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아버지 첫 제사

오주관 2015. 4. 6. 11:19

 

 

어제 4월 4일, 아버님 첫 제사였다.

형수님이 제수거리를 풍성하게 준비했다.

아버님이 살아생전 가장 좋아하신 음식이 있다면 회다.

그 다음이 과일이고.

회는 포항의 막내가 늘 공수를 했고, 첫 제사 때도 준비를 했고, 그 회를 우리 식구들이 정말 맛있게 먹었다.

 

 

 

 

 아버님 젊은 시절의 사진이다.

아버님은 일본 해군에 근무를 하셨다.

오른쪽이 이모부.

이모부는 젊은시절 포항시청에 근무를 하셨다.

위암으로 세상을 일찍 떠나셨다.

 

 

 

 

첫 제사를 지켜보신 어머니.

올해 92세다.

2년 전 찾아온 척추협착증 때문에 걸으시지를 못하고 아버님처럼 휄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요즘 천사 한 분이 매일 집에 오셔서 어머님을 도와주고 있다.

그 분은 천사가 맞다.

어머님 정신은 아직도 카랑카랑하시다.

 

 

 

 

아버님이 오셨을까?

오셨을 것이다.

와서 우리 식구들을 다 보셨을 것이다.

 

 

 

안경 낀 사람이 형님이다.

평생 기상청에서 근무를 했다.

피가 어디 도망을 가나?

올곧고 정직하게 공무원생활을 했다.

영포라인이고 이명박과 동문인데도 임기가 끝나는 그 날까지 그 조직을 외면하고 살았다.

나하고는 좀 다르다.

나는 뜨거운 피를 가지고 있고, 형님도 피가 뜨거겁지만 나보다 착하고 내향적이다.

누님과 나, 그리고 막내가 피가 뜨겁다.

막내가 포항시 시의원으로 진출하면 포항시가 맑고 밝고 그리고 투명한 사회가 되는데 한몫을 하지 싶다.

그 생각을 지난해에 했다.

막내 같은 사람이 이 사회에 많아야 한다.

막내는 제이의 김부선이다.

그 점이 좀 아쉽다.

그 옆이 형수이고, 누나과 조카 그리고 조카 아이들이다.

그 외 20여 명이 참석을 했다.

 

아버님이 우리 5남매에게 물려준 유산이 있다면 딱 하나, 정직이다.

남에게 피해를 한번도 입히지 않고, 남에게 전 재산을 다 뜯기신 분이다.

그렇지만 한번도 원망 같은 걸 뱉으시는 걸 보지 못했다.

길거리에 천만원짜리 수표나 지폐가 있다.

우리 5남매가 주웠다.

십중팔구 그 수표와 지폐를 파출소에 가 신고했을 것이다.

그게 우리 5남매다.

내 것이 아니면 취하지 마라!

 

어머님은 열정이 대단한 분이다.

오지랖도 넓어 동네 아주머니들이 많이 따랐다.

리더십과 열정, 그리고 창의성을 두루 갖추신 분이다.

정말 깨끗하신 분이다.

눈이 보통 높으신 분이 아니다.

 

 

뒷이야기-효는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다. 따뜻한 마음이다. 우리 5남매는 지금 아버님에게 못다한 효를 어머니에게 쏟고 있다. 형수와 누나 그리고 막내가 어머님에게 지극정성을 다하고 있다. 막내는 대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신랑인 이서방은 작년 12월 공무원을 퇴직했다. 아직 공부를 마치지 못한 막내아들 하나를 돌보기 위해 막내가 다시 직업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달에 두 번씩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와 어머님를 이틀 돌보고 돌아간다. 두 번은 포항으로 두 번은 서울로 오가고 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 막내가 오는 날, 누님도 지하철로 온다. 어머님의 낙이, 두 딸과 보내는 그 시간이다. 나는 일 때문에 합류를 못해 보통 미안한 게 아니다. 어제 제사을 마치고 막내는 자기 신랑과 대구로 내려갔고, 누나와 나는 오후 4시까지 어머님과 같이 지내다 왔다. 나올 때, 나는 어머님 손을 잡았다. 밥, 열심히 챙겨 드십시오. 오야, 니도 건강해라. 201545도노강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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