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막걸리를 마시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막걸리 한 병이 하루의 끝이자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기도 하다. 오늘밤도 예외는 아니었다. 6킬로미터를 속보로 갔다 온 나는 땀범벅인 몸의 열기를 찬물로 식혔다. 연일 불볕더위다. 35도 가까운 열기를 식히는 방법은 운동과 샤워뿐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 만나는 막걸리.
지난 토요일에 오른 백운대. 3년 전, 고향후배들과 오른 백운대. 오를 때는 몰랐는데 내려오는데 오른쪽 다리의 관절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10년 간 달리기를 했었고, 그리고 평생을 걸었었다. 걸으면 편안했다. 내 안의 열기를 식히는 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 결과, 퇴행성관절염이 덮친 것이었다. 고장이 난 내 다리를 진단한 의사는 말했다.
“이제부터 달리기를 하면 안 됩니다.”
“산행도 안 됩니다.”
할 수 있는 운동은 수영과 자전거 타기와 걷기뿐이었다. 그래서 저녁만 되면 나는 둔치에 나가 남으로 남으로 내빼곤 한다. 그래야만 내 대가리 속의 불을 다스릴 수 있다. 내 대가리 속에는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용암이 스물 네 시간 불타고 있다. 식혀 주어야 한다. 식혀 주지 않으면 내 몸은 금방 타오를 것이다. 한 줌 재로.
나는 생각한다. 이름을 함부로 지으면 안 된다. 이름 따라 인생이 변하는 사람이 있다. 해서 이름은 부르기 편하고 쓰기 쉬운 이름을 가져야 한다. 역사성을 띤 개성이 강한 이름을 가지고 출발을 하면 그 끝은 두 가지다.
일어나지 않으면, 쓰러진다.
그날 토요일은 아침부터 푹푹 쪘다. 오늘도 서울지방은 35도라고 떠벌리고 있었다. 피난 가자. 갑시다. 에어컨과 선풍기의 차이는 대단하다. 삼각산으로 가자. 가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책이나 보다 오자. 그래서 마을버스를 타고 우이동 계곡으로 가고 있는데 등산객들이 배낭을 멘 채 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평소에 옆지기는 백운대를 한번 가 보았으면 하고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다. 갈래, 하고 물으니 좋다고 했다.
오르는데 3시간, 내려오는데 3시간. 합이 6시간이었다. 내 다리는 다행히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천식을 앓고 있는 옆지기 역시 큰 무리는 없었다. 백운대에서 맛 본 산바람. 바위는 뜨거운데 불어오는 바람은 하! 너무 시원했다. 이 맛으로 산행을 하나? 정말 시원했다. 하마터면 너무 시원해 입이 돌아갈 뻔했다.
생략하고. 조금 전 옆지기와 오면서 나는 가게에 가 막걸리를 한 병 샀다. 집에 온 나는 막걸리를 냉동실에 잠시 넣는다. 10분 정도 넣었다 꺼내 마시면 온몸에 고드름이 돋는다. 그 맛으로 마신다. 마시면서 텔레비전을 본다. MBC 엄기영 사장이 사과방송을 하고 있었다. 결국 무릎을 꿇었다. 각본 대로 가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KBS 전 사장이었던 정연주 사장이 자택에서 검찰에서 나온 수사관들에게 체포되었다. 한 나라의 공영방송국 사장을 연행해가는 희한한 나라, 대한민국. 옆지기가 혀를 찬다. 나는 빈 잔에 막걸리를 따라 마신다. 올라오던 뜨거운 열기가 잠시 밑으로 밀려 내려간다.
몇 달 전, 나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정연주 사장을 비판했다. 대통령이 바뀌었으면 사퇴를 해야지. 같은 경주 출신이어도 유시민과 정연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라고 비판을 했었다. 유시민 씨가 민주당을 나온 것은 색깔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지향하는 정책이 달랐기 때문에 말을 바꾸어 탄 것이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내 생각과 정연주 사장의 생각이 엇박자로 나가고 있었다. 그 역시 강단이 있는 언론인이었다. 조중동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장본인. 시대의 중심에 서서 독재와 싸운 그. 나는 잠시 내 생각을 접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흐르면서 대결구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라 안에서 '신 용비어천가' 가 쓰여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새 정부가 지금까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단초가 언론 때문이었다고 생각을 한 데서부터 길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방송국에서. 해서 정부는 칼을 빼 든 것이었다. 그리고 칼을 빼 든 그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신 용비어천가’ 를 짓기 시작했다. 이분법적으로 무장이 된 그들에게는 적이 아니면 우군이었다. 그리고 세상의 20프로는 그들에게 열렬히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조중동.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고 있는 야심가들. 해바라기성 학자들. 권력욕에 불타고 있는 주변부의 정치꾼들과 검찰과 경찰. 그리고 한국의 대형교회의 목사들과 신도들. 이들이 이명박 정부를 떠받치고 있는 열렬신도들인 것이다. 이 20프로가 가지고 있는 힘은 막강하다.
20이 80을 이기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시야가 좁으면 사고라도 커야 한다. 어쨌든 이 정부는 갈지자걸음에서 이제는 과거 독재의 길을 향해 착실하게 걸어가고 있다.
과연 20이 80를 이길 수 있을까?
종말 그 끝으로 부지런히 걸어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
뒷이야기- 성질 급한 사람이 돈을 낸다고 했다. 목이 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했다. 촛불을 든 그들은 누구인가. 성격이 급한 자들이고, 그리고 목이 마른 자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죄는 하나뿐이다. 나라와 국민을 사랑한 그 죄. 침묵을 하고 있는 다수를 위해 그들이 대신 촛불을 든 죄뿐이다.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앎은 무엇인가? 지식은 무엇인가? 그리고 신문과 방송의 역할은 무엇인가? 앎이 침묵을 하면 시대는 암흑에 휩싸인다. 지식이 침묵을 하면 역사는 퇴보를 한다. 신문과 방송은 어쨌든 감시와 비판에 그 목적이 있다. 2008813도노강카페에서.
오늘 따라 가슴이 거시기 껄쩍지근하다. 아무래도 한 곡조 뽑아야 가라앉을 것 같다.
정호승 시 백창우 작곡 김광석 노래- 부치지 않은 편지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꽆피우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자아악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마알고 ~그대 잘 가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자아악은 새여~
뒤돌아 보~지 마알고~ 그대 잘 가라~
그대~ 잘 가라~
그대~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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