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초파일, 백운대에 오르다

오주관 2013. 5. 18. 12:16

 

 

여기는 백운대 정상. 저 사람들의 표정을 보라, 저마다 치열하게 살아온 역사를. 다들 훌륭하다. 당신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그 역사를 존중하오. 남은 삶, 궤도이탈을 두려워하지 말고 묵묵히 당신들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오신 사월 초파일, 성불하시고 건강하시기를 변방의 이름 없는 객이 빌어ㅡ드립니다.

 

 

 

 

 

 

저 통곡의 벽 쪽으로 내 시선이 가 꽂혔다. 오소, 와서 안의 것을 좀 토해놓고 가소, 처사님. 묵묵부답 걸음을 옮긴다.

 

 

 

도선사로 올라가는 관광버스가 다리가 아플 정도로 쉴 틈이 없다. 마음의 등불을 켜기 위해 도선사를 찾는 불자들.

 

 

 

연초록, 미치도록 좋다. 

 

 

 

 

 

 

 

 버스에서 내린 불자들, 더러는 저렇게 기도를 한다. 올 한 해 다들 무탈하십시오.

 

 

 

 

저게 인생이다. 죽는 그 날까지 저렇게 짐을 진 채 땀을 흘리며 희노애락, 생노병사와 싸우며 간다. 그대 두 청춘,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완주하기 바란다. 

 

 

 

 

 깔딱고개,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고통이면서 희열이다. 희열의 다른 이름이 고통일 게다.

 

 

 

목이 탔다. 들어가니 저 보살님이 아래에 주전자를 가리켰다. 반 정도 차 있는 병에 물을 채웠다. 신도들은 앉아 달콤한 수박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감사 또 감사...

 

 

 

 인수봉, 바라만 봐도 훌륭하다.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남자의 상.

 

 

 

지구의 역사를 품고 있는 억만 년의 산. 눈물이 나려고 한다.

 

 

 

 오라고 하는 이 없지만 저렇게 산을 찾고 그리고 오른다. 사연이 없을 수 없다. 희노애락을 아마 세탁하기 위해 오르고 오를 것이다.

 

 

 

다음 번에 산에 오를 때는 바지를 입고 오르거라. 자네 옆의 찰리, 한국말 잘하대. 그런 복장으로 산을 오르다 윤가 같은 변태를 만나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단다, 야야.

 

 

 

미끄럼을 타고 싶게 만드는 바위 능선.

 

 

 

 

 

 

아침밥을 안 먹은 뒤라 배가 고팠다. 목도 말랐고. 해서 저 라면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는데 흥분이 되어 흔들렸다. 국물 하나 안 남기고 다 먹었다. 김치도. 너무 맛이 좋아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이천 오백 원. 저 라면을 지게에 지고 올라오리라. 

 

 

 

 

 

 

 

 많이도 왔다. 저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인 나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오르나?

 

 

 

 

 

 

오르는 사람이 있으면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다. 내려가면 저들은 또 어디로 존재를 묻을까...

 

 

 

 

 고행 끝에 찾아오는 찰나의 사정! 너희들이 게맛을 알아? 가 아니라 너희들이 이 맛을 알아!

 

 

 

몇 년 전인지 모른다. 그 때는 여러 명이 올랐다. 고향에서 올라온 후배가 둘이었고 옆지기도 있었다. 그 중에 한 후배가 지금 뇌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나이도 제일 어린 후배가. 평소 담배를 달고 살았고, 밤에 잠을 안 자면서 친구와 토론놀이에 빠져 지냈다고 한다. 금연을 하려고 몇 번 시도했다 실패하길 여러 번. 내가 무섭다고 했다. 술과 담배를 한 칼로 베는 형님이 무섭습니다. 이놈아, 똑바로 일어서라, 네 힘으로!

 

 

 

세상을 얻은 기분일까. 도전은 곧 창조다! 젊음이여, 도전 또 도전하시라!

 

 

 

 

 지금은 휴식이다. 그래, 힘들게 올라왔으니 휴식이다. 휴식은 그리고 달콤하다.

 

 

 

 

건너편의 인수봉. 히말리아로 가는 첫 관문. 오르고 또 오르면 마침내 히말리아가 나타나리라. 그리고 그 설산에는 한국의 산악인이 묻혀 있다. 박용석, 신동민, 그리고 강기석. 당신들이 있기 때문에 오늘 이 시간에도 이 땅의 젊은이들이 불굴의 정신으로 도전에 존재를 겁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상에 선 사람들. 베리 굳! 서본 사람만이 그 기분을 안다. 그러나 너무 짧다. 사정을 하면 욕망이 금방 사라지듯이 정상에서 찾아오는 그 달콤함이 금방 바람에 실려 날아간다, 저 산 너머로...

 

 

 

목이 메어 저 감자를 다 못 먹었다. 잘못 태어난 인생이다. 프로그램이 잘못 입력이 되는 바람에 빼도 박도 못하는 인생이 되어버렸다. 도로 빠꾸가 없는 인생, 목하 고민 중이다.

 

 

자네, 어디로 가시는가? 그 길을 알고 있기라도 하나? 자꾸 눕고 싶은데 일어나라고 야단이다. 외톨이. 권력욕, 목숨, 지지세력. 지금은 세가 없지만 그 옛날에는 제법 있었다, 반은 나를 지지했고 반은 나를 죽이고 싶어했다, 그들은.

 

 

 

 

 

 

정상에 오르면 금방 사람들은 그 자리를 떠난다. 아직 한번도 정상에 오래 머무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땀을 흘리며 올라온 정상, 그런데 그 자리에 머무는 시간은 너무 짧다. 그것이 정상이다. 자리바꿈이 있어야 순환이 되는 것이다.

 

 

 

모래알 만큼이나 생김새와 개성이 다른 사람들. 뜯어보면 전부 조각품이다. 다 잘 생겼다. 다 주연급들이고. 조연급은 한 사람도 없다. 기가 막히게 만들었다, 조물주가.

 

 

 

암벽을 타는 저 사나이들은 어떤 기분일까. 고독할 것이다. 외로울 것이다. 아니다, 행복할 것이다. 나와 싸울 대상이 있기 때문에.

 

 

 

다들, 혼신을 다하고 있다. 한번뿐인 인생, 미쳐라! 그리고 갈 때는 존재를 전부 태우고 가라! 인생은 무! 인 것이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절정의 순간. 베리 굳이다! 더 할 말이 없다. 오늘 이 시간은 당신들 것이다. 축하합니다! 늘 행복하십시오, 건강하시고.

 

 

 

 

 

 

올라올 때보다 내려갈 때 조심해야 한다. 마음을 놓으면 안 된다. 거친 풍파와 싸우고 돌아온 선원들이 배가 항구에 도착하고 닻이 내려진다. 이윽고 하선. 그런데 마음은 육지, 그래서 헛다리를 짚는 바람에 미끄러져 바다에 풍덩 빠진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 둘 있었다, 고향에서.

 

 

 

우리는 아직 하산 안 할 것입니다. 조금 더 달콤한 휴식과 친구 하렵니다. 

 

 

 

아직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많다. 이르고 늦을 뿐이다. 그런데 지상에서는 먼저 잡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며 자신을 태운다. 한 발 앞서 보아야 그 자리가 내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생결단 목숨을 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 한 그림인데...

 

 

 

 

 

 

뒷이야기-산장은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둥지다. 산장은 충전을 시켜주고, 배가 고픈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고, 목이 마른 사람들에게는 목을 축여주고, 그리고 술배가 고픈 사람들에게는 술배를 채워준다. 어제 내 술배를 채워준 곳은 도선사 초입에 늘어선 노상 음식점이었다. 막걸리 한 병이 내 피곤을 씻어주었다. 파김치도 별미였다. 도선사에서 절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의 끝이 달나라보다 더 멀어 보였다. 내 마음에 등불을 밝혀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는 초파일이 되십시오. 하산길의 내 몸은 자주자주 떨렸다. 2013518도노강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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