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노마드님에게

오주관 2012. 5. 11. 18:08

 

 

어젯밤 3년 동안 소식을 끊고 지내던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형님, 접니다. 아, 그래, 오랜만이다. 학교가? 네. 반갑다. 저도 반갑습니다. 형님 오늘 스케줄 어떻게 되십니까? 전과 동이다. 일로 올래? 아, 당연히 가야지요. 아이들 공부를 마친 집사람과 수락산역으로 갔다. 그가 나타났다. 3년이라는 간격이 사라져버렸다. 그의 손은 차가웠다. 어예 지냈노?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중책을 하나 맡는 바람에 형님도 못 찾아뵙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방학 때는 학생들과 탄자니아와 네팔 등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불이 환한 주지육림의 그 골목을 지나 우리가 찾아간 곳은 수락산 골짜기에 있는 식당. 노천의자에 앉은 우리는 파전을 안주로 막걸리를 잔에 부어 건배를 했다. 3년 전, 많이 마셨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기가 세다는 것, 분노를 할 줄 안다는 것, 정이 많다는 것, 분석을 잘 한다는 것, 판단이 빠르다는 것 등이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그가 나를 이렇게 정의를 내렸다.

 

 

 

형님은 한마디로 독구다이입니다.

혼자서 주연 조연 엑스트라까지 다하는 독구다이.

 

내가 카지카미 특공대? 독구다이를 다른 말로 표현을 하면 독재자다. 네로나 히틀러 같은 구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몸이 조금 떨렸다.

 

대신, 정도 많잖아요.

옆지기가 거들자, 그가

아, 많지요. 그걸 왜 제가 모르겠습니까?

 

 

 

내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이번에도 극찬을 했다. 그가 살아 있었을 때 이 프로젝트가 가동이 되었으면 큰 족적 하나를 남기고 가는 건데. 그 일을 생각하면 머릿속에서 뜨거운 불이 치솟는다. 그림을 많이 그렸다. 38선을 넘어가는 남한대표단의 주인공들. 가서 담판을 짓는 그 장면을 떠올리면 온몸이 부르르 떨리곤 했다.

 

소통이 중요합니다. 일단 사람들과 교분을 많이 쌓아야 합니다. 정치일선에 있는 그 사람들은 형님과 사고가 다릅니다. 당장, 바로 앞, 그리고 항상 손익분기점을 계산하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초야에 묻혀 있는 영웅호걸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막걸리 5병을 비우고 나자 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고질병이 살아났다. 예나 지금이나 술만 들어갔다 하면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독구다이는 일어났다. 이제부터 특공대가 아닌, 더불어 연구하고, 사고하고, 모색해보자는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걸어 나오다 지나가는 빈 택시를 세워 그를 태웠다.

 

노마드님, 제 블로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댓글도 달 수 없고 방명록 문도 닫혀 있습니다. 블로그를 이렇게 운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통을 좀 줄이자. 대신 내 일을 많이 하자. 이 세상에 왔다고, 살았다는 흔적이라도 남기고 가야 하지 않겠나.

 

 

 

4년 전부터 제 인생 후반부에 대해 그림을 그리곤 합니다. 뒤돌아보니 참 값없이 살았습니다. 똑 같은 장소에서 출발을 했는데, 어느 선수는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느 선수는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몸이 전부 소금 꽃입니다.

 

그들 중의 한 사람. 그는 젊은 시절 얼마나 어금니를 악문 채 연구에 매달렸는지 어금니가 흔들릴 정도가 되었고, 젊은 시절 휴일도 없이 연구실에서 미쳐 지낸 나날이 얼마였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난공불락의 성 하나를 쌓았습니다. 그는 성공을 한 사업가이자 자연주의자입니다.

 

노마드님도 잘 아는 분입니다. 키는 육척이고 장비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몸이 튼튼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지나온 스토리를 읽으면서 눈을 감은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활활 태운 사람입니다.

 

또 한 사람. 그는 경계가 없으면서 치우침이 또한 없는 사람입니다. 그의 글은 대해입니다. 그의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더 넓은 상상력의 바다를 만날 때마다 젓는 노가 참으로 유쾌합니다.

 

그의 폭넓은 지식은 어디서 온 것일까? 아마도 방대한 책 읽기에서 왔을 것입니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마치 지평선이 까마득한 벌판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합니다.

 

 

 

글과 인격

우리는 왕왕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그르칠 때가 많습니다. 상대방을 본다는 것, 보아서 그 사람의 그 무엇이 내 의식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다시 튀어나오는 상 하나를 가지고 그 어떤 결과를 내놓는 것, 그것을 우리는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판단은 순전히 본인 몫이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판단과 본인의 몫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안과 밖을 볼 수 있는 눈과 시야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 사람이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면 큰 학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오지랖도 넓고, 그의 넓고 깊은 사고의 지평을 보노라면 마치 대해를 보는 듯합니다.

 

위풍당당한 사람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

 

뒷이야기-노마드님의 댓글을 도서관에서 읽었습니다. 수락산에 가면 같이 등산을 할 수 있느냐. 제 옆지기가 무리들과 등산을 할 수 없는 심폐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2년 전, 지리산 돌레길에 따라 나섰다 죽는 줄 알았습니다. 12킬로미터를 5시간 안에 주파해야 하는 그 코스를 걸으면서 애를 먹었습니다. 천식. 5미터 올라가면 5분을 쉬어야 합니다. 5미터 가서 5분 쉬고, 5미터 전진하면 또 5분 쉬고. 남들은 하산을 하는데 우리는 아직 중간지점에서 헐떡거리면서 숨을 내쉬곤 합니다. 기회가 되면 막걸리나 한잔 합시다.2012510도노강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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