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소통을 하기 위해 블로그를 만들었고, 블로그를 통해 그동안 세상 사람들과 소통을 해왔다. 그러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의 문을 두드렸다. 기자회원이 되어 첫 기사를 보낸 날이 지난 6월 19일이었고, 기사가 실린 날도 6월 19일이었다. 지금까지 세 편의 기사를 실었다.
한국은 지금 진보와 보수가 극심하게 싸우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그동안 내면에서 부글부글 들끓고 있던 이념이 마침내 터져 나와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마치 근본주의와 문자주의에 매달리고 있는 기독교를 보는 듯하다. 기독교를 믿는 자는 선, 기독교를 믿지 않는 자는 악. 따라서 비기독교는 물리쳐야 할 악.
우리 한국이 그 꼴이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미디어법을 놓고 첨예하게 싸운 여당과 야당. 국민의 여론은 존재하지 않았다. 있다면 자신들의 이해와 이익만 있을 뿐이었다. 민생법안을 외면한 채 쟁점법안에 미쳐 있던 여당이 마침내 그들의 숙원사업이 통과되자 그제야 안중에 없었던 민생법안을 슬그머니 올려놓고 야당을 다그치며 국민을 향해 아부의 쇼를 펼치고 있다.
▲ 정부와 국회는 국민을 섬기는 머슴이다
▲ 대안이 없는 목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 권력과 정당이 아닌 국민과 역사를 위해 자신의 존재를 던져야 한다
21세기는 어떤 사회여야 하나? 분명한 사실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지난 20세기의 사고로 그림을 그려서는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 수 없다. 21세기는 모든 이념을 용광로에 넣어 녹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의 밥줄을 쥐락펴락한 시장주의도 용광로에 넣어야 한다. 성장과 경쟁 그리고 수출위주의 경제정책을 가치 있는 삶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그리고 내수로 방향을 돌려 새로운 한국형 비빔밥을 창조해 내어야 한다.
며칠 전 고향에서 올라온 조카 성일이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진보와 보수에 대해. 얼마 전 사시를 본 부산의 누나가 집에 놀려왔을 때 이모가 우리 야는 노무현 전 대통령 팬이다, 라고 하자 포항의 엄마가 기겁을 했다는 것이었다. 해서 내가 그랬다. 이 땅의 하이칼라들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 그 나머지는 이 씨를 지지할 거다. 삼촌 생각은 다시는 이 씨 같은 대통령이 이 땅에 나와서는 안 된다. 그는 한마디로 불량품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수와 진보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어떤 가치가 있다. 보수는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이고 진보는 깨는 것이다. 보수는 지금까지 우리 한국을 지탱시켜온 자유와 자본주의를 지키는 것이고, 진보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시켜온 자유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수술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보수와 진보의 차이다.”
좌와 우는 물리칠 수 없는 우리의 동력이다. 바퀴 하나로는 자동차가 달릴 수 없다. 새 역시 좌우의 날개로 비상과 낙하를 거듭한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두 다리로 자신의 존재를 움직이는 것이다.
해병대 출신인 조카에게 그랬다. 이념이 충돌할 때마다 해병대 복장에 가스통과 단검을 무장한 채 광장에 나와 좌파는 물러가라! 빨갱이는 물러가라! 라고 땡고함을 지르는 행사에는 나가지 마라. 하하하! 그들에게는 몸은 있지만 머리는 없다. 그들에게는 현실은 있지만 미래는 없다. 권력 앞에 충성을 할 것이 아니라 국민과 역사 앞에 충성을 해야 한다.
진보주의자라면 누구에게나 사회적 관심사가 있다. 나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이념문제 그리고 교육문제에 천착하고 싶다. 지난 일 년 한반도 통일에 미쳐 지냈다. 나는 내가 만든 통일 프로젝트를 정치권과 학계에 보냈다. 그들에게 말했다.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하자. 이념과 대결과 전쟁이 아닌 상생과 공존의 평화통일이어야 한다. 이 나라를 책임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당신과,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설계하고 재단을 하고 있는 석학인 여러분의 고언을 듣고 싶다. 그리고 언제든지 만나 토론을 하고 싶다. 하지만 끝내 돌아온 것은 빈 메아리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답신이 없었다. 내 수고와 열정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분노보다는 씁쓸함이 나를 덮쳤다. 새로운 사람을 향해 다시 날아간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프로젝트, 기대를 걸어본다. 어쨌든 앞의 그들은
▲ 통일보다는 대권과 장관직과 국회의원직에 목을 매달고 있었다
▲ 석학들 역시 변방의 ‘듣보잡’ 의 출현을 좋아하지 않았다.
▲ 석학들! 에이 퉤퉤!
보라! 강물은 오늘도 흐른다. 시간 역시 착실히 가고 있다. 한반도를 가로막고 있는 두 이데올로기 역시 통일이라는 그 종점을 향해 더디지만 착실히 가고 있다. 문제는 열정과 도전정신이다. 브라질 출신의 작가 파울로 코옐로는 말했다.
“낙관주의자도 죽고 비관주의자도 죽는다.
문제는 어떻게 살았느냐 이다.“
뒷이야기- 역사의 승자는 누구일까? 극심한 이념의 싸움터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자일까, 아니면 싸움터에서 싸우는 자일까? 침묵을 지킨 채 묵묵히 자신의 일에 매달린 사람도 승자다. 배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불이익을 감수하고 온몸으로 싸우고 있는 사람도 승자이다. 머리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하더라도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그들은 사회의 발전을 위해 온몸을 던지는 그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야 한다. 곤봉과 방패에 맞으면서 불의에 항거하는 그들 때문에 우리 사회는 한 걸음 한 걸음 진보를 하는 것이다. 하나는 영원히 반쪽이다. 2009728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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