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청계산으로

오주관 2009. 9. 27. 23:12

 

 

서울에 살면서 청계산은 처음이었다. 원정이었다. 형편이 좋지 않은 고무다리로 청계산이 어떤 곳인지 한번 가보자. 서울을 떠나 돌아오면서 고속버스 안에서 청계동의 등산복 가게를 보곤 했다. 왜 저곳에 저런 가게가 있을까? 그 동네가 청계산으로 가는 길목인 줄 이번에 알았다.

 

 

 

 

 

청계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편했다. 삼각산이나 도봉산과는 달랐다. 흙길이었고 마을 뒷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돌문 그 부근에서 점심을 먹었다. 밥은 현미밥이고 반찬은 심심하게 담근 김치. 사람은 독해도 반찬은 심심해야 한다. 심심하게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한다. 요즘 내 머릿속이 그 어느 때보다 맑다. 심심하게 먹은 결과다.

 

 

 

 

내려오면서 들어간 포장마차. 한 병 가지고 나누어 마셨다. 반찬을 심심하게 먹으면서 그 옛날의 입맛을 잃어버렸다. 술도 반으로 줄어 들었다. 목만 축일 정도로 심심하게 마신다.

 

 

 

 

경부고속도로 6차선 다리 밑. 청계 주민들이 밭에서 가꾼 채소와 농작물을 가지고 와 등산객을 상대로 팔고 있었다. 싱싱했다. 값이 무진장 쌌다. 고구마 3킬로에 4천 원. 이천 원에 상추 한 보따리. 가지 이천 원에 한 보따리. 너무 헐케 파는 게 아닙니까? 하고 할머니에게 물었더니 우리 밭에서 키운 거라 이렇게 판다고 했다. 내 나이가 올해 86이라고 한 할머니를 보니 속세 나이 60 중반밖에 안 되어 보였다. 마음을 비우고 살면 저렇게 건강하게 사시는구나. 욕망을 비우면.

 

 

 

뒷이야기-셔틀버스에 앉았을 때 청계산 풍경을 디카에 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올라갈 때는 치매 돌아올 때는 본 정신. 오늘 저녁에는 무수골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운동은 걷기뿐이다. 격투기를 할 나이도 아니고 마라톤을 할 나이도 아니고 근력운동을 할 나이도 아니고, 제일 편한 운동이 걷기다. 걸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온갖 속세의 때를 벗기고 싶으면 걷는다. 그해 겨울 서울에서 내 고향까지 배낭 하나만 메고 걸었을 때, 나는 이 우주와 하나가 되었다. 행복했다. 걸으면 독이 빠진다. 걸으면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만 들어온다. 걸으면 만사가 오색무지개다. 이제 등산은 끝이다. 걷는 운동과 자전거를 끌어안아야 되지 싶다. 2009928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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