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오주관 2014. 7. 8. 14:04

 

 

너무 많이 걸어온 길

생각해보니, 참 많이도 걸었다.

본적은 땅 위의 하늘이고, 현주소는 길 위였다, 지금까지.

어제도 걸었고, 오늘도 걷고 있고, 내일도 또 걸어 갈 것이다.

 

어제, 그 시간의 우리 두 사람은 도서관에 있었다. 옆지기는 아침밥을 안 먹은 내 배를 채워주기 위해 도시락과 과일을 가져왔다. 그런데 과일을 야금야금 먹어치운 사람은 옆지기였고, 나는 타는 갈증을 다스리기 위해 허공을 향해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를 마구 쏘아대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가슴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후 찾아온 침묵.

 

만약 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으면, 나를 태운 재를 이곳에 뿌려다오.

참 좋은 곳이에요.

아마 내 영혼은 이곳에 늘 머물 것이다.

당신의 열정이 부럽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가기도 해요.

어쨌든 이곳은 내가 지금까지 가장 오래 머무른 장소다.

 

 

 

북한산에서의 파티

도서관을 나온 우리는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북한산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즐겨 가는 북한산의 반대 북한산이었다. 입구에서 큰 팩 맥주 한 병, 감자튀긴 것 하나, 컵 두 개. 그늘이 있는 벤치로 갔다. 따라 마셨다. 다시 마셨다. 또 마셨다. 술은 내 친구가 맞다. 이놈이 있어 요즘 긴긴 밤이 조금 위로가 된다.

 

좀 더 지켜보자.

침묵이 이해가 안 되어요.

그러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터널이 너무 길잖아요.

답답한 사람은 나다.

왜 그들은 답을 안 할까요?

캐릭터가 너무 강해? 아니면 몰이해.

몰이해라면 그럼 대안은?

내가 중심으로 쳐들어가는 수밖에.

 

채워지지 않는 극렬한 갈증. 배고픔은 밥이나 술로 채울 수 있지만, 타는 가슴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는 내 가슴. 그 갈증이 나를 자주자주 돌게 하고, 그리고 자주자주 나를 주저앉게 만들곤 한다. 마지막 잔.

 

파티는 그리고 끝이 났다.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헤어졌다. 원래는 한 방향으로 가기로 했는데, 내 자신이 너무 싫어 옆지기에게 손으로 저 건너편으로 가라고 했다. 옆지기는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나는 의정부로, 옆지기는 불광동으로. 미안하네. 난들 왜 당신과 같이 안 가고 싶었을까? 내가 싫었던 것이다.

 

의정부를 거쳐 도봉산에 온 나는 갈증을 채우기 위해 마트를 찾았다. 마트 앞 의자. 빈속에 차가운 맥주가 흘러들어가자 다시 날을 세우는 내 몸의 신경세포들. 마셔도 채워질 리 없는 갈증. 가방을 멘 나는 터덜터덜 걸어 창포원으로 들어갔다.

 

 

 

창포원 전속가수를 만나다

그곳 벤치에 앉아 땀을 식혔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다시 일어나 공원의 중심으로 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타소리. 다가가니 오십 중반의 사내가 기타연주로 내 나이가 어때서를 부르고 있었다. 옆에는 중년의 여인 셋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사내 등 뒤 벤치에 앉은 나는 사내가 부르는 노래를 감상했다. 올라가지 않는 고음을 기타연주로 커버를 하는 중년의 그 고음이 싫지가 않았다. 연주와 노래에 혼신을 다하고 있는 그 모습 자체가 원더풀이었다.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들려오는 노래. 이번에는 왕가네 가족들의 주제곡을 부르고 있었다. 사랑 찾아 인생을 찾아~ 하루 종일 숨이 차게 뛰어 다닌다~ 그래, 왕가네 식구들이 있었지. 회사가 망하는 바람에 택배기사로 전락을 한 사위. 그 남자의 아내는 입만 열었다 하면 나, 왕년에 미스코리아 출신이야, 이거 왜 이래! 남편 택배를 뭐로 아는 여자. 다시 옛날의 대표직으로 돌아간 사내. 왕년에 미스코리아 출신이 콧물눈물 다 빼며 나 다시 한 번 용서해주면 안 돼? 응? 끝났는가 했는데, 이번에는 윤복희의 여러분이 흘러나왔다. 나는 어린 시절 윤복희 씨를 해병 1사단 남문이 있는 내 고향 용덕동 4반 천이모라고 부르는 그분의 집에서 본 일이 있다. 해병대에 근무 중인 오빠 윤항기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동생 윤복희 씨를.

 

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내가 위로해줄게~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내가 눈물이 되리~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내가 내가 등불이 되리~ 그래, 험한 밤을 비추는 등불이 되고 싶었고, 길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창포원의 전속가수의 고음은 거의 발악에 가까웠다. 깔딱 고개에서 엔진이 연기를 내뿜으며 타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내의 넘어가는 저 발악은 발악이 아니라 열정과 혼신의 몸부림이었다. 기타는 싸구려였지만, 기타를 다루는 실력은 프로였다. 그래서 싸구려 기타가 그의 손에서 작두를 타고 있었다. 접신을 한 사내, 드디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순간 내 몸도 부르르 떨렸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만약 나에게 접신이 이루어지면 창포 연못에 풍덩! 내 몸을 날릴 수도 있는데? 간만에 내 몸이 떨리네! 그 옛날 필하모니에서의 나는 자주자주 접신을 하곤 했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른다. 오십대의 여자 관객들도 가수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있었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사내, 정녕 행복해 보였다. 아니, 행복했다. 나도 길에서 내려오면 저 사내처럼 행복해질까?

 

중년의 여러분을 뒤로 하고 나는 어둑어둑한 창포원을 나왔다.

가야지.

내일도 해가 떠오르면 또 길을 가야지.

내일은 그 길에서 벗을 만날 수 있을까?

 

 

뒷이야기-사막을 걷는 사람이 내내 떠올리는 곳은 오아시스일 것이다. 타는 갈증과 피곤을 풀 수 있다. 만약 오아시스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사막을 걸을까?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오아시스가 아닌 그 너머이다. 그런데 가도 가도 오아시스가 나타나지 않는다. 타는 갈증 때문에 그곳까지 갈 수 있을까? 길이 끝나는 그곳이 내가 도착해야 할 종점이다. 어쨌든 날만 새면 나는 다시 일어나 길을 걸을 것이다. 그렇게 가는 거다. 201477도노강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