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사관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내 조카 성일이가 어제 서울에 왔다. 대구에 있는 Y대학교 기계공학과에 다니다 해병대에 지원을 해 올 봄 제대를 했다. 어려서 내가 3분의 1을 키운 조카다. 이놈 이름도 내가 지어주었다. 수많은 별 중에 하나의 별이 되어라 라는 뜻으로. 별 성, 한 일. 영화배우 이름이 아니다.
인간성이 낙천적이고 쾌활하고 적극적이다. 해서 주위에 친구들이 많다. 선후배 사이도 좋고. 기대가 되는 조카다. 오늘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미국 대사관에 갔다. 종각에서 만나 미 대사관 앞에서 헤어졌다. 나는 종로구청 구내 이발관으로, 조카는 긴 대열 속으로.
인사동 쌈지에 데려오니 괜찮은 곳이네요 라고 했다. 미술을 전공한 여자 친구가 이런 곳을 좋아한다고 했다.
머리를 깎고 나오니 조카도 막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고 있었다. 조카와 나는 점심으로 무교동 낙지볶음을 시켰다. 나는 땀을 삘삘 흘리며 먹었고, 성일이는 매워서 잘 먹지 못했다.
삼십 이전에 부지런히 찍어라. 삼십이 넘으면서부터 머리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선임과 후임을 만나기 위해 다시 종각으로 자리이동.
사색할 때의 표정은 누구나 아름답다. 깊이 있게 사색하고 고뇌해라.
키가 일미터 팔십오다. 근대만 나가면 팔등신이다. 거기다 해병대 출신이라 말도 못하게 튼실하다. 친환경적으로 설계된 쌈지공간 쌈지길 안에서 내년 1월달에 미국 뉴욕으로 어학연수를 떠난다. 1년 동안 뉴욕에 머물면서 무엇을 채워 돌아올까. 사뭇 기대가 크다. 사고의 깊이와 넓이를 위해, 세계의 중심부인 뉴욕에 가서 신 지식을 배불리 채워 오기를 기대한다, 성일아. 인사동 쌈지길 앞에서. 늘 그렇게 웃으며 살아라, 이 세상을 품으면서... 그 옛날, 아침마다 다섯 살 먹은 네는 세발 자전거를 힘겹게 밟으며 목재를 넘어 외가로 오곤 했다. 그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성일이, 외가 가나?' '예.' 라고 대답을 하면 마을 사람들이 뒤에서 자전거를 밀어주고 당겨주곤 했다. 다섯 살 먹은 어린 네는 아침이면 차가 왕왕 다닌 2차선 도로를 겁도 없이 세발 자전거를 타고 그렇게 씩씩하게 외가에 오곤 했다. 기억나나?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엇을 보고 있을까 성일아, 네 눈에 보이는 세상, 만만하지 않다. 정직이 최선이 아닐 때가 많다. 이 세상은 참으로 복잡하다, 그 구조가. 미로와 같다. 그 골목에서 길을 찾는 것은 오로지 네 자신이다. 삼촌은 믿는다, 성일이는 그 미로 같은 세상을 잘도 헤쳐 나갈 것이다, 라고. 네는 할 수 있다. 종로타워에서
뒷이야기- 종각에 있는 종로타워 33층에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아래를 내려다보자 현기증이 났다. 하지만 조카 성일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유리창에 붙어 서서 시내를 관망했다. 밑에서 위로 쳐다볼 때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때의 차이점이 바로 우리 인생과 비슷하다. 밑에서는 현기증이 일어나지 않는다. 같은 높이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 올라가 밑을 내려다보면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균형에 균열이 오고, 그리고 현기증을 일으킨다. 위에서 당당하게 두 팔을 벌린 채 아래 세상을 조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자유와 만나게 된다. 자유! 아무나 손잡을 수 없는 그 무엇! 이 땅에 자유인이 있을까? 20071210도노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