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그 날, 백담사에 가다
노동절 그 날, 우리 두 사람은 백담사에 가기 위해 용대리 마을에서 버스를 내렸다. 쌀쌀했다. 봄은 없고 바로 여름이 오는 바람에 난방비가 많이 든다고 했다. 옆지기가 아침을 먹자고 했다. 용대리에 왔으니 황태해장국을 먹어야 한다. 이 동네에서 짬뽕이나 해물잡탕을 먹으면 예의가 아니다. 만약 황태해장국이 아닌 해물잡탕을 먹고 있는 우리를 마을 주민이 보면 십중팔구
쯧쯧, 주제가 없는 사람들이네.
용대리를 모욕하네!
손님이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텅 빈 식당보다 손님이 많은 식당에 가야 속을 확률이 적다고 했다, 옆지기가. 잠시 후 산채 나물이 주 반찬인 황태해장국이 나왔다. 솔직히 경상도 사람들은 황태해장국에 약하다. 꽁치나 고래고기국은 많이 먹어도 황태해장국은 잘 먹지 않았다. 옆지기는 서울이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어쨌든 먹었다. 솔직히 그 옛날 꽁치국보다 못했다.
밥만 먹으면 땀을 흘리는 나
땀을 콩죽 같이 흘린 나는 그릇을 비우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커피 한잔을 비울 때쯤 옆지기도 나왔다. 나물이 좀 맛이 왔다갔다 안 했나? 경계선에 서 있었다. 물론 맛이 약간 가도 내 위는 소화를 시킨다. 워낙 악식에 단련이 된 터라 쉰 음식을 먹어도 내 위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있는 집 자식이면 큰일 난다. 당장 위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식중독에 걸려 응급실로 직행을 해야 한다. 옆지기가 그렇다. 내 위는 쉰 음식도 거의 100% 소화를 시킨다. 그러니까 내 위는 상전의 위가 아니라 머슴의 위를 가지고 태어났다.
나물에 조미료를 탄 거 같아요.
그래서 맛이 닝닝했나.
담백한 맛을 못 느꼈어요.
왜 나물에 조미료를 타노.
그러게 말이에요.
용대리 정류장
우리는 걸어 정류장에 갔다.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결성해 수지맞는 장사를 하고 있는 용대리 마을버스. 백담사가 용대리 주민을 먹여 살리고 있다. 4천 원을 주고 탔다. 자리에 앉는데 눈에 익은 사람이 보였다.
저기 앉은 사람이 거시기 씨다.
어디요?
저기.
아니에요.
정말?
네.
맞는데?
아니에요.
눈썰미는 내가 높은데 그 날은 아니었다. 아니구나, 오지게 닮았네? 이미 결론이 났다, 아니라고.
백담사 계곡
백담사 너머의 산을 보니 아직 잔설이 남아 있었다. 오지게 추운 고장이다. 5월인데 잔설이 남아 있는 백담사. 백담사 경내를 한바퀴 돈 우리는 봉정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물론 봉정암을 갈 생각은 없었다. 준비 없이 온 터라 신발도 그곳으로 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 갔는데 금방 검문에 걸렸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여기 신분증 있습니다.
아니, 예약을 했습니까?
아니요.
없는데요.
그럼 들어갈 수 없습니다.
들어가는 사람들은 전부 예약을 한 분들입니까?
네.
검문에 막히다
뒤로 빠꾸. 그렇다면 어디로 가나? 백담사는 가기 싫었다. 그곳에 가면 보기 싫은 처사가 하나 있다. 전 씨 성을 가진, 한국의 민주화에 초석을 다진 위대한 지도자 어쩌고 저쩌고 처사 후배들이 개발새발 학교홈페이지에 쓴 그 주인공이 유배를 와 지낸 곳. 그 처사 부인을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본 일이 있다. 하! 얼굴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 그래 이왕이면 실컷 먹고 죽자! 그렇게 못을 박은 채 육즙이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날이면 날마다 죽어라 뜯는지 얼굴이 터져나갈 것 같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상도동의 김장로 부부도 얼굴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있다. 꼭 CF에 나온 전국노래자랑의 그분 얼굴처럼.
그래 먹고 죽은 귀신, 화색이 좋다 이거지!
불쌍타, 이 화상아!
강가로 내려갔다. 강에는 수많은 등신불이 있었다. 성불이나 했나? 아니 수행 중이겠지. 성불을 했으면 저렇게 돌탑을 쌓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올 때마다 쌓은 탑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쌓으면 허물어지는 탑. 그렇기 때문에 또 쌓는 것이다. 쌓자. 쌓았다. 도대체 무엇이 부족해 돌에 간절함을 얹어 탑을 쌓을까?
종교는 무엇인가?
갈증과 더위를 잠시 달래주는 물과 바람?
돌탑
다 쌓았다. 목이 말랐다. 그제야 무엇이 빠졌는지 알았다. 올라올 때 막걸리를 사오지 못했다. 늘 반 보 늦다. 백담사에 술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술을 사오지 않았다. 이 계곡에서 막걸리 한 잔 마시면 갈증도 갈증이지만 마음속에 쌓여 있는 찌꺼기도 조금 사라질 텐데.
그 때 옆지기가 물었다. 그곳이 어디에요? 어디? 왜 여기처럼 예약을 해야 오를 수 있는 곳 있잖아요. 강원도가? 네. 산이가? 네, 그 왜 세쌍둥이가 있는 동네. 아, 당신 선배 말이구나. 네. 여자하고 예쁜 집을 지어놓고, 그리고 세쌍둥이를 낳고 어느 날 사라져버린 남자. 그곳에서 그 여자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펜션을 하고 있다.
퀴즈놀이에 빠지다
두 번째다. 전에도 그곳을 몰라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곰 자가 들어가나? 아니요. 20명이 되어야 출입을 하는 곳이잖아. 맞아요. 사진기자가 어린 딸을 데리고 사는 동네제. 네. 딸이 다니는 학교에 기간제교사로 일하제. 맞아요. 하, 그 동네가 어디더라? 방대령? 아닌데. 곰다리? 아닌데. 인대리? 아니에요. 용대리? 여기가 용대리에요. 맞네. 하, 그 동네는 왜 암기가 안 될까? 한 번 외우면 잊어먹지를 않아야 되는데, 왜 그 동네는 외워지지가 않노, 하 미치겠네.
그 때 쌓아올린 돌탑이 무너지면서 내 몸을 덮쳤다. 정성이 부족했나? 재빨리 피해 다치지는 않았다. 바로 그 때 빛 하나가 전광석화같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 그래, 곰배령이다!
맞아요, 곰배령!
히야, 10살 많은 내가 맞췄네.
하하하.
당신, 분발해라.
네.
이제 잊어먹지 마라, 곰배령.
네.
그 날, 백담사 계곡에서 나는 권총을 날려 보냈다. 내가 찾아 헤맨 그 권총을 놓아버렸다. 품위 있게 떠나자. 탕! 은 아니다.
뒷이야기-한번이라는 것이 비극일까 행복일까? 한번이기 때문에 연습은 없다. 본게임만 있을 뿐이다. 내 마지막이 궁금하다. 내 마지막 무대는 어떻게 끝을 맺을까. 미소를 지으며 가고 싶다. 손을 흔들면서 가고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에게 행복했고 가치 있는 삶이었다. 그렇게 마침표를 찍으며 가고 싶다.201359도노강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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