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속초 그리고 설악으로 떠난 여행

오주관 2009. 4. 13. 11:56

 

 

 

벽에 붙어 있는 메모지들. 저 속에는 우리집 전화번호와 학원 전화번호도 적혀 있다. 나는 아직 우리집 전화번호를 잘 모른다. 학원에 전화를 해야 하는데 전화번호를 몰라 애를 먹는다. 건망증도 아니고 치매도 아니다. 그런 병을 나는 가지고 있다. 또 있다. 저 서랍 속에 들어 있는 고혈압 약. 약을 먹지 않으면 210-130 정도 나온다. 그해 중풍이 오려고 시동을 걸 즈음 담배를 끊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10년 간 달렸다. 동시에 약을 먹기 시작했다. 남은 인생 중풍협회회원으로 살 수는 없는 법. 나를 만나면 술을 마시자고 하면 안 된다.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인간이 있다면 첫째, 담배를 피우는 사람. 둘째, 상대의 의사를 무시하고 술을 권하는 사람. 해서 중풍협회정회원이 안 되려고 밤마다 어디론가 다리품을 열심히 팔고 있다. 건강이 장땡이다.

 

 

 

 

 평창 휴게소. 몸 속의 물을 부주했다.

 

 

 

 

속초.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면서. 내항은 그러나 썩어 있었다. 바다와 내항이 가로막혀 소통이 안 되고 있었다. 소통이 되어야 내항이 썩지 않는다. 

 

 

 

 

일몰을 등에 지고 있는 사나이. 좀 애볐다. 저 사나이의 뜨거운 가슴 속에 한반도 통일이 들어 있다. 주치의는 말했다. 이제 좀 쉬시라고. 그리고 맛있는 것도 좀 드시라고. 술 한잔이 제일 맜있다. 마당발치고 큰 인물 없다고 했다. 사나이는 일생 고독해야 한다. 벗 하나 정도면 끝이다.

 

 

 

 

노을이 지는 속초. 청학동 아바이동네에서 먹은 냉면과 순대국. 나는 몸이 추워 순대국을 먹었고 옆지기는 냉면을 먹었다. 나는 맛이 별로였고 옆지기는 좋았다고 했다. 순대국에 비계가 너무 많아 가려내었더니 먹을 게 별로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 사극을 좋아하고 비계를 좋아한다고 했다. 사극은 와 닿는데 돼지비계는 아직...

 

 

 

 

 연초록이 너무 아름다워. 사람이 더 아름답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자연은 신비 그 자체다. 때가 되면 스스로 옷을 벗고 입는다. 자기 스스로.

 

 

 

 

가자, 저 금강굴로. 무슨 인연인지 운명인지는 모르지만. 

 

 

 

 

더위 앞에 장사 없는 법. 사람도 마찬가지다. 조지는 게 능사가 아니고 베풀어야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계속 주다보면 짐승이 아닌 이상 감동을 받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냥 베푸는 것이다.

  

 

 

 

볼치기가 아니라 목이 말라 오이를 씹고 있는 중. 오이가 목마름을 해결시켜주었다. 가슴도 뜨겁게 불타고 있지만 얼굴도 활활 타고 있다. 오가에다 O형이다. 나는 아직 나보다 센 성씨를 만나지 못했다. 고집도 있지만 반대로 나만큼 친화력이 강한 사람도 없다. 30분만 나와 쏼라쏼라를 하면 그 사람은 내 편이 된다.

 

 

 

 

까마득했다. 입구에서 걸어 3,3 킬로미터라고 쓰여 있었다. 가자, 금강굴로. 원효대사도 만나고 그리고 저곳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다시 한 번 그리자. 

 

 

 

 

 

저 금강굴을 개척하신 원효대사가 까마득하게 우러러 보였다. 밧줄을 타고 오르내렸을 것이다. 원효대사는 저 금강굴에서 인간의 시원을 밝혀내었을까? 3년 정도 면벽좌선을 하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도 같다. 3년.

 

 

 

 

 

아득하다. 까마득한 게 인생이다. 나는 입체적 인물과 삶을 좋아한다. 평면형보다는. 굴곡의 삶을 산 사람이 세상의 중심에 서야 한다. 

 

 

 

 

 

저 불전함에 돈 몇 푼을 넣어준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저 여스님은 뭘 먹고 마시며 사나? 종교를 생각하면 안 된다. 생존을 생각해야 한다. 삶을 생각해야 한다.  

 

 

 

 

인연이 있는 여스님. 목탁 소리가 저 멀리 내설악을 향해 울려 퍼져 나갔다. 탁탁탁! 번뇌도 사라지고 탁탁탁! 무지와 탐욕도 사라져라...

 

 

 

 

생명수. 골프채를 가지고 올라온 한 사내가 저 물을 공으로 세 컵 정도 마시고는 천원짜리 하나 부주하지 않고 에햄! 하고 잔기침을 내뱉고는 내려갔다. 한 시간에 물 한 방울 고이는 샘. 하! 저런 놈은 내려가다 거꾸로 폭 고꾸라져야 한다. 산에 등산용 지팡이가 아니라 골프채를 가지고 올라온 이 어리보기 천민아, 마 삶을 잇지 말고 접어라! 그러나 오줄쟁이, 잘도 내려간다. 뒤뚱뒤뚱 자빠지지 않고... 

 

 

 

 

깊어라 산도 골짜기도. 높으면 깊고 깊으면 길다.

 

 

 

 

 저 멀리 눈도 보이고 얼음도 보였다. 과연 설악은 설악이었다.

 

 

 

 

저 물에 발을 담갔다. 아이고, 얼음물이었다. 뼈가 아리고 살이 떨려 죽는 줄 알았다. 얼어죽기 전의 올챙이를 긴급히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로 이송. 우리 두 사람 때문에 삶을 건진 울챙이 수가 아마 3백은 되지 싶다. 그러나 저러나 저 오모차베가 진실로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무지입니다. 무지만 만나면 온몸을 사정없이 바르르 떱니다. 저 사내는 자주 말하곤 합니다. 세상은 나를 만나야 한다. 나 같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과 만나야 한다. 꿈속에서도 중얼중얼거립니다. 나 같은 사람과 만나야 한다. 애절하지요. 참으로 애절합니다. 저 사내가 만약 이 세상 앞에 무릎을 꿇으면 그 적은 실패가 아니라 무지입니다. 무지!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물은 얼음이었고 햇빛은 여름이었다. 잠시 일상에서 일탈해 있는 옆지기. 나는 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지혜롭고 심지가 깊다. 더러 당신을 괴롭히는 자들이 없잖아 있다는 것도 안다. 그때마다 참을 인을 떠올려라. 칼은 일생에 딱 한번 뽑는 거다. 내 생명이 백척간두 그 끝에 와 있을 때. 그게 아니면 참고 넘어가는 거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는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다.

  

 

 

 

 

 

 

뒷이야기- 4월 10일에서 12일까지 한국은 분명 여름이었다. 그날 토요일 아침 KBS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남태평양의 어느 섬나라를 비추고 있었다. 바닷물 색깔이 눈이 부실 정도로 흰색이었다. 동해 바다로 가? 갑시다. 그렇게 해서 정한 목적지가 속초였다. 바다도 보고 산도 보자. 속초의 밤은 추웠다. 위에 걸칠 옷 하나를 가지고 온 게 여간 다행이 아니었다. 설악은 더더욱 그러했다. 금강굴에서 바라본 내설악 쪽은 아직 얼음과 눈이 박혀 있었다. 밑은 봄인데, 산 위에는 겨울이 머물고 있었다. 설악의 계곡에서 서울의 찌들었던 때를 벗기고 온 것이 아니라 잠시 서울을 잊어버리려고 노력을 했다. 해서 설악의 계곡에 눌러앉은 우리는 와선대에 누워 설악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켰다. 공짜가 아닌가. 그 시간만큼은 서울은 없었다. 2009413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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