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극복이 되지 않는 것이 몇 있다. 담배와 돼지고기 그리고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그것이다. 어느 작가는 젊었을 때는 싫어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바뀐 게 있다고 했다. 사극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리고 돼지비계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돼지비계
나는 어려서부터 돼지고기 살코기는 먹어도 비계는 먹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 비계를 좋아하는 사람은 어머니뿐이다. 우리 형제들도 비계를 먹지 못한다.
중학교 때, 동네에 잔칫집이나 초상집이 있으면 나는 항상 내 친구 학이와 가곤 했다. 물론 앞장을 서는 쪽은 나였다. 친구 학이는 키가 크고 덩치가 나보다 컸지만 숫기가 없어 그런 집에 잘 들어가지 못했다. 학이보다 숫기가 0,5%정도 앞선 나는 용감한 척 잔칫집에 쳐들어가 걸창하게 한상을 받아 구석진 곳에서 먹곤 했다.
그곳에서 받은 음식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한 음식은 국수와 잡채 그리고 감주였다. 내 앞에 앉은 학이는 이상하게 돼지고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음식을 바꾸어 먹곤 했다 내 몫의 돼지고기를 학이에게 주고 나는 학이 앞에 있는 잡채와 감주를 먹곤 했다. 학이는 돼지비계를 좋아했다.
맛싰나?
응, 억수로 맛싰다.
하!
한번 묵아봐라, 꼬시하다.
안 묵는다.
임마, 쫄기쫄기한 게 얼마나 맛싰다고.
학이가 비계가 반인 돼지고기를 된장에 찍어 먹을 때 나는 시원한 감주를 연거푸 들이키면서 행복해 했다. 잡채는? 그리고 국수는? 잔치국수는 이상하게 맛이 좋았다. 참기름이 들어간 양념장이 내 혀를 늘 유혹하곤 했다. 어떤 맛이냐 하면 내 고향의 철기분식집의 국수 맛과 비슷하다. 그 집 국수가 유명해진 것은 역사와 전통도 한몫 거들었지만 그 이면에는 양념장에 있다. 성의도 없고 친절하지도 않고, 맛객 평가단에서 낙제점을 받은 철기분식. 포항에서 20킬로미터 동쪽으로 들어가면 거시기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국수장사를 하는 철기분식집이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진짜 이유는 ‘인터넷과 방송’때문이다. 맛이 있다고 한번만 텔레비전을 타면 그 집은 그 다음날부터 대박 반역에 올라선다.
찐빵하고 단팥죽 좀 주소
없니더!
대구에서 왔니더.
없니더!
허 참, 사람 힘 빠지네.
그럼 국수나 두 그릇 주소.
좀 기다리소!
손님: (속으로)여기 온 우리가 미쳤다. 대구에 국수와 진빵 그리고 단팥죽 파는 데가 널널~한데.
나: 너거가 미친 게 맞다.
이상한 것은, 스펙이나 브랜드가 없는 초짜 음식점들은 아무리 음식에 정성을 들이고 천연조미료를 개발해 신경을 써도 꼭 태클이 들어오곤 한다.
짜다.
맵다.
너무 싱겁다.
하고 태클을 거는 시건방진 손님들이 있다. 그 말을 들은 주인들은 시건방들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팔을 걷어붙인 채 음식개발에 매달린다. 짜다고? 맵다고? 싱겁다고? 그렇다면 하고 소금과 간장과 된장과 참기름을 가지고 실험에 들어가지만 그 이튿날이 되면 어제와 상동이다.
배짱으로 영업을 하는 식당들
반대로 스펙과 브랜드를 갖춘 음식점들은 영업하기가 아주 수월하다. 친절하지 않아도, 주인이 건방져도, 비싸도, 음식이 짜도, 싱거워도, 매워도 태클을 거는 시건방들이 없다. 입이 험한 욕쟁이도 함부로 태클을 못 건다. 만약 용기를 내어 태클을 걸었다. 그럼 돌아오는 답은 하나다.
우리 집에 오지 마소!
당신이 아니어도 우리 집은 미어터진다. 그러니 맛이 없으면 오지 마! 이 한마디면 끝이다. 나와 한때 성대후문에서 장사를 같이 한 추사장이 있다. 그 집 추어탕은 짜지 않고 부드럽다. 좌석도 일곱 사람만 앉으면 없다. 장관이 왔고, 차관이 오면서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다 대박의 반열에 들어선 것은 망할 이영돈의 먹거리 X파일 방송에 나가고부터였다. 미꾸라지가 없어서 못 판다. 아마 10년 후 성균관대학교의 주인이 추사장으로 바뀔지 모른다. 우리나라 사람들 한마디로 방송에 살고 방송에 죽는다.
담배는 백해무익
18년 전, 나는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담배를 많이 태운 골초에 속했다. 눈만 뜨면 담배를 물고 살 정도로 고민과 고뇌를 등에 지고 산 변방의 이름 없는 객이었다.
그러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나는 죽음이 아닌 삶 쪽을 택했다. 한번 살아보자. 사나이로 태어나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술과 담배를 끊었다. 술은 10년, 담배는 18년.
모 아니면 도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독하다. 나도 그 부류에 속한다. 블로그를 보아도 그 사람의 성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내가 만약 블로그를 닫는다면 당연히 비공개 쪽이다. 그게 아니면 늘 열어놓는다. 어차피 내가 쓴 글은 내가 썼지만 내 것이 아니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래서 친구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객들의 집은 안 찾는다. 열어놓은 집들의 글도 못 읽는 판에 대문을 걸어놓고 자물쇠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집들이 있다. 그런 집들을 만나면 미안하지만 안 들어간다.
귿바이!
이제 세월이 흘러 18년. 담배를 태우는 사람을 나는 극도로 싫어한다. 집에 어머니는 이 세상의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과 담배를 태우는 놈으로. 담배가 없으면 생명을 이어갈 수 없었던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은 반대다. 내 폐가 담배연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건방지게 방안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인간을 만나면 내 신경은 극도로 흥분을 하면서 날카로워진다. 담배를 피울 권리가 있으면, 담배연기를 안 마실 권리도 있다! 간접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려 고생을 하는 여자 분들이 많다. 그 원인은 집에서 직장에서 틈만 나면 피워대는 골초들 때문에 생긴 병인 것이다.
담배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
나를 알고 있는 두 사람이 얼마 전 나에게 그랬다. 소통에 문제가 있다고. 앞에서도 썼다. 나는 모 아니면 도라고. 인정을 한다. 소통에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반대일 수도 있다. 나는 근본적으로 인본주의자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다. 거리를 걸어가는데 내 눈 앞에 짐을 가득 실은 리어카가 가고 있다. 나는 외면하지 않고 리어카에 다가가 밀어준다. 동전 몇 푼을 구하기 위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종로에 있는 영풍문고 입구에 가보면 그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적은 돈이지만 천 원을 드린다. 그 사람이 되어보면 그 아픔을 안다.
반대로 횡단보도 앞에 진을 친 채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삼백육십오일 구걸을 하는 패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절대 안 준다. 자기가 신이라고 박박 우기며 젊은 여자들을 마음대로 건드리는 정아무꺼시라는 인간말자에게 구걸한 돈을 갖다 바치는 패들이 있다. 십자가를 앞세워 구걸을 하는 그들에게는 땡전 한 푼 안 준다.
룰라 브라질 전 대통령
브라질을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탈바꿈시킨 대통령이 있다. 룰라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었을 때, 세계의 몇몇 투자가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만약 룰라가 브라질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브라질은 망할 것이고 우리 또한 철수를 할 것이다, 라고 했다. 초등학교 중퇴에 노조위원장 출신인 룰라는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룰라도 훌륭하지만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브라질 국민들이 더 위대하다. 룰라는 약속을 지켰다. 룰라가 대통령에 취임해서 한 일이 브라질 국민의 4분의 1를 돕는 일이었다. 룰라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기부인가?
룰라는 가난한 국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반대당의 사람들을 끌어안은 채 그들을 설득시켜 나갔다. 말이 쉬워 설득이지 아무나 못한다. 그 일이 얼마나 열불이 나는 일인데. 지식 하나 믿고 설치는, 자기보다 못한 인간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서 골탕을 먹일 때, 인격에 금이 간 사람이면 절대 상대방을 못 끌어안는다. 산수갑산 갈 때 가더라도 이런 인간들은 조지고 간다, 하고 냅다 헤딩을 해 머리를 깨거나 업어치기를 해 상대를 땅바닥에 개구리 던지 듯 던져버릴 수 있다. 그런데 룰라는 지도자였다.
범인과 지도자
범인들은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 이 세상과 맞장을 뜨지만 지도자는 지식을 가지고 승부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비전을 가지고 싸운다. 초등학교 중퇴자인, 돈이 없어 첫째 부인을 잃은 룰라는 그러나 지도자였다. 그가 반대당 사람들을 끌어안은 채 설득에 설득을 시키면서 하나로 만든 그 원천은 바로 그의 가슴에 품고 있었던 브라질을 건져올릴 비전이었다. 룰라가 제시한 그 비전 앞에 여도 야도 결국 굴복을 한 것이었다.
프로는 프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프로는 프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프로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는 아마추어다. 똥배짱밖에 없는 아마추어들을 가장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아마추어들은 모든 결정을 몸으로 판단을 한다. 그들의 머리는 너무 가벼워 사고나 고뇌가 없다. 늘 전광석화다. 행동을 한 다음 사고를 한다. 그래서 두 마디에 의해 몸이 움직인다.
반대로 논리와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는 인간들은 일단 머릿속에서 모든 문제들을 믹서를 시킨다. 그리고 결정은 머리가 아닌 가슴이다. 그들의 특징은 항상 룰 안에서 싸운다. 좀처럼 룰 밖으로 나가 싸우지를 않는다. 상대와 싸울 때의 주 메뉴는 이론과 논리뿐이다. 어떤 정책을 놓고 의사당 안에서 싸우다 상대방 의원들을 깔아뭉개고 머리를 내리쳐 피투성이가 되는 꼴을 가끔씩 목격하곤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들이 시시한 범인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브라질의 룰라가 똥배짱밖에 없는 아마추어들을 만나면 그들을 어떻게 설득을 시킬까? 과연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절대와 상대성이 만나면 두 정책이 하나로 통일될 수 있을까?
문제는 환경이다. 환경에 따라 우리 인간은 공자가 될 수 있고, 건달이 될 수 있다. 맹모산천지교가 그것을 말해준다.
유전인자와 환경인자
유전인자도 중요하지만 환경인자도 중요하다. 환경이 그 사람을 규정하기도 한다. 계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직책이 더 중요하다. 차관급의 청와대 수석이 국회의원 정도는 얼마든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호령을 할 수가 있다고 한다. 맹자가 그랬다. 장돌뱅이에서 곡소리꾼으로 그리고 마침내 공부를 하는 학동으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은 달라진 환경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가 싸워서 뛰어넘어야 하는 벽들. 담배, 비계가 낀 돼지고기, 가치관이 다른 그들과의 융합. 나는 과연 저 난공불락의 성을 정복할 수 있을까?
문제는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뒷이야기-룰라는 대인이고 그리고 비전을 제시한 위대한 지도자였다. 편견과 아집과 틀을 깨고 이 세상을 보면 우리 주변에는 거인이 많다. 우리 인간은 보이지 않는 어떤 틀 속에 갇혀 숨을 날숨달숨 쉬고 있다. 사고 또한 마찬가지다. 비전은 없고 지식에 갇혀 성공에만 매달린다. 21세기, 자본과 공산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 이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고, 가르쳐줄 수 없는 창의성이야말로 자본과 공산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확실한 무기다. 틀을 깨어야 한다. 우선 내 머리부터 해체시켜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을 해체시켜야 한다. 그 길이 바로 혁명이다. ‘혁명만이 살길이다.’우리는 진실로 우리가 끌어안고 있는 삶의 공식을 폐기처분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2013414도노강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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