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교조 문제로 시끄럽다. 그 진원지는 국회다. 한나라당의 조 아무꺼시 의원이 용기 있게 전국의 전교조 교사들의 명단을 발표해 이슈가 되고 있다. 법원의 판결을 무시한 그 용기가 가상하다. 전교조를 반대하는 그들의 공통된 주제는 ‘빨갱이다’ ‘좌파다’ 라는 것이다. 그의 동료들이자 한나라당의 몇몇 의원들 역시 동조를 하며 연일 ‘조 씨, 만세!’ 하고 이곳저곳에서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문제를 이번 6,2지방 선거에 써먹으려고 애를 태우고 있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조중동도 군불을 열심히 지피고 있다.
1989년 전교조는 창립되었다. 한겨레신문이 창간을 해 희뿌연 새벽마다 내 방문 앞에 배달이 될 즈음 전교조도 출발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때 나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을 나름대로 열심히 설파하고 다닐 때였다. 나도 그 피해자 중에 하나였다.
1. 획일적인 교육
2. 창의가 아닌 암기식 교육
3. 국영수 세과목으로 학생들의 장래를 결정짓는 그릇된 교육
4. 죽임의 교육.
5. 입시위주의 교육.
6. 일부 교사들의 잘못된 교육관과 부패
대충 이런 식이었다. 전교조의 이념도 위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신학기만 되면 새로 담임을 맡은 교사들은 전대를 하나씩 차고 남몰래 뇌물을 받기 시작한다. 우스갯말로 한 학기 뇌물을 받아 자동차를 사고, 한 학기 뇌물을 받아 용돈을 쓴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었다.
사진-오마이스 권우성기자
지금도 그렇듯이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은 한마디로 대학교를 가기 위한 간이역에 불과하다. 교육의 궁극인 백년대계는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대학교만 존재하는 한국의 교육. 천재를 죽이는 교육. 예술가들의 싹을 죽이는 교육. 토론식이 아닌 주입식 교육. 암기가 실력의 전부인 교육. 자나 깨나 달달달 외우는 기계에 불과한 교육.
이대로는 안 된다. 한국 교육을 갈아엎자. 죽은 교육이 아닌 희망의 교육을 구현하자. 해서 뜻을 모은 전국의 교사들이 전교조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일어 선 것이었다. 그들의 그 깃발은 신성했다. 전교조의 역사적 배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늘 말했다.
단군 이래 몇 안 되는 신성한 혁명이다!
깨어 있는 자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 간다. 반 보이든 한 보이든 늘 앞 서 간다.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리들이 던지는 돌이다. 그게 그들의 운명이다. 그때 전교조가 출발을 하면서 고개를 숙인 채 살아온 동료교사들이 말도 못하게 많았다. 전교조의 이념을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같이 어깨동무를 할 수 없는 것은 가슴이 안 움직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용기 없음
내 주변에 전교조 때문에 두 사람이 유명을 달리했다. 3년 후배인 그는 시인이었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뜨거운 피였다. 피가 너무 뜨거워 견디지를 못했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불의를 보고 눈을 감은 채 돌아선다는 것은 양심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군들 목이 달아나는 걸 좋아할까. 당장 가난이 엄습하는데. 식솔이 있는 가장이라면 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깃발을 들 수밖에 없는 것은 ‘아’ 가 아닌 ‘타’ 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배의 부부는 주말부부였다. 그해 5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있은 고향 후배 장례식에 나타난 정 시인. 시집출간을 위해 서울에 왔다고 했다. 부인과 헤어져 있어 외롭지 않느냐고 물으니까,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그런지 정이 새롭다고 했다. 소주 한잔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 후배는 그리고 다음 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또 한 사람. 이제 긴 겨울은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다가왔다. 일주일 후면 사랑하는 남편이 복직이 된다. 고향의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던 강 선생은 자기 남편에게 입힐 한복을 마련했다. 만날 때마다 눈이 초롱초롱했던 그녀. 그녀에게도 말 못할 세월은 있었을 것이다. 동료교사들과 교장 교감으로부터 시달려 온 인고의 시간이. 하지만 이제는 해방이 된다. 복직을 앞두고 간 해인사. 그리고 인사차 찾은 대구의 친정.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가슴을 칠 일은, 그의 부인이 유명을 달리한 것이었다. 그 겨울 고향의 희날재 공원묘지를 찾은 우리 두 사람. 우리 앞의 자그마한 묘.
‘형님, 이 묘입니다.’
5년 후배인 그는 바른 인간이다. 눈이 살아 있었다. 그는 시대를 앞서 갔다. 나는 그에게 급진파라고 놀리곤 했다. 어느 해 나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한지에 적은 글이 1미터 정도되었다. 역사를 전공한 그 역시 피가 뜨거웠다. 조용한 후배였다. 무리에 묻히면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했다. 왜소한 그. 그의 서재에 꽂혀 있던 그 많은 책들이 지금도 눈에 삼삼하다. 몸은 小해도 정신은 大한 지식인.
어느 해, 포항시외터미널 정류장에서 구룡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는 아스팔트가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운 여름의 오후였다. 버스를 기다리는 줄이 제법 길었다. 우리는 중간에 섰다.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을 맞으며 서 있는데 청년 서너 명이 우리 앞에서 새치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을 목격한 후배가 다짜고짜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었다. 순간 내 몸이 오그라들었다. 열에 아홉은 내가 뒷수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힘도 없고 싸움 기술도 없는 게 무슨 배짱으로 건달들에게 다가 가나. 지식이라고는 파리 대가리보다 더 적은 건달들이 기댈 것은 주먹. 상대의 눈이 호수만큼 깊다 하더라도 그들이 알아줄 리 만무. 뭐가 어쩌고 어째! 하며 주먹을 휘두르면 후배는 그냥 나가 떨어질 것이고, 삼대 일로 붙어 피칠갑이 되어 있는 나를 생각하니 더위는 온데간데 사라져버렸다. 나는 속으로 ‘삼십육계, 삼십육계.’ 하고 중얼거렸다.
사진- 오마이뉴스 권우성기자
힘도 없고 싸움 기술도 없는 인간들이 이상하게 무리들 앞으로 나설 때가 있다. 평소에는 허리를 접고 다니는 그들이 어느 날에는 용기백배 돈키호테가 될 때가 있다. 남 앞에 서면 얼굴도 제대로 못 드는 인간들이 어느 날에는 쥐약을 먹은 인간처럼 고개를 빳빳이 든 채 무리들 앞에 서서 고래고래 고함을 칠 때가 있다. 바로 그것이다. 전교조에 가담을 한 교사들이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를 생각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살아 있는 교육을 생각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참교육을 생각한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21세기에 사라져야 할 것들이 있다. 반드시 버려야 할 쓰레기가 있다. 무엇을 버리느냐.
이념이다
색깔이다
물질이다
저렇게 나부리를 하는 조 씨가 참으로 불쌍하다. 그리고 그 패거리들이 또한 불쌍하다. 또 있다. 아직도 입을 굳게 닫고 있는 지식인들과 전국의 수많은 교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묻는다.
그대들이 꿈꾸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인가?
뒷이야기-어두운 밤에 낯선 사람이 접근을 하면 개는 귀를 쫑끗 세우면서 침입자를 향해 금방 공공 짖는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정치가 우리의 삶을 일백 프로 지배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 몰라라 하는 층과, 죽으라 짖는 층들이 있다. 침묵은 금이다 패들은, 나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음. 과연 그럴까. 아니다. 용기가 없음이다. 지금 집안의 귀중품이 털려 나가는데도 나 몰라라 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짖을 때는 같이 힘을 합해 짖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다. 무임 승차는 안 된다. 침묵은 금이 아니고 죄다. 왜 사나? 그리고 입은 왜 있고 머리는 왜 있고 가슴은 왜 있는가를 궁구하면서 살아야 한다.2010514도노강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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