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밤길

오주관 2008. 1. 10. 02:28

  

 

 

 그 시간이면 고단한 하루를 접고 길을 나선다. 배낭을 멜 때도 있고 안 맬 때도 있다. 문을 잠근다. 배달을 나간 분식집의 오토바이가 들어온다. 그러자 다른 오토바이가 불을 밝힌 채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둠 속의 두 얼굴이 굳어 있다.


골목을 나와 도로를 건넌다. 그리고는 지름길인 시장으로 들어선다. 파장이다. 귀마개를 쓴 어물전의 청년이 고기를 담고 있다. 늘 술 냄새를 풍기는 야채상 사내도 전을 거두고 있다. 시들어 가고 있는 마트 앞의 봄동도 곧 철수를 할 것이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 속으로 걸어간다. 길이 끝나자 산이 나타난다. 산 속으로 들어간다. 캄캄하다. 어두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지리산을 떠올린다. 산에서는 산을 보지 못하다가 산을 내려와서야 산을 보게 되었다는 그녀의 고백. 바다에서는 바다를 보지 못한다. 산도 마찬가지다. 부분만 볼뿐이다. 대상을. 


가슴 괜찮아요.

응.

내일 병원에 가봅시다.

풀리겠지.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렸네.

그러네요.

동일까, 서일까.

 

왜, 인간들이 싫을까?

......

왜, 사람들이 싫을까?

......

구역질이 난다. 구토가 나고.

 

폭군으로 변해 있는 나. 나는 줄 방귀를 뀐다. 방귀도 마음대로 뀌지 못 한다. 그 골목의 개똥이 소똥이들이 언제부터인가 내 눈치를 보고 있다. 차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도 접근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아침이면 그 골목을 오르내리곤 한다. 시장통으로.

 

땅이 흔들리제.

조금요.

그러니 어지러울 수밖에.


재생되어지는 화면. 장작패기, 군불, 황토, 된장, 냉이, 소담스러운 밥상, 장작이 타고 있는 드럼통의 난로가 내 가슴을 방망이질했다. 내가 가야할 곳. 언제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 일년 후. 그 전에 무릎을 꿇으면.


내가 그리고 있는 유토피아. 그곳에 가는 날, 나는 비로소 구역질과 구토, 그리고 가슴앓이에서 해방되리라. 그리고 자유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옆지기의 손을 잡았다.

  


뒷이야기- 오래 전의 이야기다. 경주 폐교에 살 때, 나는 행복했었다. 지게를 지고 산에 들어가면 죽은 나무가 널널했다. 톱으로 베고 낫으로 쳐 한 짐 가득 지고 내려오면 놀부는 저리가라였다. 그렇게 나무를 하다 보면 어느새 부엌 한쪽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나무. 부자가 되어 있었다. 쩌엉 쩡, 저수지가 얼어붙는 깡추위가 닥쳐도 춥지 않았다. 구들을 얼마나 잘 놓았는지 연기 하나 새어 나오지 않는 부엌 앞에 앉아 군불을 땔 때, 나는 너무 행복해 늘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때 그곳에서는 구역질과 구토는 없었다. 2008110도노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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