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앓이
때가 되면 열병처럼 찾아오곤 하는 가슴앓이. 약이 없다. 있다면 입을 닫고 묵언수좌처럼 아니면 좀 머씨처럼 빠른 걸음으로 후다닥후다닥 걷는 수밖에 없다.
반골 아니면 혁명가
내 어깨에 딱정벌레처럼 붙어 있는 가방. 또 다른 나다. 가방에서 해방이 되는 날, 승천일까 추락일까. 어쨌든 빠른 걸음으로 도착한 곳. 인문학이 주는 즐거움은 잠시나마 내 가슴앓이를 멈추게 한다. 잠시 후 고개를 드는데, 낯이 익은 사내가 내 맞은편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희곡을 쓰는 인문학의 반골
그를 보는 순간 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중고로 무장한 그. 그의 머리를 덮고 있는 모자, 두꺼운 노란색의 점퍼, 남루한 바지와 퇴색한 나이키 운동화. 그의 표정이 내 정신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가 만들어 내고 있는 정서가 바로 나였다
불안한 영혼은 잠을 자지 않는다. 그 꼴이었다.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를 보는 순간 좀 머씨를 떠올렸다. 나무 지팡이에 의지한 채 산 속으로 걸음아 나 살려라 내빼는 좀 머씨.
그러니 제발 나를 좀 내버려두란 말이오!
그의 독서는 요즘도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책을 읽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인문학의 바다에 풍덩 빠져 지내고 있다. 그는 인문학의 게릴라다. 아니 그는 인문학의 체 게바라다.
그의 글은 힘이 있다. 그의 글은 날카롭다. 그는 대인이다. 하지만 방앗간 속의 그는 달랐다. 어디에도 거함이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호흡을 하십시오.
그래야 멀리 갑니다.
책 두 권을 보자기에 넣은 그는 그곳을 황급히 빠져 나갔다. 얼마 후 나도 나왔다. 그리고 맞은편의 방앗간으로 가고 있는데 내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 사람이 있었다. 좀 머씨였다. 일백 미터 달리기에 나선 선수처럼 후다닥 내빼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서울역 방향의 개찰구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가방을 둘러멘 내가 허둥지둥 개찰구 속으로 막 사라지고 있었다.
순간 길을 잃어버린 나.
내가 가야 할 목적지는 어디일까?
뒷이야기-가슴앓이 때문에 밤마다 홀로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하면 나는 욕망을 내려놓는다. 낮에 쌓아올렸던 탑이 밤만 되면 허물어져 내린다. 낮에 우주였던 나는 밤만 되면 먼지가 된다. 어둠 속에서 그를 떠올린다. 탕! 그는 더 이상 계급장이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2012221도노강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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