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5일 아침, 아버님이 119에 실려 병원으로 가셨다.
숨을 제대로 못 쉰 아버지.
병명은 폐렴.
응급실에서 긴급 치료를 마쳤을 때 의료진은 2, 3일이라고 했다.
전국에서 모인 우리 다섯 자식들.
2인실에서 4일을 보낸 아버님, 집에 급한 일이 있는 부산 누이부터 철수를 시작했다.
그 다음은 막내, 누님.
마지막 남은 보초병은 나.
올해 아흔 셋인 아버지.
며칠 전 병실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저희 다섯 자식을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지 당신을 정말 존경합니다.
1. 정직한 삶
2. 성실함
3.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은 삶
4. 온몸을 던져 번 전 재산을 친가, 외가, 그리고 이웃에게 다 뺏기고도 불평과 원망을 한번도 하지 않으신 통 큰 아버지.
어머니로부터는 열정과 꿈을 물러받았다.
생과 사의 그 경계에 서 있는 아버지.
20년 넘게 타고 다닌 휄체어.
다시 저 휄체어를 타실 수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아버지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아버지, 따뜻한 봄날 수락산에 봄소풍 갑시다.
제가 냉면 한 그릇 사 드릴 게요.
볼일을 마치면 다시 병원으로 간다.
탄생과 소멸은 피해갈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아버지,
저를 끝까지 지켜봐 주십시오.
저도 삶이 끝나는 그 날까지, 아버지처럼 정직하고 올곧고, 그리고 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두 분 당신,
저희 다섯 자식의 진정한 영웅이십니다!
뒷이야기-아버님의 트레이드마크는 정직이다. 지금 이 날까지 남에게 돈 한 번 빌리는 걸 보지 못했다. 평생 주는 삶만 살아오신 아버님. 친가, 외가, 그리고 어느 이웃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빚잔치로 다 떼이고도 불평과 원망을 하지 않으신 아버님. 어머님은 워낙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강한 분이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무슨 일만 생기면 우리집으로 전부 모여들곤 했다. 오지랖에 넓으신 어머님도 지금 많이 편찮으시다. 척추 4, 5번 협착으로 다리에 통증이 너무 심해 밤에 잠을 못 이루시는 아흔인 어머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실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해서 우리 다섯 자식들은 어머님 구하기 작전에 돌입해 형수와 함께 지극정성을 쏟고 있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2017년까지는 사십시오! 과연 그 약속이 지켜질까? 안타깝게도 이별의 그 라인에 서 있다. 한번 가면 영원히 오지 않을 그 경계에 지금 두 분이 서 있다. 낮에는 아버님 손을, 밤에는 어머님 손을 잡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너무 없다. 그게 안타깝다. 2014228도노강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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