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길을 찾아 떠나는 일, 현, 림에게

오주관 2010. 2. 24. 19:03

 

 

앞 시대를 살다 간 그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무엇일까?

지난 일요일 오전, 우리 두 사람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등산객들 속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바깥풍경과 책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옆지기는 책을 나는 철로주변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가다 어느 시골역에서 내렸다. 그곳 종점으로 가는 지하철을 기다리기 위해. 역사는 조용했다.

 

나는 창밖의 시골 풍경을 감상했다. 언제 보아도 물리지 않는 풍경이다. 내 정신의 고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시골이다. 비록 몸은 서울에 있지만 정신은 늘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으로 향하고 있다. 나는 창밖, 옆지기는 벤치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유시민 씨가 얼마 전에 발표한 ‘청춘의 독서’ 였다. 이 책은 해병대 입대를 앞두고 있는 조카 현과 그의 형 일, 그리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유학을 떠난 림에게 날아갈 것이다.

 

책에서 잠시 눈을 뗀 옆지기가 말했다.

“유시민 씨가 이영희 선생님이 쓴 ‘전환시대의 논리’ 를 높이 평가하고 있네요.”

“응. 지금 보면 건강한 책이지만 독재시대에는 보아서는 안 되는 금서였다. 웃기는 이야기다.”

 

권력이 더러운 것은 본질과 양쪽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쪽만 보고 다른 한쪽을 내치니까 반대편이 위험한 것이다. 자기 몸의 팔 하나를 싹둑 자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권력, 그리고 그 권력에 빌붙어 살아가는 기생충들 때문에 시대가 갈지자로 걸으며 뒤로 후퇴를 하는 것이다.

 

하루는 낮과 밤을 말하는 것이다.

 

“대학교에 들어간 딸을 위해 이 책을 썼고, 그리고 자기 부인이 좋다고 동의를 했다고 하네요.”

고개를 끄덕이자 옆지기가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대학교에 입학을 하는 아이들이 읽으면 여러모로 좋겠네요.”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지.”

“맞아요.”

“그리고 방대한 양을 골미 뽑듯이 뽑는 그 기술, 어렵다.”

“그러게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리 좋은 책도 읽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아이들에게는 무용지물이다.”

옆지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갈증과 안 갈증. 타는 갈증은 스펀지다. 앎에 목말라 있는 아이들이라면 이런 책들을 허겁지겁 물 마시 듯 빨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앎과는 사돈에 팔촌보다 더 먼 아이들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공자가 옆에 앉아 있어도 흥미가 없고 그리고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중학교 시절의 나는 갈라진 밭이었다.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때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미 내가 넘을 수 없는 거한 벽이었다. 섹스피어도 마차가지였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쓴 키에르케고르도 그랬다. 읽으면 읽을수록 머릿속은 어지러웠다. !보다는 ?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엄청난 갈증을 풀어줄 구원자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갔다. 그 갈증들은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인 것이었다. 그만그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에게 기대했던 내가 순진했던 것이었다.

 

다시 지하철에 앉아서도 옆지기는 책에서 눈을 뜨지 않았다. 독일로 보낼 책이다 보니 자신의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을 것이다. 사이사이 자신이 읽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인구와 가난에 대해서.

 

“가난은 국가가 해결을 하지 못한다고 했네요. 답은 자연 발생적이라고 하는데요. 전쟁이 일어나거나 전염병이 창궐해 인구가 줄어들면 가난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고 하네요. 그리고 쇼킹한 사실은 가난한 자들은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하네요.”

“늘어난 인구를 줄이는 방법 중에 하나가 전쟁과 전염병이다. 그러나 가난은 나라도 어쩔 수 없다고 한 자연도태설은 수정되어야 한다. 지금 세계가 보유하고 있는 부는 전 세계 인구를 먹이고도 남는다. 문제는 그런 이론이 아니라 탐욕과 무지 때문에 세계인들이 굶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국가가 도와주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힘없는 국민들을 보호해야 돼. 그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막말로 부자들은 가만히 놔두어도 살아가게 되어 있어. 그리고 맬서스의 인구론은 그의 사고의 결과물일 뿐이야. 앞의 사람들의 이론과 논리가 전부 고정불변이라고 못을 박으면 우리 인간에게 발전과 진보는 없다.”

 

 

 

 

쿵쾅쿵쾅! 어느새 지하철은 양수리 다리 위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 얼어 있었다. 오늘이 며칠인가? 2010년 2월 21일이 아닌가. 그런데 양수리의 강은 아직 얼어 있다. 서울의 한강은 얼음이 녹았는데, 양수리의 강은 아직 얼어 있었다.

 

옆지기는 책과 하나가 되어 있다. 대상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내가 끌어안고 싸울 대상이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이다. 정체는 불행이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는 것이다. 인간은 움직여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진보가 우리의 미래와 삶을 살찌우는 것이다.

 

일, 현, 림아!

우리는 왜 살까?

우리는 왜 앎에 매달려야 할까?

우리의 삶의 궁극은 무엇일까?

그리고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일까?

 

이 네 가지 물음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앞에 살다 간 그들의 정신을 탐구해야 한다. 그들이 그 물음들에 답을 하나씩 내놓았기 때문에. 자신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그들의 삶을 공부하면서 이 물음에 답을 구해야 한다.

 

일, 현, 림아!

너희들은 이제 먼 길을 출발하는 길 위에 서 있다. 그 길은 미지의 길이다. 빛이 있을 것이고 어둠이 있을 것이다. 어두운 길에는 너희들이 상상하지 못한 험한 길과 늪도 있을 것이다. 길동무 하나 없는 그 길을 너희는 혼자 가야 한다. 그래서 인문학에 매달릴 것을 부탁한다. 어두운 길을 비추는 등불이기 때문에. 그 책들을 통해 그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그리고 어떻게 자신을 담금질했는지 공부를 해라.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책을 무지막지 읽되, 책의 노예는 되지 마라. 그리고 이 세상에 나와 있는 많은 이론들은 그들의 메시지이지 너희들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말은

 

이 세상에 나와 있는 그 어떤 이론도 영원한 것과 불변은 없다.

취하되, 그들을 따르는 추종자가 되지 말고 너희 것을 이 세상에 토해놓아야 한다.

 

1. 책을 읽되, 노예는 되지 마라.

2. 그들의 생각을 탐구하되, 그들의 논리에 빠지지 마라.

3. 중요한 것은 끝내 너희들의 생각을 이 세상에 토해야 한다.

4. 구속이 아닌, 족쇄가 아닌, 자유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뒷이야기-지난 세월, 나를 감옥에 가두어놓고 골병들게 만든 것은 우리 앞에 살다간 그들의 정신이었다. 그들의 눈부신 메시지에 영혼이 사로잡힌 나는 그들을 숭배하며 쫓아가다 내 젊음을 다 보냈다. 얻은 것은 골병과 분열뿐이었다. 그들에게 빠져나온 것은 내 나이 50 때였다. 나는 전부 버렸다. 버리자 어둠이 걷혔고 자유가 찾아왔다. 그 때 내가 한 생각을 얻은 것은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그리고 절대와 고정불변은 없다. 점이다. 점이 모여 선이 되는 것이다. 그것을 구별하면 자유를 만날 것이다. 2010224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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