인가?
옆지기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차마고도의 그 순례의 길을 가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안타까운 심정도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세계에서 보면 어쩌면 저 고행은 부질없는 몸 운동에 불과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부분에 대해 우리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었다.
초파리 이야기를 했을 때 옆지기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나는 그 초파리를 보고 내 대가리를 푹 숙였다. 상상이 가지 않았다. 똥파리도 아닌 초파리가 나타난 것은, 외계에서 날아온 유에프를 목격하는 일만큼이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그것만 보아도 창조예요.
이 사람아, 초파리를 오게 만든 유전인자를 먼저 생각해야지.
그 유전인자까지 어디에서 온 것인데요.
창조란 말이지.
그렇지요.
좁혀서 생각해보자.
좁고 넓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요. 왜냐하면 결국 하나이기 때문에.
수톱. 그렇다면 만약 유에프오가 이 지상에 오면 끝이네.
......
생략하고, 다시 차마고도로 돌아가자.
# 다시 차마고도를 가다
그들이 고향을 떠나 라샤까지 가는데 장장 7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고도 5천에 가까운 돌산과 눈밭과 강과 산을 넘고 넘어 그들은 마침내 문명이 불을 밝히고 있는 라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그리고 여전히 오체투지로 라샤의 중심을 향해 몸을 낮추고 낮추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신념. 그들은 무엇을 얻기 위해 고행의 길을 나섰을까.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 어쩌면 그 고행 길에서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길을 가고자 하는 그 끝은 무엇일까. 나는 생각하는 로댕이 된 채 내 머리를 참기름 짜듯 짰다.
저들의 저 고행과, 고행 그 끝은?
3이다. 순간 내 머릿속에서 나온 숫자였다. 하, 3이구나. 저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 고행의 길을 떠난 것은 저 3을 잡기 위해서구나. 저들이 고도 5천미터의 고통의 그 길을 오체투지로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거북이 걸음으로 간 것은, 저 3에 있었구나. 가다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를 고통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채 저 돌밭을 기어가고자 한 그 끝이, 저 3에 있었구나. 그래, 3이다. 3은 그리고 1이다.
그래, 3이다.
라고 생각하자 내 머릿속에 밝은 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어둠이 서서히 걷혔다.
고행, 그것은 크나큰 축복이자 행복이다.
뒷이야기- 신비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차마고도를 가다, 라는 프로를 보고 나는 잃어버린 내 순수와 잃어버린 내 본성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차마고도를 가다에서 내가 정말 찾은 것은, 1이고 3이였다. 나는 생각한다. 우리 문명인들이 찾고자 하는 답은 분명 우리 안에 있다. 단지 우리 스스로 켜놓은 밝은 불 때문에 그 답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 쌓여 있는 지식이라는 그 빛이 결국 우리를 지금 당달봉사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위의 저 1과 3의 답을 아는 분 계십니까? 계시면 좀 가르쳐주십시오. 2007922도노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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