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생활 43일.
요양원 생활 7일.
그 날 밤 요양원에서 긴급호출이 있었다.
혈압이 많이 떨어져 보호자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날 밤은 누님이 지켰다.
내일은 내가 지키기로 하고.
그 다음날 4월 4일 아침 요양원에 가보니 아버지는 가쁜 숨을 쉬고 계셨다.
병원으로 모시기로 하고 119를 불렀다.
생의 끈을 놓지 않고 버티시던 아버지.
나는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 아버님 귀에 대고 다시 속삭였다.
아버지, 힘을 내소!
다시 일어나셔야지요.
병원으로 모실 테니 마음을 단단히 잡수세요.
119가 수락산을 돌아 동부간선도로에 들어섰을 때,
그 때까지 아버지 발바닥의 용천을 지압하고 있던 나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는 아버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숨을 쉬지 않았다.
그 때의 시간이 오전 10시 30분이었다.
병원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숨을 거두셨다.
의사들이 그랬다.
심장, 맥박 모두 정지했습니다.
심폐소생을 할까요?
아닙니다.
아버지와 30여 년을 같이 한 시계.
30여 년 전, 포항 매제가 선물한 시계.
아무리 좋은 시계를 장만해도 아버지는 이 시계만 고집했다.
월과 일이 나오는 시계.
아직도 멈추지 않고 가고 있는 시계.
아버지 본인 당신의 생명시계만 딱 멈추고 말았다.
장례식장.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오셨다.
부산, 포항, 경기도, 서울, 그리고 성당에서 오셔서 아버지를 조문했다.
심지어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30여 명이 와 조문을 했다.
4월 7일,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마치고 도착한 서울시립승화원.
1시간 후, 아버지의 육신이 한 줌 재로 사라졌다.
그 날 오후 고향으로 떠난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잠들어 있는 무덤에 뿌려졌다.
아버지,
아버님은 저희 5남매의 우상이었습니다.
아버지, 저를 아시지요?
그 와중에 아침에는 도서관, 오후에는 병원에 가곤 했습니다.
정신을 일도한 그 작업이 어제 비로소 끝이 났습니다.
아버지,
정말 고마웠습니다.
정직, 성실, 그리고 베품을 저희 5남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저도 아버님이 물려주신 그 유산을 우리 이웃들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버님, 이제 편히 쉬십시오.
어머님 잘 돌봐 드리겠습니다.
뒷이야기-4대가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40년 만에 보는 친척 동생들도 있었다. 생과 사는 둘이 아닌 하나다. 그 날 아침 아버님이 놓지 않고 있던 생의 끈을 마침내 놓아버렸을 때, 아, 나도 저렇게 놓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아버지 다리를 만지면서 그래, 놓으면 된다. 생은 사요, 사는 생이다. 2014410도노강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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