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내 마음의 본향

오주관 2012. 3. 22. 18:43

 

 

 

우리 모두는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꾸자.

 

그 날 아침 빈 몸으로 집을 나온 나는 지하철을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갔다. 내 행선지는 대구 갓바위. 처음 가는 길이었다.

 

동대구역에서 갓바위까지 가는데 40 분 정도 걸렸다. 낯선 풍경이었다. 버스 속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중에 그래도 내 시선을 끈 것은 대구 비행장과 불로막걸리였다. 소문을 여러 번 들은 터라 간판만 봐도 입안에 침이 고였다. 불로동이 여기구나. 머릿속에 입력을 시킨 나는 난생 처음 갓바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땀이 비 오듯했다.

 

2012년 내가 세운 계획표를 보면 총 10가지의 주제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도전이다. 그 다음이 오조영어나라 사업제휴이고.

 

믿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을 하면 순진하다는 것이다. 나는 공인들의 말을 잘 믿는다. 그것도 철썩 같이. 지역구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다. 옛날에 비례대표가 그랬다. 비례대표는 돈이 없으면 꿈도 꿀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비례대표는 돈이 없어도 국회의원을 할 수 있는 제도로 탈바꿈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각각의 직능별 인재를 모으기 때문에. 더군다나 공천심사위원장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었다.

 

1. 개혁성

2. 정체성

3. 도덕성

4. 비전

 

경제의 민주화와 남북관계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인재를 모으는데 초점을 두겠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그는 일침을 놓았다. 계파는 없다. 그리고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고 개혁성과 전문성을 가진 인재를 발굴하겠다. 박수!

 

공천혁명을 하겠다는 것을 내외에 천명을 했다. 옳다! 믿었다. 드디어 나도 나라의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구나.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 지난 해 12월 나는 난생 처음 입당원서를 썼다. 회비도 온라인으로 내었다. 일단은 자격을 갖추었다. 그리고 내가 만든 한반도 통일 프로젝트를 정치권으로 세 권 보냈다. 한번 보아주십시오. 우리도 이제 통일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내 생각은 지금도 요지부동이다.

 

남과 북이 한 단계 더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야 한다. 경제의 민주화도 중요하지만 한반도의 통일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그동안 접촉해본 정치권은 하나같이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까막눈이었고 무지했고 그리고 지식과 열정이 없었다.

 

답답한 사람들!

 

결론부터 말하면 한반도가 통일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도와주겠다고 목청껏 외쳐도 그들은 내 목소리를 외면하고 내 손을 쳐다보지 않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오죽하면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지 않은가. 그런데 막상 통일을 부르짖으면 하나같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정파 싸움과 돈이 되는 싸움에는 이골이 나 있고 전문가인 그들이 그러나 남과 북의 평화적 통일에는 도무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이 불가능할까? 정말 불가능할까? 아니다. 가능하다. 기회는 왔다. 세계의 기운이 지금 동북아에 그것도 우리 한반도에 성큼 다가와 있다. 내 눈에는 그것이 보인다. 통일이 될 적기인 것이다.

 

나는 1%의 가능성만 보이면 도전한다. 그런데 내가 바라본 한반도의 통일은 80%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잡아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 그래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를 놓고 물 밑에서 힘 싸움을 하고 있는 열강들을 보라. 분명한 것은 그들 4개국(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의 힘이 간당간당하다. 그럴 때 남한과 북한은 그 힘을 이용해 치고 빠지는 작전으로 손을 마주 잡아야 한다.

 

갓바위 앞에 선 나는 108배가 아닌 30여 차례 절을 하면서 내 안의 열기를 식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약점은 집중력과 집착이다. 무섭다. 생각해보면 나만큼 술을 많이 마신 자는 없을 것이다. 나만큼 담배를 많이 태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한번 빠지면 미쳐버린다.

 

갓바위 중간쯤 내려왔을 때 고향의 후배들이 떠올랐다. 서울에서는 좀처럼 전화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고향 쪽으로 오면 이상하게 전화번호를 누르곤 한다. 열심히 살고 있나. 대쪽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어디 멀리 나가 있나. 그런가 하고 내려가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받았다. 들려오는 목소리가 이상했다. 잤나? 예. 말이 어눌했다. 니, 술 마셨나? 예. 원래 술을 잘 안 마신다. 니, 아프나? 예. 단답형이었다. 옛날의 총기 넘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벼, 병원에 있니더. 어느 병원? 대~구. 대구? 예. 경대? 예. 영대? 예. 이 후배는 이번에 포항의 곤조를 유감없이 보여준 그 비서관 아이의 선배다.

 

전화를 끊고 털보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 그래. 가가 아프나? 예. 어디가 아프노? 몇 달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니더. 뇌졸중으로? 예. 후회는 항상 뒤에 온다. 평소에 담배가 과한 후배였다. 그리고 밤에 잠을 안자는 후배였다. 이런 일이 있나! 털보야. 예. 가, 병원비 낼 정도는 되나? 그 정도는 되니더. 이럴 때 돈이 필요하다. 빈털터리의 가슴이 싸늘했다. 병원비 하라고 2천 만 원 정도 주면 얼마나 도움이 될까? 털보야. 예. 되게 어려우면 너희가 힘을 모아 도와줘라. 예.

 

중간에 버스를 내려 이름만 듣던 불로막걸리를 한 병 마셨다. 마음이 식어서인지 술맛이 없었다. 그 길로 영대병원에 가 후배를 만났다. 6인실에서 나온 후배. 멀쩡하구나? 미소를 지었다. 얼굴색도 좋네.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좋았다. 전화를 잘 안 받는데, 형님 전화라 받았니더. 형님은 말을 어눌하게 해도 괜찮아서. 가슴이 끓어올랐다. 옛날 80년대 고향에서 도서관 사업을 할 때 우리는 죽이 맞았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나는 니, 용꿈 꿨다. 불행 중 다행이다. 예. 아무 생각 없이 오느라고 마실 것도 못 사왔다. 글을 못 쓴다고 후배 부인이 말했다. 내 이름 한번 써봐라. 내 이름은 제대로 썼다. 말이 조금 어눌했다. 그래서 언어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글은 못 써도 말만 하면 된다. 말은 또 변호사다. 시의원을 해도 되고 시장을 해도 될 재목이다. 인재들은 픽픽 나가떨어지는데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가방 모찌들은 잘도 출세의 반열에 들어서 있다. 우리 고향에는 가방 모찌가 둘 있다. 하나는 이번에 곤조를 보여준 그 아이이고, 다른 하나는 고을 사또다. 이명박 가방 모찌, 노테우 가방 모찌.

 

나는 후배를 안았다. 대쪽아, 어예든지 몸을 돌봐라. 예. 이제 퇴원하면 담배는 반드시 끊어야 한다. 예. 나는 후배에게 채식하는 방법을 알려주고는 다시 후배를 안았다. 건강 또 건강이다. 예. 3년 만에 만난 우리는 그렇게 짧은 만남을 마치고 돌아섰다.

 

공천심사결과

뚜껑을 열어보니 떨어질 사람들은 확실히 떨어졌고 당선될 사람들은 확실히 당선이 되었다. 1번으로 오른 전순옥 씨는 누가 봐도 두 손을 들고 환영할 만하다. 그 다음에 우리 모두의 영웅인 김진숙 씨가 들어가 있을 줄 알았다. 없었다. 나는 내 분야인 통일안보 분야를 눈 빠지게 보았다. 없었다. 함량미달이었다.

 

입에 단내가 났다. 솔직히 나 같은 사람 한 사람 정도 뽑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은 왜 그렇게 까막눈일까. 믿은 내가 잘못이다. 공천심사비 300만 원을 주지 않아서 나를 아웃시켰을까? 안주어도 느긋하게 뽑아줄 줄 알았다. 어쨌든 정치는 전쟁이다. 계파싸움이다. 나는 살고 상대는 죽어야 한다. 나와 내편만 있을 뿐 상대와 상대편은 없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영웅은 뽑지 않는다. 자신들을 잡아먹을 호랑이와 사자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제는 기차를 타고 강촌까지 가 허한 가슴을 어루만졌다. 숲속 벤치에 앉아 깡소주를 들이켰다. 기분 같아서는 10병정도 마시고 쭉 뻗었으면 싶었지만 내일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생각하면서 잔을 접었다.

 

사노라면

기회는 또 온다. 그 때 도와주리라. 1막은 그렇게 막이 내렸고, 내일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영어다. 빨리 마무리를 해 인프라가 대단한 그곳과 사업제휴를 하자. 언제인가 청담동에 산 적이 있는 옆지기가 청담동 아이파크에 한번 살아볼 수 있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있다고 대답했다.

 

지금은 빈털터리!

가지고 있는 것은 뜨거운 가슴과 열정 그리고 미침뿐이다. 쿠바를 해방시킨 체 게바라와 브라질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룰라가 내 롤 모델이다. 특히 가슴이 활화산이었던 혁명가 체 게바라가 한 말을 나는 늘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꾸자.

 

뒷이야-250조 원이면 한반도는 통일이 된다. 1년에 25조 원. 많은 돈일까? 아니다. 10년에 250조 원만 북한과 DMZ에 투자를 하면 한반도는 하나가 된다. 진실로 답답하다. 내가 너무 빨리 태어난 죄다. 나는 요즘 시도때도 없이 가방을 메고 깊은 산속으로 도망을 치곤 한다. 좀 머씨처럼. 밤에도 간다. 시켜주겠다고 콜을 해도 손사래를 치며 안 하겠다는 사람들, 반대로 시켜달라고 애걸복걸해도 눈길 한 번 안 주는 사람들이 있다. 보면 후자들이 꼭 필요한 인재다. 오 씨, 그래도 힘을 내야지! 당신은 강한 사람이잖아. 마이 퍼졌는데. 그래도 내일 아침이면 해가 뜨잖아. 소주 한잔이 그리운 밤이다. 2012322도노강카페.

'사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8타수 1안타  (0) 2012.06.18
지난 4년 나와 싸운 두 프로젝트  (0) 2012.05.09
나는 오늘도 걷는다  (0) 2012.02.21
My Way  (0) 2011.11.30
동생 강일선 기자가 본 곽노현 교육감과 강경선 교수  (0) 2011.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