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집안 청소를 마치고 나니 오후 1시였다. 아침을 늦게 먹은 후라 배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점심 생각은 잠시 잊은 채 멍하니 앉아 있는데 옆지기가 지나가는 말로 중얼거렸다.
단풍이 지고 있네.
지고 있제.
방 안에 있자니 조금 억울하다는 느낌이 드네요.
그래? 그렇다면 떠날까.
어디로요?
단풍이 있는 곳으로.
컴퓨터를 켰다. 안동도 찾고 청송도 찾았다. 좀 멀었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가기에 좀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동에서 조금만 더 가면 내 고향이 아닌가. 생각을 접고 다시 원점에서 서성이다 그래, 속초에 가자. 옆지기가 그래요, 했다. 속초는 OJOSAN PROJECT와 관계가 있는 산이다.
강변터미널
미시령이 아닌 한계령을 넘어 가기로 했지만 막상 떠나는 버스는 미시령이었다. 별수 없이 한계령을 뒤로 하고 미시령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한계령은 양희은 씨의 노래로 대신하자.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미시령 터널을 뚫은 것은 한계령을 단숨에 건너가자 라는 착상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한다. 산천경계를 두루두루 감상하지 않고 떠나는 길 여행은 인생에 별 의미가 없다. 두루두루 감상을 하면서 황소걸음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빨리 가보아야 저승밖에 더 기다리고 있을까.
미시령을 넘어갈 즈음 설악산을 바라보니 새까만 구름이 가득 몰려와 있었다. 대청봉에는 눈이 내리고 있겠구나. 이왕이면 속초에도 눈이 내려라. 첫눈을 구경하게. 하지만 미시령 터널을 빠져 나오자 늦가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잘못하면 설악산에서 얼어 죽겠구나. 집을 떠날 때 옆지기가 그랬다. 위에 옷 하나 더 입어야 하지 않을까요. 괜찮다. 두꺼운 도꾸리 하나만 걸친 나는 오기를 부렸다. 오기가 밥 먹여주나? 맞다, 오기가 밥은커녕 추위를 막아주지 않는다. 입고 올 걸. 후회가 출렁출렁 파도를 쳤다.
속초 시외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어둑어둑 어둠이 깔려 있었다. 어디로 가나? 어디 가긴, 밥 먹으러 가야지. 버스를 타면 한 사람 앞에 천원. 천원 곱하기 2는 이천 원. 그렇다면 택시를 타자. 중앙시장 앞에서 내렸다. 시장에 가면 먹자골목이 있다. 며칠 전부터 삼겹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있었다. 회는 아니었다. 줄을 선 채 사람들로 장사진을 친 선창가의 생선구이 집도 아니었다. 중앙시장에서 우산부터 하나 샀다. 나는 괜찮은데 옆지기는 서울을 떠날 때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다. 오천 원을 주고 우산을 하나 샀는데 한눈에 중국산으로 보였다. 얼마나 갈까? 메이디 인 차이나는 몰매를 맞아야 한다. 오직 돈밖에 모르는 천민들. 천민들이 돈맛을 알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돈 하나뿐이다. 중국이 지금 그렇다.
하지만 중국이 진실로 무서운 것은, 언제까지 엉터리로 남아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국이 언제인가 눈을 뜨면 세계는 중국의 품안에 안겨 있을 것이다.
중앙시장 지하로 들어갔다. 회 값이나 알아보자. 광어 한 마리를 채로 뜨더니 4만 원이라고 했다. 양식은 1만 6천 원. 자연산 4만 원짜리는 매운탕이 되지만 양식은 안 된다고 했다. 나왔다. 대포항보다 비쌌다. 머리가 찍찍하네. 대포항보다 비싸면 안 오지. 그곳보다 싸야 오지.
지하를 나오자 다시 삼겹살이 떠올랐다. 삼겹살을 이야기하자, 이곳 속초까지 와서 삼겹살이에요? 라고 했다. 듣고 보니 그랬다. 바닷가에 와서 삼겹살을 찾는 사람의 뇌구조는 어떻게 생겨 먹었을까. 전두엽이 고장이 나 있을까? 아니면 후두엽일까? 그렇다면 이제는 한 집뿐이다. 선창가 그 생선구이집. 가자. 가서 확인을 하자. 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지. 갔다.
선창가 그 집에 가자 사람들이 오골오골 모여 앉아 열심히 생선뼈를 발라 먹고 있었다. 나는 비가 내리고 있는 창문 너머로 석쇠에 누워 있는 생선들을 바라보았다. 내가 누구인가. 바닷가 출신이 아닌가. 오로지 생선만 먹고 자란 사람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보면 안다. 싱싱한지 파치인지를. 파치였다. 그런데 내가 바라보고 있는 그 생선들을 젓가락으로 발라 먹으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사내 하나가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맛이 기똥찹니다.
맛이 왔다입니다.
맛이 죽입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니었다. 당신이 그렇게 지랄을 해도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는 오야 마음이다. 솔직히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좋은 고기가 아니었다. 싱싱하지도 않았다. 이 집도 귀신이 어루만지고 있구나. 그런 집이 있다. 그런 집에는 출입을 하는 사람들 마음까지 귀신이 쥐고 있어서 구름처럼 모인다. 그래서 거부는 하늘이 내는 것이다.
어쨌든 귀신이 돌보아 주고 있는 집이 있다.
문제는 옆지기다. 옆지기는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생선은 말도 못하게 좋아한다. 그래서 회를 먹을 때는 늘 즐겁다. 더 먹을 수 있어서. 그 대신 쇠고기나 돼지고기는 내가 양보한다. 회는 참으로 양보가 잘 안 되는 먹거리다. 나는 회를 너무 좋아한다. 조악한 음식과 술 담배로 내 몸이 어느 정도 망가져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어릴 때 내가 즐겨 먹었던 그 먹거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즐겨 먹은 음식들은
시래기, 마늘, 양파, 꽁치, 고등어, 고래 고기, 문어, 미역, 매조, 콩, 덩게떡, 진저리, 멸치, 보리밥, 펄때죽, 산나물, 깔도박, 쥐치, 상어, 곱등새지, 배추, 상추, 오징어, 그리고 각종 해산물 등등.
나는 생각한다. 살아오면서 암이 여러 번 찾아왔을 것이다. 찾아왔을 때마다 그들을 물리친 것은 그 옛날 몸서리를 치면서 먹은 먹거리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어릴 때 먹었던 먹거리에 고마움과 감사를 표한다. 없이 살았지만 먹거리 하나만큼은 최상급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때 불고기에 미쳐 지내고 삼겹살에 목숨을 걸었던 친구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암으로 골로 갔다. 정말이지 밥을 먹을 때도 쇠고기였고, 술을 마실 때도 지글지글 삼겹살이었다. 망치나 전기충격기에 존재를 눕힐 때, 소나 돼지들이 그냥 꼽다시 미련 없이 저 세상으로 갔을까? 아니다. 그들이 망치나 전기충격기에 맞아 존재를 눕힐 때, 그들의 분노와 한은 그리고 자신들의 몸속에 고스란히 들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지글지글 불에 탈 때 흰 연기로 화해 사람들의 입 안으로 육신과 함께 들어갔을 것이다.
입이 찢어져라 아구아구 처먹을 때 알아보았다.
앞에서 생선구이 집은 귀신이 돌보아주고 있다고 했다. 그 귀신이 끝내 우리 두 사람을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창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무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냥 쳐다보았다. 앉았다. 잠시 후 일하는 여자가 물수건을 두 장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당연히 생선구이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서울 같으면 사장이 인사를 한번, 종업원이 또 인사를 했을 것이다. 일인당 1만 원이면 두 사람이면 이일은 이 2만 원이 아닌가. 이 어려운 경제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요즘 2만 원이 적은 돈인가. 아니다. 큰돈이다. 서울 같으면 문을 열고 나올 때까지 절을 네 번 정도는 받았을 것이다.
결론은, 정말 맛대가리가 없었다.
첫째, 성의가 없었다.
둘째, 생선이 싱싱하지 않았다.
셋째, 생선들이 파치였다.
넷째, 맛이 없는 값싼 생선들이었다.
다섯째, 밑반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집에서 가장 맛이 있었던 음식은 미역무침이었다. 고기 중에는 양미리와 도루묵이 조금 싱싱했고, 나머지는 파치였다. 정말이지 별 다섯 개를 가지고 평가를 한다면 나는 기꺼이 별 두 개를 주고 싶다.
여러분요, 앞으로 식당을 찾을 때는 간판부터 한번 쳐다보십시오. 만약 간판에 크다란 글씨로 아무꺼시 방송국에서 다녀갔음 이라는 사진이 붙어 있으면 무조건 돌아서십시오. 그 집은 십중칠팔은 가짜입니다. 단, 케이비에스는 빼고. 왜냐하면 케이비에스 아침마당은 내가 출연을 했기 때문에. 하~하하! 이상 신바람 박사 황수관이었습니다. 하~하~하~ 하!
찜질방을 찾아가면서 우산을 펼쳤는데 어라, 우산이 잘 펴지지 않았다. 힘을 크게 주지 않았는데 우산을 꾹 누르는 부분이 덜렁 빠져버렸다. 허허 웃었다. 메이디 인 차이나의 위력이 금방 나타났다. 다시 펴는데 이번에는 목 부분의 받침대가 덜렁거렸다. 오천 원을 물로 알고 있는 메이디 인 차이나. 유대인과 중국인들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나날이 닮아가고 있는 메이디 인 코리아도 경계를 해야 한다.
속초에서 바라본 속초의 문제점
속초는 관광도시다. 속초는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다. 속초는 국립공원 설악산이 있는 도시다. 설악산은 우리 한국을 대표하는 비경과 많은 설화를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산이다. 설악산을 찾는 사람들은 내국인만이 아니다.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산 중에 명산이다. 그렇다면 속초 시민들은 이런 자부심을 가지고 솔선수범 친절해야 한다. 정말이다. 특히 식당을 찾은 손님들에게 주인과 종업원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친절하게 맞아야 한다. 그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인가. 속초에 와서 기꺼이 돈을 쓰고 가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속초 사람들은 투박하다. 친절을 모르는 갇혀 있는 사람들이다. 택시를 타도, 버스를 타도, 심지어 음식점에 들어가도 인사가 없다. 돈을 주는데도 입을 닫고 있다.
그날 밤 중앙시장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찜질방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좀처럼 택시가 오지 않았다. 25여 미터 전방에서 번번이 택시가 그쪽의 손님을 태우고 우리 앞으로 달려갔다. 30여 분이 흘러갔다. 속초는 택시가 잘 되는 모양이다. 옆지기가 그러게요 했다. 30분 후 빈 택시 하나가 왔다. 탔다. 목적지를 말하고 기사님, 속초가 택시가 잘 되는 모양이지요? 라고 하자 기사가 대뜸 아저씨가 해보시오! 라고 했다. 우리 두 사람의 입이 잠시 얼어붙었다. 이렇게 투박할 수가 있나. 이렇게 멋대가리가 없을 수가. 하! 택시를 타고 내 몸이 얼어붙은 적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바이 동네와 가까워서 그러나?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속초다.
속초시장님에게 부탁드립니다. 물론 시정을 돌보자면 첫째도 둘째도 예산일 것입니다. 전국의 지방재정이 열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나 속초는 공업지역이 아닙니다. 순전히 바다와 관광수입이 시 수입의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루 빨리 고쳐야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첫째 속초시민들의 친절입니다. 속초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광객들은 설악산을 찾고, 그리고 속초 시내를 찾습니다. 그들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둘째, 설악산이 어떤 산입니까? 국립공원이 아닙니까? 그런데 몇 십 년 전과 지금도 변하지 않은 곳이 도로입니다. 내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이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게 설악산 입구부터 설악산까지 도로를 4차선으로 넓혀주십시오. 그리고 인도와 자전거 도로도 내주십시오. 속초시가 가장 먼저 고쳐야 할 부분입니다. 인프라가 사통팔달 잘 발달되어 있어야 속초시 관광이 살아납니다.
그날 아침, 설악을 다시 찾은 우리 두 사람은 식당에 들어가 배를 채웠다. 황태국으로 배를 채우고 밖을 나오자 관광객들이 버스로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요지부동이었다. 옷이 부실해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산행은 불가능했다. 자판기의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후퇴다, 라고 했다. 그럽시다. 당신 옷이 너무 부실해요.
설악산은 OJOSAN PROJECT를 그려 나가는데 상당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OJOSAN PROJECT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나는 설악산을 계속 찾을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 두 사람은 속초 시내를 찾을 것이다. 설악산이 있는 한.
뒷이야기- 그날 일요일 아침, 우리 두 사람은 갈팡질팡이었다. 이왕이면 한계령을 넘어 가자. 하지만 버스 시간이 맞지 않았다. 비도 내리고 우중충한데 그럼 기차로 갈까? 그럴까요? 표를 물리고 버스로 강릉에 갔다. 강릉시외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버스정류장에 있던 60대 중늙인이에게 역으로 가는 버스를 물었다. 그는 말했다. 보자, 동부시장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녀 오래 걸릴 건데, 하며 장황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강릉역으로 가는 버스가 다가왔다. 버스 왔다, 가자. 버스를 내려 강릉역에 갔다. 10년 전의 그 강릉역이었다. 오지게 안 변하고 있었다. 물었다. 서울로 떠나는 기차는 4시간 뒤 오후 2시에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좌석도 없었다. 이럴 수가……. 하, 하고 고민을 하다 다시 강릉시외터미널로 와 고속도로로 떠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강변터미널에 도착하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메이디 인 차이나 우산을 펼치는데 우산 손목이 핑 달아났다. 하하하! 강변역으로 들어가면서 우산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속초의 생선구이 식당과 메이디 인 차이나가 계속 우리 두 사람의 인상을 흐리게 만들었다. 20081110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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