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의 아버지
지난 2월 15일 페렴으로 119에 실려 병원 응급실에서 긴급처치를 마치고 병실에 올라갔을 때만 해도 담당주치의가 2, 3일이라고 했다. 어쨌든 그 시간부터 모든 치료를 다 동원해 아버지 살리기 작전에 돌입했다. 강력한 항생제를 투여하는 한편, 정맥주사도 아버지 몸속으로 흘려보냈다. 겨울이 다가도록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은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사래가 걸리기 시작했다. 위로 가야 할 음식물이 기관지로 가 말썽을 일으켜 결국 그 다음날 아침 병원으로 직행했다.
병실을 지키는 누님
이제 두 누이는 가고 누님만 남았다. 끝까지 아버지를 돌보고 있는 누님. 오늘로 병원에서 퇴원을 하면 아버지는 요양원으로 간다. 어젯밤, 병실을 나오기 전 나는 아버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버지, 여기서처럼 요양원에 가서도 마음을 크게 잡수시고 잘 견디셔야 합니다. 집에 모시고 싶지만 음식을 코줄이 아니면 안 됩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야야 합니다. 그 대신 제가 자주자주 아버지를 찾아뵙겠습니다.
우리 식구들 가운데 아버지와 농담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크게 웃는 것도 나와 만났을 때다. 아버지는 잡기와는 담을 쌓고 산 분이다. 술도 평생 소주 한 병도 못 마셨다. 남들은 맛잇다는 고기도 노 땡큐였다. 쇠고기도, 돼지고기도, 닭고기도 입에 대지 않았다. 담배는 즐겨 태우시다 60에 끊으셨다. 단 하나 해물은 좋아하셨다. 막내가 해물을 계속 공수해준 덕에 지금도 형수님 급냉실에는 회가 들어 있다. 아버지가 말문을 닫은 지 이제 겨우 두 달. 안타깝다. 그 전에 많은 대화를 나눌 걸, 하는 후회뿐이다. 겨우 맞춘 말이 있다면 죽으면 화장을 할 것, 묘는 쓰지 말 것 정도다. 지금은 눈으로 못다한 말을 주고받는다. 알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신다.
40일 간의 병원 생활. 휴게실과 병실 안에서 틈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체 게바라와 룰라를 읽었고, 몬드라곤의 기적을 읽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잡은 케인스와 하이에크. 묘했다. 케인스와 하이에크는 아버지의 주치의였다. 그들이 내린 처방전을 여기에 풀어볼까 한다.
올해 아버지 나이 93세
아버지는 2,3 일을 견디기 어려운 폐렴환자였다. 의사도 처음에는 고개를 내저었다. 워낙 아버지 나이가 고령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돌아가셔도 호상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치료를 포기한 채 집으로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때 나타난 두 명의 명의, 케인스와 하이에크.
케인스가 내린 처방
케인스는 아버지에게 극약처방을 내렸다. 폐렴을 잡을 수 있는 모든 길을 열어놓은 채 강력한 항생제를 투여해 생명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생제와 진통제도 동시에 투여했다. 그리고 쇠약해진 몸을 위해 정맥주사도 몸 속에 흘려보냈다. 그는 치료를 하는 틈틈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윤리를 설파했다.
하이에크가 내린 처방
하이에크는 그냥 놔두라고 했다. 그렇게 치료를 해서 설령 생명을 살렸다 하더라도 무슨 의미가 있느냐? 돈과 시간의 낭비라고 했다. 그냥 놔 두어도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고 했다. 시간 낭비, 돈 낭비 라고 했다. 그리고 살아 났다 하더라도 식물인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은 손이 다 알아서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결국 이래도 죽고, 저래도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것이다
뒷이야기- 얼마 전, 서울 송파구에 살던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있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세 모녀가 번개탄을 피워놓고 삶을 마감했다. 그 사건을 접한 나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누구의 잘못인가? 그 사람들의 잘못일까? 아니다,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바라보고 사나? 무엇을 위해 사나? 너무 많아 배가 터져나갈 지경인 사람들, 너무 적어 뱃가죽이 달라붙어 죽을 것 같은 사람들. 도대체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이냐? 나는 있고 네는 없는 우리 사회.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브레이크가 없는 열차를 타고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의 공동묘지를 향해 그렇게 가고 있다는 사실을. 2014324도노강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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