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속초에 가다

오주관 2016. 6. 7. 13:53

 

 

지리산으로 가는 열차는 없었다

6월 3일 밤, 예정대로 지리산으로 가기 위해 인터넷에 들어가 기차예매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자리는 없었다. 구례역으로 가는 기차표는 있다고 믿었던 내 불찰이었다. 빈 자리는 없었다. 순천역을 검색해봐라. 순천역도 없었다. 남원역도 마찬가지였다. 노고단에서 하루 일박하기로 생각했던 그 부푼 생각을 이제 물리는 수밖에. 노고단에서 쏟아지는 별을 한 번 보고 싶었는데? 야무진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잘못했지요? 상감, 잘못했습니다. 하하하, 죄습니다! 다른 코스로 찾아봅시다.

 

고민 끝에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속초뿐이었다. 다행히 아침 일찍 떠나는 증편 버스가 한 대 있었다. 가자, 속초로. 울산바위라도 오르자. 그렇게 속초에 도착한 우리는 울산바위를 뒤로한 채 북으로 북으로 기수를 돌려 올라갔다. 도착한 곳은 이북 고성군이 아닌 이남 고성군의 최북단. 저 사진의 금강산콘도도 만원.

 

 

 

 

기수를 남으로 돌릴 수밖에

그 마을에 있는 슈퍼라도 들어가 늦은 점심을 해결하자. 식당도 없었다. 금강산 관광이 막히자 길가의 상가들이 전부 폐허가 되었고, 그리고 어디론가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버렸다고 우리에게 유효기간이 엄청 지난 컵라면을 제공한 가게 할머니가 말했다. 금강산과 개성공단 폐쇄는 정말 아마추어들이나 할 수 있는 저급한 하수들의 발상이다. 어쨌든 원래의 컵라면 맛이 아니었다. 추측하건대, 금강산 관광이 막히고, 손님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가게도 시들해졌다. 있는 라면도 먼지를 덮어쓴 채 그렇게 하 세월이 흘러간 것이었다. 가지고 간 현미김밥을 먹고 남은 라면은 백구라고 하는 강아지에게 주자 미친 듯이 핥고 빨았다. 정만 고픈 게 아니라 맛도 고팠구나! 백구 밥그릇을 보니 먹다 남은 음식이 꺼멓게 변해가고 있었다. 85세의 민박집 할머니는 민박도 가게도 작파한 듯했다. 그냥 있는 거 손님이 달라고 하면 주고, 안 팔아도 그만이었다. 할아버지와는 20년 전에 헤어졌는데, 원체 술을 좋아해 빨리 헤어진 게 너무 고맙다고 했다. 이 가게도 내가 돈을 벌어 지었고, 땅도 한 천 평 정도 있는데 죽으면 처분하라고 했단다 자식들에게.

 

1박 2일을 끝으로 돌아온 서울

돌아오는 아침, 우리는 백종원 씨가 소개를 한 3대천왕 물회식당 중에 하나인 7가지 해물을 넣어 만든다는 그 물회집 물회나 한번 맛보고 가자고 그 집을 찾아갔는데, 아침부터 식당 앞에 줄이 까마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제 백종원씨는 텔레비전에서 추방을 해야 한다. 전국을 다니면서 3대천왕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하는 그 프로 때문에 선의의 식당들이 줄도산할 처지에 놓여 있다. 무슨 근거로 3대 천왕에 들어가는지 그 선정기준을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줄을 서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우리는 그 집 앞에 있는 전주해장국집으로 들어가 나는 순두부를 옆지기는 콩나물해장국을 먹었는데, 속이 시원했다. 나는 옆지기가 즐겨먹는 새우젓을 못 먹는다. 죽으나사나 멸치젓 아니면 오징어젓뿐이다. 옆지기는 새우젓과 이면수나 바지락도 좋아한다. 경상도는 이면수도 바지락도 낙지도 없다. 세 살 버릇이 무서운 게 맞다. 서해와 동해는 그래서 식성이 다르다.   

 

속초에 갈 때 차가 너무 많이 막히는 바람에 장장 버스 속에서 5시간 30분을 보냈다. 허리가 두동강이 나는 줄 알았다. 빨리 속초까지 고속철도가 들어서야 한다. 너무 지루하다. 1시간 30분으로 주파를 하는 고속철도가 들어서면 속초는 관광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버스는 아니다, 자가용도 아니고.

 

 

 

 

평양냉면 집으로

고속버스로 서울에 도착을 한 우리는 아픈 허리를 감싸안은 채 지하철로 회룡역까지 가는 감행군을 했다. 마침표를 찍어줄 그 무엇이 필요했다. 지리산을 덮어줄 그 무엇이 무엇일까, 라고 로댕이 되어 생각을 해보니 평양냉면이 떠올랐다. 가자 그곳으로!

 

생략하고, 평양냉면을 먹는 법. 언뜻 보면 꾸정물에 면을 담근 것처럼 보여도 맛은 깊이가 있다. 평양냉면 신도들에 의하면 우선 면부터 건져 먹으면 안 된다. 탁자 위에 냉면그릇이 놓아지면 제일 먼저 경건한 자세로 몸을 바로한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냉면그릇을 쥐고 육수부터 천천히 목구멍 속으로 들이킨다. 쭉 들이키고 나면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워메, 환장하게 좋구먼! 그런 다음 젓가락으로 면을 건져 후루룩 먹는다. 이번에는 면 대신 제육을 한 점 쥐고는 소주 한 잔을 쭉 들이킨다. 술이 넘어가면 제육을 입안에 넣어 오물오물 씹는다. 평양냉면을 먹을 때는 제육이나 수육을 곁들이면 금상첨화라고 한다. 어느 비오는 날 그 집에 가면 낯익은 연예인 몇명을 발견하곤 한다. 한달에 6번 정도 오는 냉면 마니아이자 술꾼이며 주당들인 그들이 한쪽 구석에 앉아 평양냉면과 제육과 소주를 상대로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고 한다.

 

 

 

 

10분 고행 끝에 만난 평양냉면

줄을 서 10분 정도 기다리자 들어오십시오, 하고 문이 열렸다. 10분 후, 우리 앞에 놓인 허연멀건한 평양냉면. 나는 두 손으로 스탠그릇을 쥐고 육수부터 쭉 들이켰다. 슴슴한 육수. 간이 진하지 않고 닝닝하면서 슴슴했다. 이게 중독의 세계로 인도하는 마약이라고 한다. 면 좀 더 주실라요, 하면 얼굴을 약간 찌푸리지만, 육수 좀 더 주십시오, 하면 얼굴을 마구 찡그린다고 한다. 슴슴하면서 닝닝한 육수를 만드는데 꼬박 낮과 밤 3일 걸린다고 한다. 저 한 그릇이 10,000원이다. 메밀과 밀가루가 8대 2. 냉면식당을 개업하기 위해 냉면 육수비법 배우는데 4천에서 5천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영돈 피디에 의하면. 그런데 기절할 일은 그 비법육수라는 게 물이 8이요, 다시다가 2이다. 그 비법 배우는데 4, 5천만 원이다. 평양냉면 육수는 물에 다시다를 넣고 만드는 게 아니라 한우쇠고기(양지와 사태)를 넣고 하루를 푹 끓인 다음, 흰천으로 세 번 받쳐가며 기름을 제거한 그 끝에 비로소 냉면 육수가 탄생이 된다. 해서 냉면값이 와 이래 비쌉니까? 하고 항의를 하면 그 현장에서 추방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냉면 마니아들이 전했다. 수고에 비하면 안 비싸다는 것이다.

 

지리산과 속초가 우리 두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는데, 그 지친 육신을 평양냉면이 어느 정도 풀어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지상파는 물론이고 종편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남과 북으로 다니며 연일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백종원 씨, 이제 텔레비전에서 추방해야 한다. 세프도 아닌 그가 방송에서 즐겨 사용하는 양념은 딱 하나, 설탕이다. 음석은 좀 달달해야지유, 하며 설탕을 제법 집어넣는다. 그 반대를 생각해보자. 오늘도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있는 전국의 맛집 주방장들의 마음을. 어제도 오늘도 엄청스럽게 전국의 맛집 주방장들 마음을 급냉으로 냉동을 시키는 백종원, 그리고 스타가 되어 가고 있는 많은 세프들, 이제 텔레비전에서 추방해야 한다. 3대천왕과 맛자랑은 아예 말이 되지 않는다. 방송국과 몇몇 정신 나간 방송국 PD들의 질 낮은 프로그램이다.

 

이래저래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덮는 그 마술쇼에 빠져들면 진짜 소는 누가 키우나? 입맛을 다시고, 침을 흘리는 방청객들 속에 그나마 Jtbc의 손석희 사장, 뉴스타파의 최승호 피디,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미디어오늘, MBC에서 다시 나온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 같은 눈밝은 매체와 사람들이 있어 대한민국의 미래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

 

 

뒷이야기-속초물회에 들어가는 전복과 오들오들한 해삼을 나는 잘 못 먹는다. 비린내 때문에. 성게는 너무 많이 먹었다. 여름철 바다에 가면 성게를 잡아 알을 먹곤 했다. 제주도의 자라물회는 뼈가 너무 세 씹는데 하자가 많다. 해서 해장국집으로 방향을 털었다. 그 집 앞에도 백종원 씨 사진이 턱 걸려 있었다. 생글생글 웃는 백 씨가 개념이 없는 남자 여자들 많이 죽이지 싶다. 살살 쪼개는 그 웃음에 신세조진 사나이들이 많았다 그 옛날. 201667해발120고지아지트.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 노고단에 가다  (0) 2016.08.04
나는 오늘도 걷는다  (0) 2016.06.20
용문사에 가다  (0) 2016.01.27
지리산 둘레길을 걷다  (0) 2015.08.06
설악에서 별을 보다  (0) 2015.05.26