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 셋인 어머니
어머니는 올해 아흔셋이다. 요즘, 일주일에 4일을 어머니 방에서 같이 잠을 잔다. 어머니는 침대에서 주무시고 나는 침대 바로 밑에서 잔다. 밤에 주무시다 소변이 보고 싶으면 침대 머리맡에 있는 등긁이로 나를 툭툭 깨운다. 야야! 하고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리면 몸이 그냥 눈을 뜬다. 단련이 그렇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척추협착증으로 다리가 불편하다. 혹시 밤에 일어나다 잘못해 넘어져 골절상을 입으면 큰일이다. 노인들 사고사의 으뜸이 낙상이다. 약속을 많이 했다. 절대 미안해 할 필요 없기! 제가 쿨쿨 자더라도 반드시 저를 깨울 것! 그것이 형님과 형수는 물론이고 우리 5남매를 돕는 길입니다. 오야, 알았다.
여름에는 밤에 일곱 번 정도 깼는데, 지금은 세 번 정도 일어나면 질기고 긴긴 밤이 끝나고 마침내 아침이 밝아온다. 처음에는 잠을 못 자 낮에 비몽사몽이었는데, 지금은 숙달이 되어 크게 불편하지 않다. 내가 어머니와 같이 잠을 자기로 한 것은 옆지기와 형수 때문이다. 옆지기는 직장 때문에 처갓집에서 다닌다. 옆지기도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처갓집에서 다니다 금요일 밤에 온다. 금요일 밤에 집에 오면 일요일 저녁에 다시 친정으로 돌아간다. 나는 일요일 밤을 나 혼자 보내고 다음날 월요일 저녁 다시 형님 집으로 간다. 순전히 형수 때문이다. 형수는 35년을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쉬운 일이 아니다. 어머니 때문에 고생이 많은 형수의 그 수고로움을 잠시나마 덜어주기 위해 내가 대타로 나서는 것이다.
아흔 셋인 어머니는 우울증 약을 오랫동안 먹다 내가 간 이후로 그 약을 끊었다. 나와의 소통으로 마음과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된 것이다. 대화와 소통이 최고 보약이다.
아침일과
아침 7시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어머니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운다. 욕실에 가 따뜻한 물에 수건을 씻어주면 어머니는 얼굴을 닦는다. 나는 빗으로 어머니 머리를 빗기고 양말을 신긴다. 그리고는 안경을 끼워드리고 휠체어에 태워 식탁으로 간다. 밥을 마주한 어머니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고 성호를 긋고는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으면서 어머니와 나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침샘이 소화제다. 대화를 하다보면 밥을 몇 숟가락 더 먹게 된다. 식사 후 어머니와 나는 커피를 한잔씩 먹는다. 여름에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드려도 안 마셨다. 이제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그만큼 몸과 마음이 안정을 찾았다는 것이다. 차를 끝으로 완전무장을 한 나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한다. 오늘 하루도 요양사 아주머니와 잘 보내세요. 오야, 니도 잘 보내고 오너라.
금요일 아침
금요일 아침 집을 나올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이야기를 한다. 오늘 집사람이 집에 옵니다. 가서 오늘 금요일, 내일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을 집사람과 보내고 월요일 저녁에 올게요. 그 때까지 밥 열심히 잡숫고 건강하게 지내세요. 니가 수고가 많다. 수고는요. 그래, 잘 있을게. 니도 잘 보내고 오너라. 네.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는 2년 전 아흔셋에 돌아가셨다. 그 날 아침 아버지는 119 안에서 누나와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돌아보니 후회뿐이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모시지 못한 그 불효. 우리 모두는 한 번 뿐인 삶이다. 그 정신을 모아 어머니를 봐드리고 있다. 어머니는 자금 여러모로 최상의 컨디션이다. 전에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정신건강도 좋지 않았다. 노인이, 밤에, 홀로 잔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그것도 몸이 불편한 분이면 그 고통과 외로움은 엄청 크다. 그동안 떨어져 잠을 자면서도 마음과 몸이 편하지 않았다. 홀로 밤과 싸우고 있을 어머니가 떠올라서.
지금은 최상의 컨디션이다. 내가 오고부터 밥도 열심히 먹고, 식사 후 커피도 맛있게 드신다. 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는데, 내가 오고부터는 아침커피를 마신다. 커피를 하루에 한잔씩 마시면 좋습니다. 특히 당이 모자랄 때, 달달한 커피를 한잔 마시면 힘도 생기고 좋습니다. 이상하제, 요즘은 커피가 달다. 일체유심조라고 했다. 마음이 천국이요 지옥이다.
옆지기의 문자
어제 도서관에서 집으로 가는데 옆지기가 문자를 보냈다. 찰떡을 사 어머니와 같이 드세요. 얼마 전,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한쪽 귀에 이명이 찾아왔다. 내 오른쪽 귀는 오래전에 반 베토벤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를 반 오토벤이라고 한다. 남은 귀마저 이명이 오면 그럼 나는 오토벤이 되나?
안국동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갔다. 왼쪽 귀가 수상하다. 대포 터지는 소리가 나고, 소리가 안 들린다. 확대경으로 귀를 보고는 이상 무! 라고 했다. 그러면서 반 베토벤인 그 귀에서 머리카락 하나를 꺼냈다. 그것뿐이었다. 나는 소리가 안 들려 미치겠는데, 이상 무라니! 이 원장 나리가 미국의 유명의과대학교에 연수까지 받고 온 전문의가 맞나? 신뢰가 안 갔다.
옛날 목이 아파 한 번 간 적이 있는 동네 이비인후과에 가 이만저만하다고 설명을 하자 양쪽 코에 푸, 하고 바람을 집어넣었는데 보니 침이었다. 잠시 후 침을 뺀 코에 기구를 넣어 바람을 집어넣었다. 원장이 나를 보며 뚫렸지요? 하고 물었다. 코에 압력을 넣으며 흥, 했다. 반반이었다.
며칠 후 한의원에도 갔다. 만약 오토벤이 되면 이제 도전은 막을 내려야 한다. 절박했다. 원장 왈, 이명이라는 게 완전히 낫지는 않습니다. 낭패네! 귀 주변에 찜질을 하고는 침을 열댓 방 놓았다. 아파도 참았다. 참고 기다리는 데는 이력이 난 사람이다. 다음날 혹시나 싶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첫째, 신경을 끄라. 일에 몰두하라. 이명에 좋은 음식은 추어탕과 찰떡이다.
골이 빌 때는 찰떡을 먹어라
옛날에 어머니는 골이 흔들릴 때마다 찰떡을 먹곤 했다. 찰떡으로 골을 메운다고 했다. 민간요법은 시간이 만든 지혜다. 찰떡을 먹자. 원기가 약해 이명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교주님인 황성수 박사에게 문의를 해야 하나? 교주님, 채식을 하면 원기가 떨어집니까? 신도님, 신도님은 몸에 기가 부족한 게 아니라 마음의 기가 좀 허하네요. 절대 그런 허위과장광고에 속지 마십시오. 저를 보십시오, 원기가 떨어져 있나 안 떨어져 있나! 현미 생쌀을 씹어 먹고 있는데도 이렇게 건강하지 않습니까? 교주님, 신심이 잠시 외출을 한 저를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고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그 때부터 저녁에 찰떡을 사와 어머니와 나누어 먹는다. 그 덕인지 몰라도 멍멍하던 귀가 많이 회복되었다. 추어탕은 채식 때문에 안 먹는다. 도전은 그리고 ing이다!
고향의 두 오촌당숙모
고향에 오촌 당숙모님이 두 분 있다. 한 분은 오래 전부터 녹내장으로 고생을 하고 있고, 한 분은 아직 건재하다. 녹내장은 녹내장만 걷어내면 되는데, 수년째 수술을 하지 않고 있다. 자식이 안 해 주니 도리가 없는 것이다. 6남매가 그럭저럭 사는 편이다. 맏이격인 그 동생이 그렇게 사는 것도 옛날 당숙부와 당숙모님의 억척스러움 때문이다. 논과 밭을 제법 많이 자식들에게 물려주었지만, 답이 없다! 자식들이 전부 나 몰라라 하니 방법이 없다. 다른 한 분은 도토리묵을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다. 가을만 되면 온 산을 다니면서 도토리를 주워 와 묵을 쑤는데, 그 맛이 일미다. 나도 고향에 있을 때 몇 번 얻어먹은 기억이 있다. 중국산도 아니고, 밀가루 반 도토리 반도 아닌, 오리지널 도토리묵이다.
작년에 막내가 두 분 당숙모가 포항의 한 요양원에 같이 있다고 했다. 그해 여름 어머니가 포항 막내집에 내려갔을 때 막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요양원에 갔는데, 두 분이 어머니를 붙잡고 눈물을 크윽 크윽 흘렸다고 했다. 형님, 형님만 고향에 계셨어도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 안 되었을 건데. 형님, 여기 꼴을 한 번 보소, 이게 돼지우리이지 집잉죠. 우리가 와 이런데 와 있는지 모르겠니더, 형님. 두 분은 살아생전 요양원 신세를 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으리라. 내가 집이 없나, 밭이 없나, 논이 없나, 쌀이 없나, 된장이 없나? 단지 녹내장 때문에 앞이 안 보인다 뿐인데. 동세야, 나도 내 방이 없나, 내 사지가 절단이 났나? 내가 지금 집에만 있으면 산에 가 도토리를 주워 묵을 쑬 수 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고! 막내는 두 오빠와 언니가 저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오빠야가 언제 한 번 내려오면 조재뿌래라! 야야, 배운 인간도, 재산을 많이 물려받은 인간들도 버리는데, 어떻게 하노? 배운 인간들도, 못 배운 인간들도 이제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내는 게 대세가 되어버렸다.
박근혜식 늙은이 정리해고
결론은 두 집 동생 부부 때문이다. 이유 같지 않은 그 이유를 한 번 들어보자! 어머니 때문에 어디 마음 놓고 여행을 다닐 수가 있나, 어머니 때문에 친구들과 오붓하게 만나 술이라도 한잔 마실 수가 있나, 어머니 때문에 어디 주말에 자식들과 모여 파티를 열 수가 있나, 어머니 때문에 어디 맛있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있나? 정말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보, 마, 두 눈 딱 감고 어무이 요양원에 보내시더. 목소리 낮차라, 누가 듣는다. 밤인데 누가 듣능죠. 주위에 눈은 어예고? 뭐 동민들이 우리 밥 먹여주능죠? 신경 쓸 거 없니더. 아아들은? 갸들은 안 보고 있나? 나중에 근마들이 우리도 아버지 어머니 요양원에 보내뿌시더? 옛날에 할머니도 요양원에 보냈다면서요? 나중에 갸들이 그라머 어예노? 수가 있니더. 무슨 수? 우리는 죽을 때까지 돈을 주지 말고 쥐고 있으시더. 돈만 야무지게 쥐고 있으면 아아들도 마음대로 못하니더. 하, 골 아프네! 뭐가 아픙죠? 박근혜 보소, 젊은이도 정리해고, 늙은이도 정리해고를 쉽게 안 시키능죠. 지금은 갑의 세상이지 을의 세상이 아니시더.
맞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박근혜식 늙은이 정리해고이다. 말이 요양원이지 현대판 고려장이다. 두 분 당숙모 중 녹내장으로 고생을 하던 당숙모가 지난 가을에 돌아가셨다. 막내가 그 사실을 전화로 알려주었다. 어머니는 아직 모르고 있다. 두 분은 어머니보다 서너 살 밑이다.
내가 곧 효이고 양심이고 거울이다
우리 두 사람이 불편하고 귀찮아서 더는 못 모시겠다! 우리도 마음 놓고 세계여행 좀 다녀보자, 우리도 마음 놓고 친구들과 좀 놀아보자. 우리도 마음 놓고 우리 자식들과 오붓하게 파티라도 좀 열어보자! 요즘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이 땅의 많은 부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 주제이다.
효에 대해, 고뇌를 하고 사고를 해야 한다!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가며 키운 그 정성을 잊으면 안 된다!
부모님은 나를,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 준 위대한 하느님이다!
뒷이야기-시대가, 삶이, 우리를 자꾸 불효로 만들고 있다. 도시에 살고 있는 맞벌이부부가 자식과 부모님을 키우고 모시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제 농경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 3, 4차 산업이 만들어내고 있는 그 후유증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가 그 방법론을 찾는데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10, 20년 후 우리가 가야할 현대판 고려장을 피할 수 있다. 오늘은 우리 부모님이지만, 내일은 바로 우리가 가야 할 곳이 저기 저렇게 입을 쩍 벌린 채 기다리고 있다.2016120해발120고지아지트.
'21세기 화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옥에서 보낸 지난 일주일 (0) | 2016.03.09 |
---|---|
테러방지법-필리버스터 (0) | 2016.02.25 |
내가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그 이유 (0) | 2015.12.09 |
마크 저커버그, 자신의 재산 99%를 사회에 기부하다 (0) | 2015.12.03 |
세계와 대한민국이 살아남으려면 (0) | 2015.1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