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더운 머리를 잠시 식히며

오주관 2008. 7. 7. 17:09

   

  

어젯밤 둔치에 나간 우리 두 사람은 속보로 운동을 대신했다. 나는 걷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이고, 옆지기는 걸으면 걸을수록 몸이 피곤해지는 사람이다. 운동 중에 걷는 게 좋다고 텔레비전에서 하도 약을 팔아 마지못해 하고 있다. 그것도 평일에는 안 되고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만 가능하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나는 걸으면 행복한 사람이다. 걸으면 잡념이 없어지고 정신이 맑아져온다. 걸으면 걸을수록 머릿속이 비어진다. 비어지면 몸이 가벼워지고 머릿속도 가벼워진다. 보물창고이면서 버려야 할 것들이 가득한 허섭스레기 창고.

 

서울에서 포항까지

걸어서 천국까지 갈 수 있다면 나는 도전하겠다. 그해 겨울, 나는 배낭에 옷과 세면도구와 약간의 비상약, 그리고 책 세 권을 넣고는 집을 나섰다. 추운 한파 속을 장장 8박 9일 동안 걷고 걸어서 포항에 도착했다. 마지막 깃대를 꽂은 곳은 북부해수욕장. 12월 중순 어느 날 밤이었다. 가장 추울 때 길을 떠난 것이었다.

 

하루에 50킬로를 걸었다. 아침의 여명이 밝아오면 김밥 두 개로 배를 채우고 물 대신 식초를 탄 물을 한 컵 마시고는 길을 나섰다. 앞만 보고 걸었다. 때로는 산천경계를 보면서 걸었다. 가다가 피곤하면 낯선 공중전화박스에 들어가 서울로 전화를 했다. 송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소리는 내 피곤을 씻어주는 바이타민이었다. 행복했다. 그리고는 걸었다. 황우석 박사 사건을 접한 것도 길 위에서였다. 한 사람은 지옥행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천국으로 가고 있었다. 욕망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다한 한 사람은 MBC 피디수첩에 걸려 초상을 치루고 있었다. 욕망을 비우려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또 한 사람은 비록 고달프고 불편하고 추워도 행복해 미칠 지경이었다. 一切가 唯心造이다. 해가 질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걷고 걸으면서 내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비움이었다. 해결할 길 없는 질기고 질긴, 그리고 늘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욕망의 짐을 걸으면서 조금씩 비웠던 것이었다.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는 의문 하나는, 구미에서 만난 낙동강이었다. 분명히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옆을 스쳐 지나갈 때만 해도 내 앞에는 도도한 낙동강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왜관에 도착을 한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낙동강이 떠올랐던 것이다. 내 앞의 그 낙동강은 어디로 사라져버렸을까? 어떻게 낙동강을 건너지 않고 왜관에 와 있을까. 홀렸나? 아니면 혹시 내가 축지법으로 그 강을 건넜나? 포항에 도착해 그 이야기를 하자 후배 찬규가 맞습니다, 하고 지도를 그려가며 설명을 했지만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막걸리 마시기

막걸리에 지치면 매실주, 매실주에 지치면 막걸리. 두 가지를 줄기차게 마시고 있다. 막걸리가 좋아서 마시는 게 아니라, 없기 때문에 마신다. 내가 마시는 막걸리는 서울 막걸리다. 한 병 마실 때도 있고, 두 병 마실 때도 있다. 배가 불러 더는 못 마신다.

 

어젯밤에도 마셨다. 옆지기는 맥주 한 병, 나는 서울 막걸리. 안주는 마트에서 사온 훈제 닭. 맛이 내 맛도 니 맛도 없는 훈제 닭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구우면 된다. 먹을 수 있는 양만큼 고기를 잘게 뜯어서 프라이팬에 넣고 소금을 조금 뿌린 다음 달달달 구우면 그런 대로 먹을 만하다. 튀김 닭이 맛은 있지만 동물성 기름 때문에 가급적이면 피한다.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옛날 고향에서 마시던 막걸리다. 탁배기라고도 하고, 대포라고도 한 막걸리. 요즘 서울 막걸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맛과 질에서. 그때의 탁배기는 껄죽했다. 도수도 높았고. 설탕도 들어 있지 않았다. 큰 사발 그릇으로 한 잔 꿀떡꿀떡 쭈욱 마시고 잔을 놓으면 금방 얼그리 취해온다. 두 잔이면 머릿속이 흔들리고, 세 잔이면 땅이 조금씩 움직인다. 네 잔이면 할 수 없이 땅을 베고 자야 한다. 송도 바닷가 바람을 자장가 삼아 모래언덕에 누워 수도 없이 잤다. 소나무를 흔드는 바람소리, 통통배의 통통통 기관소리, 그리고 바다 위를 날며 끼르륵 끼르륵 갈매기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안의 뜨거운 욕망을 조금씩 크윽 크윽 토해내며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가곤 했다.

 

그때 탁배기의 안주는 주로 미역무침이나 김치, 그리고 나물 무침이 대부분이었다. 안주는 물론 공짜였다. 먹을 만했다. 점방 뒤 그늘이 진 곳에 앉아 홀로 대포를 마시면서 태운 그 담배 맛이 기가 막혔다, 라는 추억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어제의 안주는 훈제 닭을 구운 것. 마시면서 우리 두 사람은 교육이념과 목표에 대해 토론을 하였고, 그리고 무슬림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슬그머니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간 나는 눈을 감았다. 때로는 종교가 둘 사이를 갈라놓기도 한다. 기독교는 영원히 우리를 하나로 만들지 않는다. 우군이 아니면 적군이다. 종교와 시국문제에 포위되어 있는 나는 열이 많은 사람이다. 나라의 중심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외면하자니 내 머리가 아파오고, 비껴가자니 내 양심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 정면 돌파를 하자니 내 가난이 허락을 하지 않고 있고. 떠갈, 잠이나 자자.

 

왜 사람들은 내 안의 하느님을 찾지 않고, 내 밖의 하느님을 찾으려고 저렇게 발광을 할까?

사라지면 그만인 것을……

죄까지 짓고 산 사람들이 내세는 왜 또 그렇게 목말라할까?

 

 

 

 

토요일 저녁

또 나갔다. 디카를 가지고 종각역에 내린 우리 두 사람은 영풍문고에 들어갔다. 영어코너에 가 책 사냥에 나섰다. 옛날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요즘은 오래 있지를 못한다. 인내심과 끈기가 무기인 이명박 정부의 반의 반도 안 된다. 조금만 서 있으면 허리가 아파오고, 좀이 쑤신다. 잠시 후 합의를 본다. 나는 시청으로 옆지기는 책 사냥을 하기로.

 

갔다. 두 패가 싸우고 있었다. 청계광장에는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무리들이 나와 핏대를 올리고 있었다. 내 눈으로 보았을 때 이백여 명. 경찰의 눈으로 보면 이십여 명. 내 눈이 정확하지 싶다. 마이크를 잡은 사나이가 외치고 있었다.

 

“여러분! 미국산 쇠고기를 안심하고 드십시오. 절대 안전합니다.”

“옳소!”

구경하는 패들 가운데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야 임마! 너나 배터지도록 처먹어라!”

 

처먹던 안 먹던 문제의 본질은 잘못된 협상에 있고, 그리고 검역주권을 상실한 이명박 정부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조중동, 그리고 이명박 정부를 음으로 양으로 거들고 있는 해바라기 학자들은 초점을 다른 곳으로 퍼 나르는데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잘못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얼굴에 철판을 깐 채 이명박 정부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는 저 쓰레기보다 못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동아일보의 보도에 우리 국민들이 연일 분노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언제까지 메이저급 신문들이 활개를 칠 수 있을까? 나는 웃는다. 생명이 다해 가고 있다. 인터넷이 실시간으로 온 세계를 점령해나가고 있다. 빛보다 더 빠른 디지털이 세계 곳곳에서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아날로그로 무장한 신문이 디지털과 대결해 보아야 질 것은 뻔한 이치다. 지금 조중동은 스러져가고 있는 자신들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어쩌면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갔다. 습하고 습한 서울시청 앞 광장에 도착을 했다. 한눈에 십만을 넘는 듯한 인파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아이에서 어른까지. 유모차도 보였다. 그들은 비가 내린 보도 위에 신문지를 깐 채 앉아 있었다. 디카를 꺼내 열었다. 화면이 깜깜절벽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뜬 채 눈에 힘을 주고 있던 디카의 눈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혀를 찼다. 악재가 꼬리를 무는구나. 컴퓨터가 덜컥하더니 그 다음날에는 프린터기가 숨을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디카가.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의 시선은 두 가지다. 계속하자 하는 쪽과 이제 그만하자 하는 쪽. 힘이 빠지기는 둘 다 마찬가지다. 바리케이트를 친 채 세월아 네월아 하고 노래 부르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인내심과 끈기로 이 사태를 버티고 있다. 진만 빠져라. 이기는 소 우리 소다. 인내와 끈기 작전으로 버티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그 버티기를 바라보면 정말이지 구역질이 난다.

 

 

 

  

이명박 대통령이 저지른 죄

첫째. 외교가 무엇인지를 모른 죄.

둘째. 협상이 무엇인지를 모른 죄.

셋째.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은데 김칫국부터 먼저 마신 죄.

넷째. 우리 국민을 절망과 분노의 늪으로 빠뜨린 죄.

다섯째.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고 단독으로 국가를 경영한 죄.

 

나는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식으로 정책을 펴나간다면 언제든지 촛불은 다시 타오를 것이다. 설령 운이 좋아 임기를 채운다 하더라도 그 후가 문제다. 임기를 마침과 동시에 그가 가야할 곳은 법정이라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한 입을 가지고 두 말을 서슴지 않았던 각료들과 조중동, 그리고 해바라기 교수들과 기타 등등의 무리들도 반드시 그 대가를 져야 한다.

 

눈앞을 보는 사람과 먼 미래를 보는 사람의 사고는 하늘과 땅이다.

 

대잎술과 커피를 마시며 

어제 누님이 주고 간 강화도 특산품이라고 하는 대잎소리라는 술을 한잔 마신다. 12도짜리 대잎소리, 내 입에는 맞지 않는다. 하지만 이 술이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맞고 안 맞고의 기준은 순전히 오야 마음이다.

 

내가 맛있다고 맛이 없는 사람을 타박할 수는 없다. 입맛이 다 다르기 때문에. 타인도 마찬가지다. 싫은 것은 싫은 것이고,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백척간두 그 끝에 와 있을 때는 다르다. 중지를 모아야 하고, 그리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날이면 날마다 시청 앞 광장이나 청계광장에 나와 촛불 하나를 들고 밤을 밝힌 그들이 있기 때문에 이 땅은 오늘도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삶은 살아져야 삶이고,

인간은 움직여야 인간이다.

 

 

 

 

나는 일 년 열두 달 가야 쇠고기를 한두 번 먹을까 말까 이다. 육식보다 채식을 좋아한다. 해서 우유도 즐겨 먹지 않는다. 누가 사주면 못 이긴 척 마신다. 한번 곰곰 생각해 보자. 소가 어떻게 키워지고 있고, 그리고 도축장에서 어떻게 픽 쓰러져 나가는지를. 기업은 이익을 남겨야 한다. 축산업도 마찬가지다. 한두 마리 키워 이랴! 이랴! 하고 농사에 이용을 하는 그런 소가 아닌, 이익을 위해 대단위로 키우고 있는 축산현장을 한번 그려보자. 쇠고기의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여러 동물의 내장을 먹이고, 우유를 많이 생산해 내기 위해 젖통을 인위적으로 키우고, 뿐만 아니라 온갖 항생제와 촉진제와 비타민이 들어간 사료를 먹이는 그 쇠고기가 과연 우리 인간에게 유용한 먹거리일까.

 

 

우리 아이들이 왜 까닭 없이 난폭해져갈까? 순둥이 같은 우리 아이들이 왜 난폭한 아이들로 변해가고 있을까? 혹시 인간의 젖 대신 소젖을 먹여서 그러지 않을까, 하고 한번쯤 생각해 본 어머니가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예쁜 자신의 젖통을 유지하기 하기 위해 소젖을 먹인 이 땅의 많은 어머니들, 양미간을 좁히고 사고를 해보아야 할 시점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분명한 사실은, 인간은 인간의 젖을 먹어야 한다.

소는 소젖을 먹어야 한다.

그리고 소는 풀을 뜯어 먹고 자라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건강과 후손들의 건강을 위해 욕심과 탐심을 버려야 한다.

소탐은 반드시 대실을 부른다.

 

촛불집회를 바라보면서

졌다고 진 것이 아니고, 이겼다고 이긴 것이 아니다. 불씨는 아직도 살아 있다. 문제는 우리의 국민들의 자존심과 우리 국민들의 권리를 되찾는데 있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자는 길게 갈 수 있다. 대나무의 매듭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것은 상처다. 국민을 위할 줄 아는 겸손한 마음과 국민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위정자가 되어야 한다. 5년이라는 세월, 결코 길지 않다.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지는 석양이다.

 

언론은 이쪽과 저쪽 어느 편에도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언론은 정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변하는 것이다.

촛불은 희망이요 미래요, 그리고 자유다.

 

뒷이야기-국가의 이익은 국민의 이익이다. 자신의 이익에다 초점을 맞추면 국민의 이익은 달아나버릴 것이다. 국가와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불철주야 촛불을 들고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에 나온 시민들에게 나는 날이면 날마다 머리를 숙인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한국의 미래는 밝고 맑을 것이다. 200877도노강카페에서.

'사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막걸리를 마시고   (0) 2008.08.13
더운 머리를 잠시 식히며-2  (0) 2008.07.15
내가 교육과학부장관이라면  (0) 2008.06.28
6, 10 촛불집회  (0) 2008.06.11
내가 서울시장이라면  (0) 2008.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