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겨울 바다.
포항 북부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바다.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 경상북도 영일군 오천면 용덕동 4반.
그때는 대부분 초가집이었다.
우리 옆집의 동조네 집.
마이다스 손을 가진 동조.
연이면 연, 스케이트면 스케이트, 팽이면 팽이를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아침에 방패연을 띄워 놓고 학교에 가면 돌아올 때까지 방패연이 하늘 한가운데 쥐죽은 듯 떠 있곤 했다.
옛날 우리 집.
마당이 있었고, 텃밭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헛간이 하나 있었고.
내가 가장 좋아한 곳은 헛간이었다.
그 속에 만들어 놓은 비밀 아지트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나는 외계와 소통을 시도하곤 했다.
조용한 날 포항역에서 기차 떠나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아, 저 기차는 서울로 떠나는 기차구나.
나도 언제 한번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보아야 할 텐데.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서울을 헛간 속에서 자주자주 그리곤 했다.
종렬이네 집.
호랑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면 종렬이 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눈이 부리부리했고, 머리가 컸었고, 목소리가 엄청 컸었다.
겨울방학이면 종렬이네 보리밭에서 새끼를 묶은 축구공을 가지고 땀깨나 흘렸다.
해가 어두워 질 때까지 공 차기에 미쳐 있으면 장에서 돌아온 종렬이 아버지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오곤 했다.
'에이, 이놈들!'
아이쿠!
콧물과 방귀를 찔찔 흘리고 뀌며 양 사방으로
흔비백산 도망가기에 바빴다.
이모님 집.
큰채와 사랑채가 있었고, 그리고 우물과 디딜방앗간이 있었다.
대문 입구에서 본채까지 가려면 오전 내내 걸었다고 기억하고 있을 만큼 큰 집이었다.
성인이 되어 가 보았더니 그만그만한 집이었다.
디딜방앗간에서 고추며 벼며 보리를 빻아 먹곤 했다.
그 안에서 진수 형님과 계란밥을 해먹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 집이 아마 성환이네 집일 것이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까져 있는 귀두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한몸에 받은 친구.
뭔가 근사해 보였다.
어느 날, 물었다.
그랬더니 왈 개미가 물어서 껍데기가 벗겨졌다는 것이었다.
개미 생포작전에 들어갔다.
잡아서 귀두에 대고 이놈아, 빨리 물어라!
라고 사정을 하였지만 개미는 한사코 내 귀두를 물지 않았다.
실패.
지금은 전부 남 모르는 사람들이 점령해 살고 있다.
기억이 새로운 것은, 가을만 되면 볏집으로 초가지붕을 덮었는데, 성환이네 집은 지붕 위에 방부제를 뿌리곤 했다.
그때의 집은 전부 초가지붕들이었다.
구룡포 사라 끝.
그날 비가 내렸다.
저 멀리 뗏마 한 척이 보인다.
아마 그물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구룡포 내항.
한 때 동해안에서 알아주는 항이었다.
소득 랭킹 1위, 욕 잘하기로 1위, 싸움 잘 하기로 1위.
선창 갈매기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의 조폭과는 그 질이 달랐다.
오로지 주먹 하나로 온 읍내를 돌아다니며 어깨를 펴곤 했다.
그해 가을, 유정다방 골목에서 벌어진 건달들의 싸움.
3대 1로 붙었는데, 1이 3을 넉아웃시키는데 하! 그 기술이 좋았다.
어라차차!
하면 하나가 나가 떨어졌고, 에이! 얍! 하면 또 하나가 떨어져 나가곤 했다.
남은 하나는 지레 겁을 먹은 채 기가 꺽여 곤죽이 되도록 얻어터졌는데, 치고 때리는 그 기술이 너무 출중해
저 형님에게 한수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사정을 해 볼까 하다 정신을 차려 다시 내 길로 갔다.
그때 그 사나이의
머리는 스포츠형이었다.
짧은 스포츠형.
아마 해병대를 갔다온 해병인이었을 것이다.
이름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목재 똥굴동네에 살았던 형님으로 기억하고 있다.
북부해수욕장.
지난 일요일 오후의 바다.
차 시간이 한 시간 가량 남아 있어 택시를 타고 달려온 곳.
비가 조금씩 뿌렸고, 날씨도 제법 추웠다.
이곳 바다에서 우리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정도를 이야기 했고,
양심을 이야기 했고,
걸레를 이야기 했을 것이다.
걸레를 빤다고 안 걸레가 될까?
역시 걸레다.
따지고 보면 중심이나 변방이나 양심이 썩기는 마찬가지다.
썩은 양심 앞에 우리 모두는 무릎을 꿇고 있다.
썩은 양심이 양심을 외면한 채 도덕을 말하곤 한다.
사람들은 썩은 양심 앞에 늘 머리를 돌리곤 한다.
문제다.
언제 용기가 썩은 양심을 물리칠 수 있을까.
머리가 아팠다.
아니 지쳐 있었다.
무엇이 천재일까?
집중력이다.
대가리가 뛰어나 교과서를 달달 통째 외우는 게 천재가 아니다.
무서운 집중력으로 어떤 한 결과물을 내 놓는 것.
장장 6개월 동안 나는 대상과 싸웠다.
끝!
넉다운.
부안으로 갈까?
가서 머리를 세탁하고 오자.
해서 고속버스 터미날로 갔다.
그때 소주가 생각났고, 그 삼겹살이 떠올랐다.
포항에 가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고 올래?
그럴래요.
옆지기는 혼쾌히 동의를 했다.
그래, 가자.
그렇게 해서 우리 두 사람은 기수를 서에서 동으로 돌려 포항으로 내려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날 밤, 삼겹살과 과메기를 안주로 소주 세 병을 비웠다.
만취.
나는 포항 바다에 다 토하고 돌아가리라 생각했다.
지난 6개월 동안 내 정신과 내 몸을 넉다운 시킨 그것들을 전부 바다에 토해버리고 가리라.
지혜로운 사람이다.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나에게 늘 상상력을 터치해 주곤 한다.
나에게 늘 일어설 수 있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깊은 잠 속에 빠져 있는 나를 깨운 사람이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생각했다.
옆지기를 발판 삼아 비상을 하리라.
나에게 있어 옆지기는 뜀틀이다.
내가 꺼내 놓은 프로젝트.
OJOSAN PROJECT.
CFT PROJECT.
하나는 6개월 걸렸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3년 걸릴 것이다.
정신에 기합을 넣어 매달렸다.
한 달, 두 달, 세 달, 그리고 여섯 달.
넉다운.
가자, 그곳에 가서 한번 취하자.
그곳 바다에 가 내 안의 오물을 깡그리 토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내려간 포항.
당신, 멋진 사나이다.
변방의 아웃사이더.
당신은 늘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런 어느 해, 잠에 빠져 세월을 다스리고 있던 당신이 일어나 앉을 때, 나는 아, 했다.
당신은 분명 위풍당당하게 일어설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아마 당신은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있지 않을까.
혼을 태운 사나이.
당신의 전부를 태운 사나이.
기대가 된다.
세상을 보라.
속고 속이고 정신들이 없다.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내동댕이치고 있고,
진실을 이야기하면서 가짜를 붙잡고 있다.
정의도,
진리도,
정도도,
진실도,
어둠의 삽에 의해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아니, 묻는다.
가장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일까?
나의 삶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삶이어야 하나?
뒷이야기- 서울에 온 나는 막내가 준 과메기로 소주 한 병을 비우면서 포항 여행을 마감했다. 이제 다시 몸을 추스리면 다음 단계인 CFT PROJECT에 목을 맬 것이다. 그 포로젝트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나는 살아 있어야 한다. 지금 당장 내가 죽으면 웃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진실은 이긴다. 소탐은 대실이고. 사람 앞에 당당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루를 살더라도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내 삶이 거짓이 아닌 참이어야 한다. 그래야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웃사이더는 외롭다. 하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내 길을 뚜벅이처럼 뚜벅뚜벅 걸어 갈 것이다. 옆지기만 내 옆에 있으면 된다. 20081222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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