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두
화두 하나를 가지고 집을 나온 나는 동대문운동장에서 헤어졌다. 설악도 보고 바다도 보고 오세요. 헤어질 때 옆지기가 말했다. 설악과 바다는 내 화두를 푸는데 일정 부분 기여를 할 것이다.
중추절, 우리 두 사람은 강변역에서 줄 땀을 흘렸다. 포항의 막내 누이가 보낸 회를 찾으러 갔는데 도착해야 할 버스는 이제 겨우 청주를 벗어나고 있다고 기사가 전하는 것이었다. 건너편 테크노마트 9층의 하늘공원에 올라가 잠시 쉬고 있다 후퇴다 하며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그리고 4시간 늦은 밤 8시에 갔더니 이제 막 버스가 도착했다며 기사분이 전화를 주었다.
강변에 도착해 표를 끊은 나는 곧바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안전벨트를 매고 몸을 눕히는데 벌써 구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인제까지 자자. 홍천까지는 바깥 풍경이 눈에 익기 때문에 일단 모자라는 잠부터 보충을 하자. 나는 몸을 뒤로 눕혔다.
내가 가지고 떠난 화두. T 프로젝트라고 하자. 그 프로젝트는 아와 타를 뛰어넘는다. 그 프로젝트는 남과 북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는 세계의 담을 허물고 경계를 허물어 세계인들을 하나로 아우른다. 상징성과 현실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T 프로젝트는 남한의 경제가 살아나고, 북한의 경제가 살아난다.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중심점이 될 수 있다.
T 프로젝트는 그러나 99, 7 프로는 고개를 젓는, 이해가 안 되는 아이템이다.
T 프로젝트의 출발지점은 도노강이었다. 지난 몇 달 내가 끌어안고 싸운 화두는 두 개였다. 그 중에 하나가 T 프로젝트였다.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면 나는 도노강을 항상 바라보곤 했다. 푸드득 푸드득 힘차게 도노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잉어 떼들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꾼 그 꿈을 현실로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그 끝을 위해, 그러니까 마침표를 찍기 위해 나는 어제 떠난 것이다.
# 닦은 만큼 세상은 보인다.
구하라
그럼 얻을 것이다.
진리는 투명하다. 마치 유리알 같다. 그 유리를 통해 나를 보고 타인을 보고, 그리고 세계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유리를 앞에 놓고도 당달봉사가 된다. 내 앞의 나를 보지 못한다. 내 앞의 나를 보지 못하는데 타인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못 본다. 뿐만 아니라 세계도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앎과 무지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나는 이 세상을 그릴 수 있는데, 이 세상은 나를 그리지 못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비극이다.
그래서 때론 행복하다.
# 우리 인간이 잡아야 할 가치
어젯밤 속초의 불가마에서 또 보았다. 혹세무민을 하며 일확천금을 끌어 모으고 있는 어느 가짜 사이비 스님을 피디수첩에서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속고 속이고, 끝이 없다.
간단하다. 무릇 종교는 우리 인간을 살려야 한다. 우리 인간을 죽이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혹세무민하는 종교는 일고의 가치가 없는 가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는 그 가짜에 속고 있다. 왜 끝없이 되풀이 될까. 우리가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지는 죄인 것이다.
참은 무색무취다.
거짓은 달콤하고 그리고 아름답다.
신의 이름을 빌려서 장사를 하는 종교는 무조건 가짜다. 예수를 보고 부처를 보아라. 그들은 절대 우리 인간들에게 내 배를 채우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예수와 부처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더불어 삶이었다. 한 번도 그들은 홀로 삶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내가 건강하게 사는 길은 무엇이며 어떤 길일까?
내가 타인이 되고 타인이 내가 되는 그 길이다.
우리 모두가 잡아야 할 가치는 우리 모두가 더불어 사는 그 삶이다.
# 설악과 속초에서 푼 화두
T 프로젝트는 한국의 경제를 살리는 프로젝트다. T 프로젝트는 북한의 경제를 살리는 프로젝트다. 그리고 한국과 북한을 관광천국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서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와 종교, 그리고 이념을 뛰어넘어 이 세상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러줄 유산 중에 최고의 유산은 무엇일까? 재산일까? 아니다. 아무리 견고한 재산도 3대를 가지 못한다고 한다. 이념일까? 아닐 것이다. 이념은 끝내 화합이 아닌 피비린내 나는 종말만을 안겨 주고 있다. 종교일까? 아닐 것이다. 종교도 세계인들을 화합시키지 못하고 분열과 피를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후세에 물러줄 유산 중에 으뜸은 무엇일까?
꿈과 희망
도전과 열정
그리고 자유와 평화
어제 오후, 작열하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권금성 정상에서 내 화두의 마지막은 꿈과 희망, 도전과 열정, 그리고 자유와 평화였다. 21세기 우리 인류가 다음 세대에게 물러줄 유산은 물질이 아닌 정신과 마음이어야 한다. 해 저문 설악을 나와 청호마을에 들어간 나는 모래사장에 앉아 밤바다를 바라보며 오랫동안 생각에 잠긴 것도 꿈과 희망, 도전과 열정, 그리고 자유와 평화였다.
뒷이야기- 속초에서 그 좋아하는 술을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 눈을 씻고 보아도 막걸리가 없었다. 가짜 막걸리만 있었다. 해서 아바이순대 대신 함흥냉면을 시켰다. 휴게소에서 먹은 점심은 잔치국수. 저녁에는 함흥냉면. 아바이순대를 안주로 소주 한 병 비우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을 텐데……. 2프로가 부족한 상태로 도선을 탔다. 잠시 후 도선에서 내려 앞의 식당을 보자 사내들이 지지고 볶으며 술잔을 비우고 있었다. 바다 장어였다. 초고추장을 바른 장어가 불판 위에서 몸을 뒤적이며 지글지글 타고 있었다. 저들 속에 나를 아는 이 없나? 그래서 어이, 오 씨! 하고 안 부르나? 헛소리하지 마라. 오 씨를 부르는 소리는 꿈속에서도 없었다. 대신 모기들이 달라붙어 내 뜨거운 피를 사정없이 빠는 것이었다. 거의 뜬 눈으로 그들과 싸우다 시계바늘이 5시 30분을 가리킬 때 불가마를 나왔다. 밖은 캄캄했다. 희부염한 새벽을 헤치듯 나는 부둣가 여기저기를 배회했다. 2008917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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