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대교. 동해가 아닌 남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남해대교를 넘었다.
남해 읍내 중심지에 있는 버스정류장. 아직도 표를 파는 정류소가 있었다. 이곳에서 떠나는 막차는 밤 8시 20분. 그 시간이 지나면 이곳의 셔트가 내려진다.
그날 밤 우리 배를 넉넉하게 채워준 시장 안 식당. 식당 주인인 아주머니에 의하면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의 단골집이라고 했다. 그분이 만약 식당에 오시면 내가 그러더라고 전하소. 눈빛도 보이 기가 빠져 이제 히빌히빌하던데, 마 은퇴하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라고. 맞니더.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도 남사스럽니더. 김두관 전 장관이 괜찮습니다. 밀어주소. 그분도 우리 식당에 가끔씩 오니더. 보송에 가서 주먹자랑 하지 말고, 여수에 가서 돈 자랑하지 마라. 그렇다면 남해는? 남해에 와서 인물 자랑하지 마라. 장관만 다섯여섯이란다. 시장바닥에서 괴기나 채소를 판다고 우습게 보지 마라. 그들 아들 딸들 중에 박사가 많단다. 산세와 지세가 좀 달랐다. 얼마나 악착스러운대요 라고 식당 아주머니가 전했다.
매운탕 1인분에 8000원. 숭어회 한 접시에 1만 원. 반찬이 너무 많아 배가 터지는 줄 알았다. 김치를 먹었는데 젓갈이 들어 있어 한 접시를 몽땅 비웠다. 아주머니가 지역신문에 수필까지 발표를 하는 세자매의 맏이인 억척 아주머니였다. 남해에 가면 한번 가보십시오.
남해읍내. 있을 것 다 있고 없을 것 없었다.
읍치고는 큰 편이었다.
남해읍이 자랑하는 상주해수욕장. 우리가 먹던 빵을 떼어 주자 소나무에서 아침부터 노래를 부르고 있던 까마귀들이 살살 눈치를 보며 내려와 빵을 물고 날아올랐다.
게. 너무 앙징맞아 조심스레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생명체는 아름답다. 함부로 모래사장을 밟으면 안 된다. 조심조심.
아침바다를 배경으로. 여기서 마 평생 누워 있어도 좋겠다. 옆지기가 웃었다. 두 사람 모두 스트레스에 치어 산다. 머리끝까지 올라와 있으면 떠나야 한다. 그냥 떠나야 한다. 그렇게 해서 온 곳이다. 동료 선생에게 전화를 해라. 여기서 죽고 싶다고. 처음 와 본 남해의 상주해수욕장.
게 한 마리가 허벌나게 모래사장을 걷고 있다.
유명한 해수욕장이라고 한다. 지금은 비수기지만 조금 있으면 인산인해란다. 최신식 찜질방도 있었다. 1인당 1만 원.
저 유람선을 타고 어디로 가나? 가서 물었다. 이 배 타면 울릉도 갈 수 있습니까? 중국은 어예 가볼 수 있을랑가 모르겠지만 울릉도는 좀 어렵습니다. 물었다. 고래고기 수육은 있습니까? 상어 내장은 있어도 고래고기 수육은 없습니다. 하, 모처럼 돈 좀 쓰고 갈까 했더니... 그럼, 가야겠네. 수고하십시오.
그림이었다. 바다가 면경알이었다.
부산에서 어젯밤에 와 승합차 안에서 일박을 하고 우리가 그 벤치에 갔을 때 라면을 끓여 아침을 대신하고 짐을 막 싣고 있었다. 이 어린이가 요쿠르트 두 개와 귤 세 개를 가지고 와 주었다. 기념으로 짤깍. 이메일로 보내주었더니 카카카 하며 아저씨 다음에 만나면 맛있는 고기 사 드릴게요. 그리고 이메일 계속 주고받아요 했다.
남해대교. 언제 다시 남해를 찾아올까. 늘 살아 있는 남해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뒷이야기- 처음 가본 남해. 조용했다. 정이 있었다. 그날 밤 매운탕으로 배를 채운 우리는 남해초등학교 운동장에 가 다섯 바퀴를 돌았다. 개교 100년이 넘는다는 남해초교. 역사와 전통만큼 인물이 많이 배출된 전통 있는 학교였다. 서울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역의 발전도 매우 중요하다. 다음은 해남이 될까. 200963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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