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는 창조다
봄만 되면 한반도를 뒤덮는 황사. 창밖이 뿌옇다. 기관지가 약한 사람들은 고역이다. 옆지기는 황사에 약하다. 황사가 낀 뿌연 거리를 걸을 때마다 가슴의 통증을 호소한다. 봄이 고역인 옆지기. 황사는 고비사막이 진원지다. 황사를 막을 대책은 없을까. 중국 한국 일본이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나는 작업실의 창밖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을 떠올린다. 쿠바와 중남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던진 체 게바라. 체 게바라를 혁명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그 주제들이 오늘 우리 인간들이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192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체 게바라. 그는 비교적 유복한 소년기를 보냈다. 천식이 그의 일생을 괴롭히지만 그는 운동과 여행을 아주 좋아했다. 문학 서적을 탐독하고, 그림에도 상당한 소질이 있었다. 자신을 “시인이 되지 못한 혁명가”라고 부를 만큼 시에 심취한 그는 로르카, 네루다, 베를렌, 보들레르를 암송하기도 했다. 195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의과대학에서 알레르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와 전문의 자격증을 받았다.
그가 혁명가의 길로 들어선 것은 여행을 통해서였다. 체 게바라는 대학시절 1년 반에 걸쳐 라틴 아메리카 4개국을 도보와 자전거로 순방한다. 졸업 후에 다시 7개국을 여행하다가 그의 인생 여정 자체를 바꾸게 된다. 그는 여행 도중 대륙의 구석구석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부조리와 불평등과 맞닥뜨린다.
체 게바라는 훗날 “나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과테말라에서 혁명가가 되고, 쿠바에서 싸웠다”고 술회했다.
체 게바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꾸자.
그 말 속에 세계가 풀어야 할 답이 들어 있다.
체 게바라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세상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삶의 무게가 다를까. 세상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삶의 질이 다를까. 세상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삶의 행, 불행이 다를까. 세상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삶의 사고의 질과 방향이 다를까.
세상의 공기는 주인이 없다.
세상의 부 역시 주인이 없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이 세상과 우리의 것이다. 내 부가 우리 가족의 부이고, 우리 가족의 부가 우리 이웃의 부이듯, 우리나라의 부 역시 이북의 것이고 아시아의 것이다.
21세기에도 살아 움직이고 있는 탐욕과 무지
지구촌의 한쪽은 너무 많이 먹어 배가 부풀어 올라 터질 지경이다. 지구촌의 한쪽은 너무 먹지 못해 말라 죽어가고 있다. 한쪽은 영양이 넘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한쪽은 영양이 너무 부족해 숨을 쉴 힘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인들은 이 사실에 침묵하고 있다.
세계인들은 이제 이 문제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체 게바라가 바라본 세상은 지극히 낮은 곳이었다. 낮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과 부조리의 시소를 본 것이다. 불평등과 부조리의 주범은 누구인가? 가난한 나라의 부를 가로채 가고 있는 주범은 누구인가?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의 부를 가로채 가고 있는 주범은 누구인가? 거대한 제국이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뙌놈이 먹는다.
체 게바라는 쿠바를 해방시키고 얼마 후 볼리비아 밀림 속으로 들어간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중남미를 해방시키기 위해. 그는 신의 편이 아니었다. 그는 제국의 편이 아니었다. 그는 가진 자의 편이 아니었다.
체 게바라는 저항 할 줄 모르는 힘없는 인간들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던진 혁명가였다.
우리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정치일까 경제일까? 원칙일까 법치일까? 경쟁일까 평등일까? 한나라당일까 민주당일까? 정규직일까 비정규직일까? 성장일까 분배일까? 경상도일까 전라도일까?
문제는 깨지지 않고 있는 우리의 돌 머리이다.
사고가 깨어지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앉지 못하고 서서 살아갈 것이다.
파괴는 창조다
사고를 파괴시켜야 한다. 돌보다 더 굳어 있는 딱딱한 사고를 깨부수어야 한다. 나와 네 그리고 우리를 해체시켜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 그 속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 그 속에서 우리를 찾아야 한다. 해서 하나가 우리이고 전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은 조중동의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이건희의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0,1 프로의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보수의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나와 네 우리 모두의 나라인 것이다.
뒷이야기- 가진 자들은 탐욕이 무섭고, 가지지 못한 자들은 무지가 무섭다. 탐욕과 무지가 싸우면 백전백승 탐욕이 이긴다. 문제는 무지다. 무지는 홀수가 아니다. 탐욕은 소수지만 무지는 무리다. 이 무리들이 뭉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후천개벽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희망이요 횃불이요 무대이다. 누가 이들을 이끌어야 하나. 오만이 재산인 진보들이다. 오만을 내려놓고 진보가 뭉칠 때 그 진가는 어두운 밤을 밝히는 빛이 될 것이다.2010322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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