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촛불집회를 다녀와서

오주관 2008. 5. 20. 16:40

  

 

 

청계천이 시작되는 곳. 부글부글 마치 국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지난 17일 오후, 우리 두 사람은 집을 나와 지하철을 탔다. 목적지는 종각. 그곳 종각에서 내린 우리는 영풍문고에 들어가 책 사냥에 나섰다. 영어 코너에 간 우리 두 사람은 이 잡듯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 후 책 두 권을 골랐다. 계산대에 가자 우리 앞에 책벌레 부부가 서 있었다. 캐주얼 복장인 부부는 책을 한 아름씩 안고 있었다. 교사가 아니면 대학교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 같았다. 부러웠다. 자신의 수입의 20프로를 책을 구입하는데 사용한다는 리비아의 가다피가 생각났다. 한때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가다피를 제거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해서 가다피가 있을 만한 곳을 폭격기가 날아와 공격을 했지만 늘 허사였다. 그때마다 가다피는 사막 한가운데에 천막을 친 채 낮에는 독서를 하였고, 밤에는 달과 별을 바라보면서 녹색혁명을 그리곤 했다.

 

람보인 레이건이 독서광인 가다피를 절대 잡을 수 없지.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십대와 이십대, 그리고 삼십대에는 내 수입의 반을 책을 사는데 꼬라박았다. 그 시절이 좋았다. 가장 내 대가리가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언젠가는 이 책들을 없앨 것이다. 그래서 무로 돌아갈 것이다.’ 라고 중얼거렸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나에게는 책이 없다. 버렸다. 시원했다. 책이 있는 한 나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버렸다.

 

자유!

우리 인류의 마지막 파라다이스가 아닌가.

 

 

 

 

청계에 나온 마차. 개스를 내뿜는 버스 대신 저 마차를 타고 다니면 안 될까 

 

 

청계광장. 우리 두 사람은 갔다, 역사의 현장 속으로.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는 성난 시민들. 분명 뿔이 나 있었다. 3개월 전만 해도 저들의 반은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을 것이다. 그들이 하자 투성이인 이명박 후보에게 걸었던 꿈은 하나였다.

 

경제를 살려라!

 

특명이었다. 그는 실물경제를 알고 있고, 그리고 그 현장에서는 신화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국민은 두 눈을 감고, 아파오는 양심을 뒤로한 채 도장을 꾹 눌렀던 것이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의 행보를.

 

그런데 아니었다. 첫 단추부터 국민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몰입영어를 대표하는 ‘오륀지’ 가 그것이었다. 순간적으로 국민을 영어 광풍으로 몰아갔다. 영어를 못하면 인간구실을 못할 뿐 아니라 출세도 할 수 없다, 라고 대못을 박은 첫 삽. 그리고 뒤이어 0교시 수업과 우열반 등등.

 

 

 

 

성난 시민들. 촛불을 밝힌 채 이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뿔이 났다. 전국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지금까지 해온 공교육과 사교육도 힘이 들어 줄을 지경인데, 전인교육은 뒷전이고 오로지 입시위주의 끝없는 경쟁으로 몰고 가려고 하자 그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학생들이 마침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잠 좀 자자!

밥 좀 먹자!

 

불행은 꼬리를 물었다. 미국 쇠고기협상이 그것이다. 점입가경이었다. 갈팡질팡 갈지자를 걷고 있는 실용주의 정부. 해답은 없고 문제만 가득했다. 누가 보아도 성숙한 어른들이 벌인 잔치는 아니었다. 굴욕과 졸속이었다. 국민을 위한 정치, 실용을 내 건 실용주의 정부가 희망과 기대를 주지 않고 절망만 국민의 가슴에 한 아름 선사를 했다.

 

 

 

 

지금까지 가난한 이웃을 위해 40억을 기부한 기부왕이자 젊은 성자인 김장훈. 그가 그날 밤 무대에 올라와 시민들과 하나가 되었다 

 

 

# 꿈 이야기

어젯밤에 또 꿈을 꾸었다. 아니다, 새벽에 꾼 꿈이기 때문에 오늘 아침의 일이다. 꿈이 너무 황당해 내가 웃은 모양이다. 아침밥을 짓기 위해 일어난 옆지기가 ‘왜, 웃어요?’ 라고 물었다. ‘문정동인지 문래동인지에 발령받았다.’ ‘발령을요?’ ‘응, 공익요원.’ 옆지기가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이 나이에 공익이라니? 누가 명찰과 모자를 주면서 화를 내더라.’ ‘왜요?’ ‘어제 그곳에 가야 하는데, 오늘 간다고.’ 옆지기는 계속 웃었다. ‘큰일이네, 길을 잘 모르는데……’  우리 두 사람은 한참 소리를 내어 웃었다. 생각해보니 지난 밤 꿈에 나는 지리를 알 수 없는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었다. 그 연장선상에 아마 그 꿈을 꾼 모양이다. 나는 중얼거렸다.

 

‘환갑이 내일 모렌데, 공익이라니…….’

 

 

 

 

그래도 지구는 돈다. 촛불집회의 현장에도 사랑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청순아, 사랑해! 나도 광식이를 사랑해! 죽을 때까지 

 

 

# 며칠 전 밤의 꿈

그날 밤에도 꿈을 꾸었다. 쇠고기협상 때문에 궁지에 몰려 있는 이명박 정부. 사태를 너무 가볍게 보고 있었다. 왜냐하면 조중동이 사태를 아주 가볍게 취급했기 때문에. 하지만 국민은 그게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촛불집회에 시민들의 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얼마 후 미국 쇠고기 재협상은 깨어지고, 한반도 대운하가 드디어 첫 삽을 뜬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십대는 물론이고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났다. 사태가 일파만파였다. 순식간에 4, 19를 능가하는 인파가 청와대를 에워쌌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정부와 조중동. 하지만 기차는 이미 떠나고 말았다.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정보팀들. 그들이 내린 결로는 ‘항복’ 이었다. 한 달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침내 청와대 안에서 긴급기자회견이 열렸다. 그 자리에 선 이명박 대통령이 초라한 낯빛으로 원고를 읽는다.

 

‘저, 이명박은 오늘 날짜로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국민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엄마와 촛불집회현장에 나온 초등학교 학생. 저 초랑초랑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의 건강을 정부는 지켜주어야 한다 

 

 

분노가 극에 달한 국민. 그 분노가 전파를 타고 온 세계에 타전이 될 그 시간, 청와대 뜰에서 헬기 한 대가 날아오른다. 목적지는 인천국제공항. 잠시 후 헬기에서 점보 747로 옮겨 탄 이명박 대통령. 점보기는 비가 내리고 있는 인천 상공으로 이륙을 한다. 그 시간 미국과 일본에서는 정부 대변인이 긴급기자회견을 한다.

 

‘미합중국은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 일본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갈 곳을 잃어버린 점보 747기.

 

 

 

 

돌아가는 길에 낙지뽁음에 소주 한 잔했다. 고추장 맛이 깊지 않았다. 월남 고추를 썼나, 아니면 멕시코 고추. 이상하게 매웠지만 뒷맛이 깊지 않았다.  

 

 

국민과 정부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정부는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이제 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그리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이 가 있는 곳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를 보아라. 23프로 추락해 있다. 이 수자는 뭘 말하고 있는 것일까? 사태의 본질과 청계천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촛불집회가 가리키고 있는 그곳을 똑바로 바라보아라. 그래도 답이 안 보이나?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우를 범하지 마라.

 

답을 내놓겠다. 정부가 모르니 대신 내가 내놓을 수밖에. 하고 안 하고는 오야 마음이다. 그 전에 하나, 누구든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다만 그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과의 그 끝은 하늘과 땅이다.

 

 

 

 

깊어가고 있는 도심지. 자,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1. 미국 쇠고기협상은 다시 해야 한다.

2. 한반도 대운하는 백지로 돌아가야 한다.

3. 교육정책 역시 백지 상태에서 다시 머리를 맞대고 고뇌를 해야 한다.

4. 한미 간의 FTA협상에서도 우리나라가 지켜야 할 부분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5. 철도와 전기, 가스, 그리고 교육부분과 건강보험 등등.

6. 우리 국민의 기초생활과 관계된 것들은 문을 열면 안 된다.

  

 

뒷이야기-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지금 이 시간에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라. OIE와 SRM를. 다 안다. 정부만 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오히려 정부 머리 위에 앉아 있다. 해서 국민이 원하지 않은 정책은 거두어 들여야 한다. 똥고집으로 밀어붙이면 안 된다. 그리고 이제 우리 국민은 알고 있다. 기업의 CEO와 국가의 CEO의 차이점을. 기업의 CEO는 그야말로 이익창출이다. 이익창출을 내지 못하면 그날로 고려장이다. 피눈물이 없는 곳이 기업이다. 하지만 국가의 CEO는 다르다. 국민의 삶의 질적 가치를 창출시키는 것이 진정한 국가의 CEO의 몫이고 자세다. 경제만이 답일 수는 없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검토를 해보아야 한다. 한미 간의 FTA가 진정 우리나라의 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지를. 2008520도노강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